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대출ㆍ위조 CD 부작용…건설ㆍ금융시장 왜곡 '심각'
분식회계에 악용된 1조8천억원대의 무기명 양도성 예금증서(CD)는 더 많은 수주를 받아 실적을 올리려는 건설사와 수수료를 챙기는 브로커, 수익을 올리려는 금융기관의 이해타산이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만들어진다.
건전한 시장원리에 따라 상품이 유통돼야 하는 금융 체계 또는 재무구조가 튼튼한 건설사들이 더 많은 입찰실적을 내야 하는 건설시장이 이들의 불법 내지 편법 행위로 심각한 왜곡 현상을 겪게 된 것이다.
◇ 건설사-브로커-금융기관 '윈윈 게임' = 20일 검찰과 관련업계에 따르면 건설협회는 매년 건설사들의 자본금 비율 등을 따져 시공능력을 평가하고 공사 입찰 한도를 정한다.
이 때문에 자본력이 부족한 영세 건설사들은 수주 실적 제고를 위해 브로커들이 발행을 알선해 준 CD의 사본과 발행사실 확인서를 건설협회에 제출해 시공 능력을 높게 평가받았다.
형식적인 심사권한 밖에 갖지 못한 건설협회로서는 건설사가 실제 자기 자금을 부담해 CD를 발행받았는지를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건설사는 자기 명의의 CD 사본 등을 제출하고도 자본력이 높다고 평가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건설사는 대신 브로커들에게 수수료를 지불하고 증권사의 자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CD 발행대금의 일부를 지원했다.
건설사에게 CD 발행을 알선해 주는 브로커들은 철저한 업무 분장아래 점조직 형태로 영업을 한다.
사채업자 출신으로, 전단지나 '전화 마케팅' 등으로 건설사에 접근하는 '모집 브로커'는 '중개 브로커'를 거쳐 전직 금융기관 직원이거나 다년간 금융기관과 유착해 온 '최종 브로커'에게 CD 발행 알선을 의뢰하며 건설사가 준 수수료를 적정 비율로 나눠 갖는다.
최종 브로커와 결탁한 증권사는 시중 발행가보다 낮은 인수가로 CD를 발행할 수 있으므로 '흔쾌히' 건설사 명의의 CD를 발행해준 뒤 건설사측이 CD 사본과 발행사실 확인서를 챙겨 가면 CD를 다시 매수한다.
성과급제를 적용받는 증권사 담당 직원들은 매수한 CD를 시중가로 처분해 투자수익을 올리고 회사로부터 '실력'을 인정받는다.
은행측 직원들은 거액의 CD 자금을 수신해 주면 실적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발행대금 예치를 거부하지 않았다.
◇ 7개월새 1조8천억원 적발 = CD 발행에 가담한 증권사는 G 증권 등 유력회사 7곳이며 CD 발행대금을 예치해 준 은행은 12개 은행 소속 102개 점포에 이른다.
이들이 발행해 준 CD의 액면금 총액은 1조 8천억원이며 발행 기간은 금융감독원이 실태 조사를 벌인 2004년 12월1일부터 이듬해 6월31일까지에 한정돼 있다.
바꿔 말하면 이 기간을 전후해 실태 파악이 더 엄정하게 이뤄지면 훨씬 많은 분식회계용 CD 발행 사실이 적발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국내 은행들의 CD 발행 잔액이 2003년말 24조원이었고 2004년말에는 42조원, 작년 말에는 64조원을 기록하는 등 매년 발행 규모가 늘어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사 범죄가 더 발생했을 가능성은 매우 농후해진다.
'제3자 명의 CD'는 건설협회에 제출하는 분식회계 자료뿐만 아니라 금융기관을 상대로 한 사기대출 자료로 활용될 수 있고 CD 위조 범행에 쓰일 수도 있는 등 부작용이 크다고 검찰은 지적하고 있다.
더구나 불법 내지 편법 CD 발행이 사채업자들을 중심으로 장기간 관행처럼 만연돼 온 점은 수사기관 내지 금융 감독기관의 단속 체계에도 허점이 있음을 반증한다.
금융감독원은 무기명 발행방식인 CD의 폐해를 막기 위해 지난 2월부터 CD 거래 개선방안을 마련해 왔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처럼 발행대금 납입자와 명의자가 서로 다른 '제3자 명의 방식'의 CD 거래는 전면 금지됐으며 지난달부터는 CD 등록 발행제가 도입된 상태다. <연합뉴스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