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유동성 위기에 빠진 LG카드 주식을 '손절매'한 LG그룹 관계자와 외국계 펀드를 불구속 기소하면서 1년 넘게 끌어온 논란이 일단락됐다.
수사 결과 2003년 10~11월 개미 투자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추락하는 LG카드 주가에 한숨짓고 있었고, 외국계 펀드와 대주주는 재빨리 내부 정보를 활용해 시장에서 빠져나왔다.
◇ 경영 참여권으로 내부 정보 이용 = 2003년 10월 LG카드 지분을 팔고 거액의 손실을 봤던 외국계 펀드 에이콘인베스트먼트홀딩스(이하 에이콘)와 피칸인베스트먼트홀딩스(이하 피칸)는 법원에서 혐의가 인정되면 263억 원의 벌금까지 내야할 처지에 놓였다.
검찰은 두 펀드의 대표이사 겸 LG카드 사외이사였던 황모(46)씨를 내부정보 이용의 '행위자'로 불구속 기소했다.
두 펀드는 거대 외국계 펀드인 워버그 핀커스가 5개 해외 펀드와 함게 LG카드에 투자하기 위해 말레이시아 라부안에 설립한 독립법인이다.
이 펀드들은 지분을 점점 늘려 한때 LG카드 2대 주주로 올라섰기 때문에 '투자자'로서 사외이사를 선임할 정당한 권리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사외이사를 통해 얻은 내부정보로 부당한 거래를 했고, 그 결과는 소액주주에게 고스란히 돌아왔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최근 칼 아이칸이 KT&G 경영 참여를 요구하며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등 외국계 펀드가 국내 우량 기업 인수·합병(M&A)을 시도한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어 외국계 펀드의 사외이사 참여는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올 전망이다.
검찰 관계자는 "투자자로서 정당한 경영 참여를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득만 올리고 시장에서 빠져나가려고 내부 정보를 이용하면 적발, 처벌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두 펀드는 2000년 11월 LG카드 주식 19.9%(1천400만주)를 장외시장에서 주당 3만1천250원에 사들인 뒤 2003년 10월 대규모 유상 증자와 관련된 그룹 내부 정보를 듣고 주당 1만8천원~2만원에 576만주를 판 혐의를 받고 있다.
2003년 LG카드는 연말 추정 손실이 1조3천억원에 달해 수천억원 규모의 추가 유상 증자를 논의하고 있던 시점이라, 유상증자 사실이 외부에 공개되기 전 재빨리 손을 털고 나왔던 것이다
황씨도 두 펀드가 지분을 매각한 다음날인 10월 24일 사외이사에서 물러났다.
LG카드는 10월30일 3천700만주를 액면가 5천원에 발행하는 내용을 공시했고, 이후 LG카드 주가는 공급 과잉과 유동성 위기로 6천원대까지 떨어졌다.
◇ 그룹 인척 대주주도 '나 먼저' = 검찰은 LG그룹의 구자경 명예회장 둘째사위인 최병민 대한펄프 회장도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매도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최 회장은 LG화학 상무 겸 대주주의 대리인인 이모씨를 통해 2003년 9월23일부터 10월23일까지 주식 180만주를 주당 평균 1만7천500원에 팔아 112억원의 손실을 회피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은 일임매매를 했기 때문에 내부 정보 이용 공범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 양벌규정을 적용했다.
최 회장은 검찰에서 대한펄프 유상증자 자금이 급하게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회사의 대주주, 임원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중요 정보를 미리 알고 주식을 거래해 손실을 피하거나 부당 이득을 취하면 부담은 일반 투자자가 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 구씨 일가는 전원 무혐의 = 검찰은 참여연대가 구자열 LS전선 부회장 등 LS그룹 관계자 25명을 2004년 1월 같은 혐의로 고발한 사건은 전원 무혐의 처분했다.
지분을 판 시점이 LG그룹에서 LS그룹이 분리된 뒤였고, 지분 거래 자체가 대주주 사이에 이뤄진 자전거래였던 데다 내부정보를 이용할 위치가 아니었다는 LS그룹 일가의 주장을 반박할 자료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자열 부회장 등 25명이 고발된 혐의는 2003년 11월 17일 LG카드가 추가 유상증자(7천억원)를 공시하기 전 집중적으로 주식을 거래한 부분이다. 또 한번의 대규모 유상 증자가 이뤄지기 전 지분을 팔고 정리한 것이다.
참여연대가 주장한 내용에 따르면 구 부회장 등은 2003년 11월7부터 LG카드의 추가적인 유상증자, LG카드 경영관리 공시가 있기 직전인 같은달 21일까지 보유하고 있던 주식 총 314만7천를 모두 매각하고 38억원의 손실을 회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