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상황 모면하려는 본질 회피 전략
한 장관 '번뜩이는 달변, 그러나 진정성 없어 보여'
시행령 통치는 형식적 법치주의의 전형… 실질적 법치주의 위배
◆…정의의 여신상 디케.
윤석열 대통령이 부인 김건희 여사의 봉하마을 방문 후 '지인 동행 논란'이 일자 "제가 대통령을 처음 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공식·비공식 이런 걸 어떻게 나눠야 할지, 대통령 부인으로 안 할 수 없는 일도 있고, 이걸 어떤 식으로 정리해서 해야 할지…"라며 "저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국민 여론을 들어가며 생각해 보겠다"고 한 발언이 여론의 도마에 오른 바 있다.
김건희 여사가 운영한 코바나컨텐츠 출신 직원들이 대통령실 부속실에 채용됐다는 논란에 대한 질문에도 "글쎄요, 공식적인 수행이나 비서팀이 전혀 없기 때문에 혼자 다닐 수도 없고 그래서 뭐…"라며 "어떻게 방법을 좀 알려주시죠"라고 답변한 것도 논란을 낳았다.
또 이날 기자들이 '제2부속실 폐지 공약 폐기'에 대한 질문을 하자 윤 대통령은 아예 답변하지 않았다.
도어스테핑은 이후 몇 번 더 준비되지 못한 답변으로 논란거리가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특히 지난 7월 5일 내각의 부처 장관 후보자 세명이 잇따라 낙마한 것을 두고 인사 실패라는 지적이 나오자 이날 출근길 도어스테핑에서 윤 대통령은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들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봤느냐"며 "사람들의 자질이라든지 이런 것을 다른 정권 때하고 한번 비교를 해보라"고 답변했다.
역시 전 정권과 비교하는 답변 태도와 더불어 낙마한 장관들에 대한 인사 실패를 묻는 질문 의도를 회피하려는 듯한 인상을 준 것으로 이후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분석됐다.
현 정부 들어 전 정부 탓(?)이라는 발언이 유독 자주 등장한다. 지난 2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나온 한동훈 장관의 답변에서도 역시 전 정부를 들어 본질을 회피하는 듯한 답변이 나왔다. .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부조직법상 장관이 할 수 있는 업무 범위에 '인사'가 없다며 '위임이 위법하다'는 취지로 묻자, 한동훈 장관은 "위임은 할 수 없는 범위를 위임하는 것"이라며 "해당 부처가 할 수 있는 범위라면 위임이 아니다"라고 맞받았다.
이어 박 의원이 "동문서답을 하고 있다. 법무부 직제령에 인사정보관리단장을 장관이 보임한다고 그렇게 끼워넣기 했다. 물건 끼워팔기는 봤어도 법령 끼워넣기 하는 건 처음 본다"며 "정정당당하다면 법무부 직제령 제3조 직무조항에 '인사'라는 두 글자를 넣어야 한다. 즉, 업무는 없는데 직위는 만들었다. 이게 꼼수, 법치농단"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한 장관은 이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며 "제가 이 일을 하는 게 잘못이라면 과거 정부 민정수석실에서 했던 인사 검증 업무는 모두 위법"이라고 답했다.
한 장관의 번뜩이는(?) 답변에 박 의원은 황당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한 장관의 답변에는 번뜩이는 재치는 있을망정, 국민을 설득하려는 진정성은 없어 보였다.
왜 검찰총장 인선도 없이 그렇게 강조하는 절차적 정당성을 위배하면서 무리하게 검사들의 인사를 단행했는지, 시행령을 통한 인사권의 행사가 과연 법치주의에 맞는지 여부에 대해 국민들에게 설득력있는 답변을 내 놓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장관에 이어 27일 국회 대정부질문 과정에서 답변에 나선 한덕수 국무총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환했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이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출근길 약식회견(도어스테핑)은 좋은 취지지만, 대통령은 처음이라는 발언, 이 표현이 적절했느냐"고 한 총리에게 따졌다.
과거 김건희 여사의 봉하마을 방문 후 비선 논란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윤 대통령이 답변했던 "제가 대통령을 처음 해보는 것이기 때문에~"라는 발언을 상기시키면서 한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한 총리는 "제가 모셨던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도 국회에서 본인이 생각하는 정책들이 진척되지 않는 환경이 되니 '정말 못 해 먹겠다' 이런 말씀을 한번 하신 거로 기억한다"고 맞받아쳤다.
역시 전 정부를 예로 들며 본질을 벗어나는 전략을 편 것으로 보인다.
이런 태도는 당시에는 번뜩이는 언변으로, 화려한 전술로 빛나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을 상대로 한 진정성 있는 설득인가를 생각해 보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윤석열 정부의 최근 통치행위에서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시행령'을 앞세운 '형식적 법치주의' 행태로 평가할 수 있겠다.
시행령이라는 절차만을 앞세운 채 내용적으로 (실질적) 법치주의를 형해화 할 위험성이 있다는 문제가 헌법학자들을 비롯한 법조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정부조직법이라는 법률이 있음에도 하위의 시행령을 근거로 행안부 내에 경찰국을 설치하는 것은 법치주의 기본 내용인 법률 우위 사상을 위배한 것으로 실질적 법치주의 관점에서 보면 법치주의의 위반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1호 헌법연구관을 했고, 이명박 정부 시절 법제처장을 역임한 이석연 전 처장이 26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 문제에 대해 "로스쿨 초년생한테 물어봐도 명백한 헌법 위반"이라고 비판했겠는가.
형식적 법치주의의 위험성은 역사적으로 나치 독일의 히틀러에게서 나타난 바 있다.
독일 의회가 당시 총통이었던 히틀러에게 광범위한 위임규정을 두고 히틀러도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독립명령이나, 긴급명령을 제한 없이 발동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국민의 권리를 침탈하고, 의회를 무력화해 해산할 수도 있었다.
시행령 통치의 위험성은 이렇듯 형식적 법치를 앞세워, 국민의 실질적 권리를 침해하거나, 실질적 법치주의를 무력화 시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보이고 있는 지지율 하락은 이러한 진정성 부족과 시행령 통치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전 정부 탓'으로는 현재의 복합적인 위기를 돌파하기는 어렵다는 게 여론이 보여주는 냉정한 평가라는 사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