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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우의 상속이야기]

신의 한 수, 카이사르의 유언장(上)

조세일보 | 정찬우 세무사 2021.05.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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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 사후 공개된 유언장 속 상속자는 누구인가?
육체적 인간 안토니우스 vs. 정신의 사람 옥타비우스

카이사르의 유언장은 로마를 부흥시킨 신의 한 수
안토니우스의 유언장은 그와 클레오파트라를 몰락시키는 단초 제공

왕정시대부터 유언장 관련 규정 만든 로마인의 지혜 되새겨 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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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스터즈 오브 로마'(콜린 매컬로 著)]

BC 44년 3월, 그해 종신독재관이 된 카이사르가 원로원에서 23명의 보니파에게 둘러싸여 암살당했다. 패배를 모르는 전쟁의 신, 로마 공화정의 영웅이 스러진 것이다.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후 구심점을 잃은 로마는 대혼란에 빠졌다. 내전이 발발할 가능성이 그 어느때보다 높아졌다.

카이사르가 없는 로마는 누가 이끌어 갈 것인가?

카이사르는 세 번 결혼했지만 대를 이을 적자를 보지 못했다. 이집트의 파라오인 클레오파트라 사이에 낳은 카이사리온은 혼외자로 적자가 될 수 없었다. 이즈음 유력한 상속자로는 카이사르의 재종질(아버지 사촌의 손자), 안토니우스가 거론되곤 했었다.

카이사르의 유언장이 공개되었을 때, 가장 충격을 받은 이는 안토니우스였다.

카이사르의 후계자이자 상속자는 생질손(누이의 손자) 옥타비우스(이후에 옥타비아누스로 불린다)였고 자신은 재산 상속에서도 철저히 배제되었기 때문이었다.

카이사르는 생전 안토니우스를 신뢰하지 않았다. 멋진 육체를 가졌지만 방탕하고 신중하지 못한 처신, 무자비한 성격, 개인 이익을 우선시하는 성정이 문제였다.

반면 옥타비우스는 약관의 나이에 허약 체질이었지만 머리가 비상하여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남달랐다. 언젠가 세상을 지배할 재목으로 여겼던 것이다.

카이사르의 우려대로 안토니우스는 스스로 몰락했다. 휘하의 명장 벤티디우스를 무고하여 내치는가 하면 알코올중독, 우울증으로 좌충우돌하며 자신을 갉아먹었다.

설상가상으로 안토니우스는 재산상속자로 클레오파트라를 지명하고 시신 매장지를 알렉산드리아로 지정한 사실이 드러나며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린다.

베스타 신전에 보관되어 있던 안토니우스의 유언장을 신전에 잠입한 옥타비아누스가 훔쳐내 원로원에서 공개한 것이다.

옥타비아누스는 '유언장은 본인과 유언집행관이 아니면 손을 댈 수 없다'는 법률을 어겼다는 비판에 직면했지만 반역이 의심되는 안토니우스의 유언장은 예외라며 비켜 나갔다.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의 부추김으로 로마로 진격하는 우를 범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클레오파트라는 킹코브라에 몸을 맡기는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반면 약관의 나이였던 옥타비우스는 카이사르의 후광을 등에 업고 충성심 강한 아그리파장군을 십분 활용하여 안토니우스 군대를 파멸시켰다.

로마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옥타비아누스는 암살자들은 물론 카이사르와 적대적이었던 키케로 등 개혁에 걸림돌이 될 만한 인물들을 차례로 처단해 나간다.

마침내 옥타비아누스는 위대한 자 중 가장 위대한 자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가 된다.

최후의 암살자이자 마지막 희생자였던 브루투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카이사르가 상속자로 옥타비우스를 지정한 상황을 예상 못한 우리의 잘못이다."

카이사르에게 허를 찔린 것이다. 카이사르는 로마의 태양이었다. 하지만 영원히 타는 횃불이 없듯 삶은 유한하고 죽음은 예측 불가하다. 암살의 기운을 느끼고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비해 작성한 그의 유언장은 로마를 계승하고 부흥시킨 신의 한 수가 되었다. (하편에 계속)

삼일세무법인
정찬우 대표이사

[약력]성균관대원 법학박사, (전) 삼일회계법인 파트너
[저술]사례와 함께 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해설, 통일세 도입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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