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존엄사 '말기환자가 약물 받아 스스로 투약'
도입 찬성 응답자 중 '경제적 부담' 이유 상당수
"호스피스 시설과 인력 확충 등 인프라 확충 시급"
◆…자료사진:로이터통신
'웰다잉(품위있는 죽음)'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국내에서도 존엄사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지만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할 수 있다는 우려에 각계각층에서 논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30일 정치권에 따르면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15일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조력존엄사법)을 대표 발의했다.
안 의원이 발의한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은 △말기환자인 경우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경우 △환자 본인 의사에 따라 조력존엄사를 희망하는 경우 등 조건을 만족하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했다.
'조력 존엄사'는 극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환자에게 의사가 약물 등을 제공해 환자 스스로 약물을 투약하는 형태라는 점에서 안락사와 차이가 있다.
'조력 존엄사' 법안이 국회에 발의되자 각계각층에서 찬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리서치는 이달 1~4일까지 전국 만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2%가 조력존엄사를 찬성했다. 찬성 이유는 '자기 결정권 보장(25%)'과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권리(23%)' '가족 고통과 부담(20%)' '의료비 및 돌봄으로 인한 사회적 부담(6%)'등이 꼽혔다.
앞서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팀이 지난해 3월부터 4월까지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76.3%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입법화 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돌봄 취약 계층의 경우 경제적 이유로 떠밀리듯 죽음을 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여론조사에서 조력존엄사 도입에 찬성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꼽고 있다.
공공 돌봄 시스템이 부족한 현실에서 조력존엄사가 '웰다잉'이라는 본래 취지와 달리 일부 사람들에게는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는 “국회는 조력존엄사 논의 전에 존엄한 돌봄 유지에 필수적인 호스피스 시설과 인력 확충에 신경 써야한다”며 “조력존엄사 논의는 그 이후 문제”라고 강조했다.
의료윤리연구회도 22일 입장문을 통해 "생명을 지키는 의사에게 자살을 위탁시켜서는 안 된다"면서 "의사는 환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고통을 없앤다는 목표가 아무리 명확해도 환자를 죽이는 일에 의사의 손을 빌어서는 안 된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어 "안락사를 허용한 나라에서의 생명 경시 현상은 도덕적으로 허용할 수 없는 것까지 허락하게 된다. 자기 의사 표현을 못하는 치매 노인이나 식물인간 상태, 불치병에 걸린 영유아들에게까지 안락사 대상을 계속 넓히게 된다"면서 "대한민국에서 생명 경시를 불러오는 입법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종교계에서도 생명 경시 풍조를 가져올 수 있다고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가톨릭교회와 생명 수호 단체들은 28일 성명을 통해 “생명에 대한 자기 결정권, 내 삶을 파괴할 권리를 운운하면서 추진되는 입법 논의는 자칫 생명의 존엄성을 근본에서부터 훼손하고 인간 존재의 근원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안 의원은 "조력존엄사법 통과와 병행해 호스피스 인프라 투자 등 광의의 웰다잉 문화도 함께 정착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내달 24일 국회에선 안 의원의 주도로 조력존엄사법의 쟁점을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 자리엔 정부, 종교계, 의료계, 법조계, 시민사회단체 환자단체 학계 관계자들이 참석해 의견을 나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