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상속세 체계에 대한 '대수술'을 예고하고 있다. '유산세'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현행 상속세제를, 받은 만큼 세금을 내는 '유산취득세' 체계로의 전환에 대한 검토에 들어간 상태다.(사진 연합뉴스)
우리나라의 상속세는 부(富)에 대한 '징벌적 과세'라는 평가가 붙는다. 소득세로 과세한 후 축적된 부를 상속하는 과정에서 추가적인 과세가 이루어지는 '이중과세' 부작용에 더해, 살인적인 세율(최고세율 50%)까지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세금 부담이 적정한지를 논외로 하더라도, 과세체계가 합리적이지 못하다. 납세자의 부담능력에 따라 조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응능부담원칙'를 위배하고 있어서다. 막대한 상속세 부담에 기업(가업) 승계를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가 경제성장에 좋지 못한 신호로 볼 수 있다.
정부는 이런 우려를 들며 상속세 과세체계의 '대수술'을 예고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친기업 환경 조성'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어떤 방식이든지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도록 조세제도를 설계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도 기업승계를 통해 질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자는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다만 정부안이 국회에 제출되더라도, 다수 의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이 감세에 예민한 반응을 보여 입법화에는 험로가 예상된다.
"상속세 부과방식, 글로벌 스태다드에 맞지 않아"
현재 정부에서 논의하는 상속세제 개편 방향은 과세체계를 현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바꾸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 최근에는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금액)과 세율까지 손질 대상에 넣고 있다. 세제 정책을 입안하는 기획재정부는 지금까지 '상속세 유산취득 과세체계 도입'이란 주제로 회의를 세 차례를 가졌고, 지난달 27일 열린 회의에서는 각종 공제(배우자공제 등), 세율·과표구간 조정, 상속인의 연대납세의무 관련 부분도 논의 테이블에 올린 상태다.
정부는 상속세의 과세체계를 바꾸려는 이유로 글로벌 스탠다드(국제 기준)에 맞지 않지 부분을 들고 있다. 실제 상속세를 과세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23개국 중 유산세 방식을 취하는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4개국(미국, 영국, 한국, 덴마크)에 불과하다.
상속세법(1950년 제정·공포)이 만들어진지 70년이 지난 지금, 납세환경은 몰라보게 변했지만 과세체계의 기본 골격은 그대로다. 국민 정서 등을 고려할 때 조심스러운 부분이긴 하나, 과세체계를 완화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은 어느 정도 조성된 분위기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스로 반(反)기업 정서를 떨쳐 가업상속공제라든지 최대주주 할증 제도를 완화했다. 100년 앞을 내다볼 조세 로드맵 수립이 목표였던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는 2019년 당시 '부의 대물림 문제에 대한 적정과세를 위해 상속세와 증여세 과세체계를 합리화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한 바도 있다.
"유산세는 불합리하다" 목소리 나오는 까닭
증여세는 수증자의 부의 증가를 기준으로 하는 '취득과세' 개념을 택하고 있다. 상속세, 증여세는 부(富)의 무상이전이라는 같은 관점에서 세금이 부과되는데도 불구, 두 세목 간 과세체계가 다르게 적용되고 있다.
상속세는 상속인이 받은 모든 상속재산으로 상속세 과세가액을 산정하고 이후 법에서 정한 각종 공제액을 차감해서 과표를 구해 10~15%의 세율로 세금을 매긴다. 반면, 유산취득세 방식은 유산 분배 후 상속인별 분할재산에 과표를 적용해 세금이 부과되는 구조다. 유산세가 피상속인의 상속재산으로 세액이 결정되어 상속인별 담세력(조세부담 능력)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단 지적을 받는 이유다.
지난해 한국경제연구원이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상속재산 100억원 기준 3인이 균등 상속할 경우 유산세와 유산취득세의 세부담 차이는 약 14억원에 달한다. 한경연은 이를 두고 "유산세의 경우 납세자 부담능력에 따라 조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응능부담원칙도 위배하고 있다"고 했다.
'세계 최고' 수준인 세율도 적정성 논란이 크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일본(55%)에 이어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다. 하지만 기업을 승계했을 때 최대주주의 주식 가격에 20%를 가산하는 할증세(최대주주 주식 할증평가)까지 더하면 세율은 60%로 치솟는다. 재계나 학계 등을 중심으로 '상속세는 생전에 이미 소득세 등을 부담한 자산으로 이중과세의 성격이 있기에, 소득세 최고세율보다 더 높은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오문성 한국조세정책학회장(한양여대 교수)은 "상속증여세를 유산과세구조에서 유산취득과세구조로 바꿔 세율을 소득세 수준보다 낮추고, 최대주주에 대한 할증평가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수술 거친 상속세, 올 세법개정안에 담길 듯…통과 가능성은
◆…지난해 말 국회 본회의에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는 모습. 당시 개정안에는 가업상속공제 요건 완화 등이 담겼다. (사진 연합뉴스)
정부는 상속세제 개편의 밑그림을 그리는데 한창이다. '국민 공감대'라는 개편 동력이 필요한 만큼, 오는 5월까지 관련 연구용역을 마치고 공청회까지 거친다. 이 시기가 되면 상속세의 개편 방향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계에서는 상속세 최고세율을 OECD 평균 수준인 30%로 낮추고 과표구간을 5단계에서 3단계로 줄이는 안을 건의하고 있다. 이런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구체적인 안은 올 7월에 발표 예정인 정부의 세법개정안에 담기고, 이후 국회 논의를 절차를 거쳐 입법화될지 말지가 결정된다.
상속세제 개편안이 나왔다고 해서 입법화로 이어진다고 점치기는 어렵다. 167석을 점유한 국회 현실상 더불어민주당이 동의하지 않고서는 정부·여당만으로 밀어붙일 수 없다. 문제는 민주당이 감세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데 있다. 작년만 하더라도 가업상속공제 대상기업을 연 매출 1조원으로 확대하는 정부안을 두고 "부자감세"라고 반대하며 보류시켰고, 논의 끝에 5000억원(종전 4000억원)으로 정해졌다.
현재까지 구체적인 세제개편 방향성이 제시되지 않아, 국회에서 이렇다 할 분위기는 감지되고 있지 않다. 세법개정안을 심의하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야단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실은 "아직 검토 단계라 답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국세청의 통계연보에 따르면, 상속세 신고 대상인 피상속인 수는 2019년 9555명에서 2020년 1만1521명, 2021년 1만4951명으로 매년 느는 추세다. 수십년간 인플레이션(물가인상)으로 자산 규모가 커지며 과세대상자 수도 늘어나 최근에는 부자 세금이라는 시각이 옅어지고 있어, 부자감세라는 얄궂은 프레임만을 내걸고 싸우기엔 설득력이 떨어져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