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에 법률 해석권 있다'
'대법원, 법률 해석은 법원의 고유 권한'
'한정위헌' 해석 두고 수십년째 갈등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가운데)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대심판정에서 열린 헌법소원·위헌법률 심판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정위헌 결정을 따르지 않은 대법원 판결은 취소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취소된 것은 사법사상 1997년 양도소득세 과세 취소소송 결정 이후 두번째다.
헌재는 30일 전직 교수 A씨가 헌법재판소법 68조 제1항에 대해 제기한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재심 기각 판결을 취소했다.
재판부는 "헌재가 법률의 위헌성 심사를 하면서 합헌적 법률 해석을 하고 그 결과로서 이루어지는 한정위헌 결정도 일부 위헌결정"이라며 "헌재가 헌법에서 부여받은 위헌심사권을 행사한 결과인 법률에 대한 위헌결정에 해당한다"고 명시했다.
한정위헌이란 법 조항 자체가 아닌 "법원이 …"라고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고 보는 결정이다.
법조계에서는 한정위헌을 둘러싼 헌재와 대법원 간 갈등은 법률의 해석 권한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른 입장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헌재는 헌법이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권을 헌법재판소에 부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한정위헌이 적법한 결정 형식이기 때문에 법원과 국가기관이 헌재의 법률 해석을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은 법률 해석은 법원의 고유 권한이므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권을 부여한 헌법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봤다.
이번 헌법소원의 청구인 A씨는 2003년 2월부터 제주도 통합영향평가위원회 심사위원으로 위촉돼 골프장 영향평가 심의 과정에서 억대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공무원’에 해당한다고 봐 형법상 수뢰죄에 따라 유죄 확정판결을 내렸다.
A씨는 자신에게 적용됐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조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심판을 제기했다.
헌재는 2012년 형법 129조 1항의 ‘공무원’에 제주도 통합영향평가위원회 심의위원 중 위촉위원이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며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다.
A씨는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을 근거로 재심을 청구했으나 광주고법·대법원은 한정위헌 결정은 효력이 없어 법원을 기속할 수 없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A씨는 2014년 헌재법 68조 1항 중 ‘법원의 재판’에 헌재가 한정위헌으로 결정한 법령을 적용한 재판도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재법 68조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8년 동안 사안을 심리해온 헌재는 법원이 한정위헌 결정도 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헌재는 “법원이 A씨가 청구한 재심을 기각한 것은 앞서 헌재가 한정위헌 결정한 효력을 부인하는 것”이라며 “법원의 재심 기각 결정은 ‘법률에 대한 위헌결정의 기속력에 반하는 재판’으로 이에 대한 헌법소원은 허용되고, 재판청구권이 침해됐으므로 재판은 취소돼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헌재는 A씨의 유죄가 확정된 판결에 대해서는 심판청구가 부적법하다고 판단해 이에 대한 구제는 재심절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