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이 현대차 계열사인 위아㈜와 아주금속공업의 부채탕감 로비의혹 사건을 '별도의 가지'로 분류해 철저히 수사하겠다며 '칼끝'을 금융계로 옮겼다.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14일 오전 브리핑에서 "위아㈜와 아주금속공업 부채탕감 로비사건은 외환위기 이후 부실기업 정리과정에서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시스템을 최대한 악용한 사건"이라며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비난했다.
김재록씨가 지난달 24일 825억원(500억원+325억원) 은행 대출과 관련해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될 때만 해도 채 기획관은 기자들에게 "혐의 내용은 영장을 보시라"며 길게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날 모습은 그 때와 사뭇 달랐다.
채 기획관은 "참으로 말도 안 되고 교묘한, 여러 사람이 관여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사건이며 부실기업을 잘 정리하려는 다급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수사팀도 우울하다"고까지 말했다.
국민 혈세를 현대차의 빚 탕감에 사용하는 데 연루된 금융권 인사 등을 무더기로 사법처리할 수도 있음을 예고한 발언이다.
단순한 수사(修辭)만 동원한 게 아니라 "압수수색의 성과가 컸다. 압수물이 없었다면 규명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압수물에서 단서가 발견됐고 김동훈씨의 혐의가 포착돼 그런 시스템이 규명됐다"며 상당한 수사 단서를 확보했음을 시사했다.
특히 전날 산업은행이 이 사건과 관련해 보도자료를 내고 적극 해명한 데 대해서 "산업은행은 할 말이 없는 사건이다. 로비 내용은 수사를 진행하면서 단계별로 처벌해가겠다"며 사법처리 가능성에 강한 자신감을 내보였다.
검찰이 수사 중인 사안에 신중한 모습을 보인 전례에 비춰 채 기획관의 이번 '자신있는' 발언은 검찰이 산업은행과 자산관리공사, 금감원 등 부채탕감 과정에 연관될 만한 기관들의 비리를 포착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위아㈜에 대한 1천억원 상당의 담보부 채권을 자산관리공사(캠코)에 매각했다가 캠코의 풋백옵션(put-back option) 행사로 다시 되사들인 뒤 이 채권을 공매에 부쳐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CRC)에 795억원에 싸게 팔았다.
검찰은 산은이 위아㈜ 채권을 공매하는 과정에서 특정 CRC에 입찰가격 정보를 알려줬고 이 채권을 산 CRC가 위아㈜에 825억원에 재매각해 결과적으로 공적자금이 투입된 산은은 205억원을 손해보고 위아㈜는 175억원의 부실을 털어냈다고 보고있다.
특히 캠코가 산은으로부터 1천억원짜리 위아㈜ 채권을 사서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해 ABS(자산담보부증권)을 발행했다가 다시 SPC를 해체하고 이 ABS를 되사들인 뒤 풋백옵션을 행사한 것은 '산은과 공모'에 따른 것이라는 결론도 내렸다.
또, ABS 발행회사는 자산유동화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금감원에 ABS 발행 의사를 접수하고 그로부터 10영업일 이내에 금감원의 이의제기가 없으면 ABS 발행이 가능해지는 업무처리 절차에 비춰볼 때 금감원의 개입도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산은측은 "1997∼1998년 캠코에 부실채권을 일괄매각할 때 위아㈜ 채권도 포함해 팔았지만 위아가 채무 일부만 갚고 연체하자 캠코가 이 채권을 되팔았다"며 "이때 돌아온 557억원 채권을 경쟁입찰을 통해 795억원에 팔았다"고 해명하고 있다.
산은 입장에서는 위아㈜의 채권을 조기에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한 셈이고 위아㈜ 입장에서는 채무를 조기상환해 채무재조정을 받은 것이며 캠코는 정당하게 풋백옵션을 행사했을 뿐 불법 사실은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산은과 캠코의 풋백옵션 행사 과정과 캠코의 SPC 해체과정 등에 관련된 각 기관들의 해명이 다소 다르거나 석연치 않다는 점 때문에 검찰 수사 결론이 어떻게 날지 주목된다. <연합뉴스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