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현안 다루는 연두교서에서 러시아 지목해 비판한 것은 매우 '이례적'
러시아와 교전하는 등 우크라에서 미군의 직접적인 개입은 없을 것 강조
"NATO 회원국들의 안보 지키기 위해서만 군사적 행동 취하겠다"
금융･기술･산업･원유 다방면에서 러 제재하고 우크라 지원할 것 약속
◆…취임 후 첫 연두교서에 나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 로이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각) 취임 후 첫 연두교서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지목해 러시아가 벌인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고 우크라이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 사회의 관심과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수정헌법에 명시된 연두교서 의무에 따라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주로 입법 의제나 국내 현안들을 발표해온 것과 달리 한시간여 가까이 진행된 연설에서 절반이 넘는 시간 동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여러 외신들은 상원의원과 부통령을 거쳐 대통령의 자리까지 올라오게된 그가 지난 수십여 년간에 걸쳐 쌓아 온 외교적 역량을 선보일 때를 마주한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푸틴 대통령이 침공을 강행한 행동에 대해 "대가를 치르게 만들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러시아로부터 출발하는 모든 비행기들이 미국 상공을 지나갈 수 없게끔 금지하는 비행금지구역을 러시아에게 설정하겠다고 천명했다.
여기에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전여 예상하거나 상상해보지도 못했던 힘의 장벽에 부딪혔다"고 말하며 "바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마주한 것이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키예프로 가까워져 왔을 때도 대피하지 않고 자국 군대와 함께 수도에 남아 러시아군에 저항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빛의 선함이 악한 어두운 세력을 물리칠 것이다"라는 말을 인용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국민들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인 지지를 내비쳤다. 이날 국정연설이 진행된 미 의회에는 우크라이나 미국주재대사가 참석해 있었다.
최근 국제 사회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시도함에도 푸틴 대통령이 이에 적극 응하지 않고 있는 모습과 관련 바이든 대통령은 "역사적인 교훈을 토대로 보았을 때 독재자들이 침공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더 큰 혼란을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결국 미국과 전세계가 부담해야할 비용과 위협이 증가하게 되는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평화와 안보를 수호하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설립된 것이다"라고 말해 미국이 독단적으로 나서서 우크라이나 사태를 해결하기보단 유럽과 미국의 우방국들과 함께 해결할 계획임을 내비쳤다.
바이든 대통령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의 만행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제재에 동참하고 있는 국가는 27개 유럽연합(EU) 회원국을 포함해 영국, 캐나다, 일본, 뉴질랜드, 스위스 등 30여개 국가들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 또한 러시아 제재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러시아를 겨냥한 미국 주도의 경제 제재는 러시아 주요 은행들의 세계 금융 자산을 동결시켜 우크라이나 침공에 소요되는 비용을 지불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미국과 유럽 주요국, 캐나다, 일본이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차단하자 러시아의 루블화 가치는 30% 이상 폭락을 면치 못했다. 이로 인한 여파로 러시아의 증권시장과 선물시장은 며칠간 장이 열리고 있지 않는 중이다.
당초 러시아가 6310억 달러(약 760조원)에 달하는 외환보유고를 무기로 삼아 서방의 압박과 제지에도 장기간 버틸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와 달리 러시아가 당장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은 120억 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바이든 대통령은 금융 제재를 포함해 전반적인 경제 산업을 옥죌 수 있게 러시아의 기술 분야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앞으로 수년간 러시아군의 기술력이 발전하지 못하도록 만들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한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미국의 원조는 계속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도 빼먹지 않고 언급했다. 현재 미국은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군사적 지원･인도적 지원 등 10억 달러가 넘는 규모의 원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고 있다.
◆…미군 병력 3000명 중 2000명은 미국에서 폴란드로배치되고, 독일에 배치된 1000명은루마니아로 재배치된다 (사진 외교부, KOTRA)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미군이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과 직접적으로 교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미국의 전력은 우크라이나에서 교전에 참가하기 위해 유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NATO 회원국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넘어) 서유럽으로 침범하는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다"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주장대로 미국은 러시아의 돌발 행동에 대처하기 위해 현재 자국의 육･해･공군을 유럽으로 이동시켰으나 이들은 우크라이나에 투입되지 않고 NATO 회원국인 폴란드, 루마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등에 배치됐다.
또한 러시아가 천연 가스 등 자원 외교를 무기로 삼아 유럽 국가들을 포함한 국제 사회를 압박하는 것에 대응하기 위해 바이든 대통령은 3000만 배럴에 달하는 전략비축유를 방출할 것이라며 "국제 유가 상승으로 인한 피해를 완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유가가 배럴당 110달러를 돌파한 가운데 미국 주도로 전세계 30여개 국가들이 협력한 끝에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 총 6000만 배럴 상당의 비축유를 방출하겠다는 결정이 나왔다.
이처럼 IEA 31개 회원국들이 비축유 방출에 의견 일치를 보인 것은 2011년 이후 처음이다. 또한 이번에 방출하기로 결정한 6000만 배럴은 러시아의 원유 일일 수출량의 최대 15배 수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