제일저축은행 주주, 은행·신한회계법인 상대 손배소송
1·2심, 손해액 40% 배상…원고 일부 승소 판결
대법 "신한, 직접적 불법행위 저지른 회사 관계자 책임과 차이 있다"
◆…대법원이 최근 '제일저축은행 불법대출' 사태로 피해를 본 주주가 은행 경영진과 회계법인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회계법인이 직접 회계사기를 저지른 경영진과 똑같이 책임을 지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사진=연합뉴스)
은행을 부실 감사한 회계법인에 고의로 분식회계를 저지른 은행 경영진과 똑같이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기재형 대법관)는 제일저축은행 주주인 A씨가 은행 경영진과 신한회계법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신한은 직접적으로 고의의 불법행위를 저지른 회사 관계자의 책임과는 차이가 있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한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A씨는 신한의 감사보고서를 토대로 제일저축은행의 주식을 사들였다가 불법대출 비리로 손해를 보자 2013년 유동천 전 제일저축은행 회장과 이용준 전 대표이사, 신한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A씨에게 일부 승소로 판결하고, 은행 경영진과 신한이 손해액의 40%인 3300만원을 배상하라고 주문했다.
은행 비리 관련 '적정' 의견을 냈던 신한은 손해배상 과정에서 경영진과 같은 비율로 책임을 지게 되자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은 "신한이 은행 재무제표에 대한 회계감사를 부실하게 해 분식회계를 밝히지 못한 과실책임을 진다고 하더라도, 횡령·부실대출과 분식 행위 등 직접적으로 고의의 불법 행위를 저지른 회사 관계자의 책임과는 그 발생 근거와 성질에 차이가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신한이 그 부분 손해까지도 책임을 져야 한다면 이는 피해자를 두텁게 보호한다는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손해의 공평·타당한 분배라는 손해배상 제도의 이념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원심이 신한의 책임비율을 회사 관계자들과 같게 정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손해액을 산정하는 것은 사실관계를 심리하는 하급심의 전권이라고 판단해 40%의 책임 비율을 다시 조정하지는 않았다.
재판부는 "신한의 불법 행위가 비록 과실에 기인한 것이기는 하지만 외부감사인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위반한 과실 내용과 그 결과에 비춰보면 책임비율을 40%로 정한 것이 현저히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회계법인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회계사기 당사자와 같은 책임을 지는 것이 부당하다고 판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6년 제일저축은행 주주 2명이 신한회계법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대법원은 "유 전 회장과 똑같이 손해액의 50%를 책임져라"고 판결한 원심이 잘못됐다고 보고 사건을 파기환송한 바 있다.
당시 1·2심은 신한이 은행 경영진과 똑같이 절반의 책임을 지고 공동으로 6400만원을 배상하라고 했지만 대법원은 신한의 책임비율을 더 낮게 산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제일저축은행의 채권을 매입했다가 회계사기로 피해를 본 투자자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대법원은 "신한의 책임비율 60%는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주문했다.
한편 제일저축은행은 2009년 자본총계가 마이너스 254억원으로 자본잠식 상태였는데, 유 전 회장 등이 대손충당금 2400억여원을 자산으로 계산해 자본총계가 2000억원 달하는 것처럼 재무제표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제일저축은행은 2011년 9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고 상장폐지됐다. 신한은 당시 제일저축은행의 감사를 맡아 2007년~2010년 제일저축은행의 재무제표에 '적정' 의견을 냈다가 투자자와 주주들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이 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