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간 M&A시 합병가액 산정 유연화" vs "지배주주에만 유리"

비계열사간 합병만 자율화 vs '대다수' 계열사간 합병도 유연화

합병공시 강화 두고 '갑론을박'

합병 진행과정 투명화 vs 기밀 공개 부적절

기업의 인수합병(M&A) 활성화를 위해 합병가액 산정방법을 유연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경직된 합병가액 산정방법을 개선할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합병공시의 내용과 외부평가기관의 선임 방식 등 세부적인 개선방안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였다.

김유성 연세대 교수는 27일 금융위원회가 주최한 '기업 M&A 지원 세미나'에서 "경직적인 합병가액 산정방법으로 인해 진정한 기업가치를 반영하기 어렵고 시장의 자율성을 해친다"고 지적했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예측가능성 제고를 위해 합병가액 산정방법을 구체적으로 규율하고 있다. 상장법인은 기준시점의 시가를 기준으로 10(계열사)~30(비계열사)%를 할인·할증한다. 비상장법인의 경우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1대 1.5로 가중평균해 정한다.

김유성 교수는 "계열사간 합병의 경우 기본원칙을 유지하되, 대법원의 삼성물산 주식가격 결정 취지를 반영해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 평가기준일의 변경을 허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비계열사간 합병에 대해서는 대등한 당사자 사이의 거래라는 점을 감안해 원칙적으로 합병가액 산정방법을 자율화하되, 공정성 담보 차원에서 제3자의 외부평가를 의무화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김진욱 건국대 교수는 "합병가액 산정 유연화가 계열사간 합병과 비계열사간 합병에 차등 적용돼야 한다"고 동조했다.

김진욱 교수는 "상당수 기업은 경영자-주주간 대리인 문제보다 지배주주-비지배주주간 대리인 문제가 심각하다"며 "계열사간 합병시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합병비율이 적용되면 비지배주주의 부가 지배주주에게 이동하는 '터널링'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감사위원회나 사외이사로 이뤄진 특별위원회에서 합병가액을 산정해야 한다"며 "매수가액 산정시 기업가치의 시점과 범위를 어떻게 볼지, 주식매수금액 하한선을 어떻게 정할지 등 세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승환 변호사(법무법인 광장)도 "주주가 합병비율이나 합병가액에 문제를 제기하면 법원이 합병 무효 결정을 내릴 순 있지만 적정 합병비율을 정해주진 않을 것"이라며 "합병가액 유연화가 일반투자자 보호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 충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이재혁 상장회사협의회 정책1본부장은 "계열사간 합병에서도 자율화가 필요하다"며 이원화에 반대했다.

이재혁 본부장은 "계열사간 합병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데 현행 방식을 유지한다면 바뀌는 게 없다"며 "터널링 현상을 면밀히 검토해서 합병가액 산정방식을 자율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계열사간 합병 시 기준일 변경을 허용한다면 합병시일과 다른 특정 시점의 주가를 적용해 누구는 유리하고, 누구는 불리해져 분쟁 우려가 커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차라리 완전 자율화하면서 공정성을 담보할 방법에 중점을 두는 게 바람직하다"며 "비계열사간 합병과 같이 자율화하면서도 독립적·전문적 외부평가가 이뤄지는 게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합병공시 강화 시 협상에 차질"

합병공시 강화 필요성도 제기됐다. 현재 합병사실은 주요사항보고서, 증권신고서 등에 공시되고 있으나 합병일정, 합병비율 등 기본 사항만 간략히 나와있다.

김유성 교수는 "합병 진행과정(추진 경위, 거래대상 탐색·선정 과정, 거래조건 협상·결정 과정 등)과 이사회 검토 내용(합병 추진의 타당성, 합병비율의 적정성 등에 대한 이사회의 의견)이 투명하게 공개되도록 공시항목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이재혁 본부장은 "합병공시 강화 취지엔 공감하지만 기밀까지 공개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그는 "합병의 파장은 주주, 채권자 외에도 노사,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며 "합병 추진의 타당성이나 합병비율의 적정성에 대한 이사회 의견을 공시하는 것까지는 가능하나, 거래대상 탐색·선정 과정, 거래조건 협상·결정 과정 등 기밀까지 공시하는 게 합리적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원종우 프랙시스캐피탈 전무도 "상장사 합병시 합병비율 평가과정과 그 근거를 공개하는 건 거래 종결 전 협상 경과 사실이 노출돼 협상 과정에 차질을 불러올 우려가 있다"고 봤다.

김유성 교수는 "회계법인 등 외부평가기관이 합병가액의 적정성을 충실히 검토하도록 구체적인 행위 규율을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며 "합병가액 산정에 관여한 자는 배제돼야 하고, 계열사 간 합병의 경우 감사위원회가 외부평가기관을 선정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동원산업이 동원엔터프라이즈와 합병을 추진하면서 소액주주와 법적 다툼을 벌인 것처럼 합병가액 산정 자율화로 소송이 증가하지 않겠냐는 전망에 대해 황현영 연구위원은 "소송 건수보다 절차적 신뢰성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달 22일 동원산업 주식매수가액을 25만3034원으로 결정했다. 소액주주들은 매수가액을 합병가액 기준인 주당 38만2140원으로 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이사회 결의일 전일 최근 1주일간의 가중평균주가로 정하는 게 합리적이라 판단했다.

황현영 연구위원은 "합병가액 산정은 기술적인 부분이라 누가 해도 달라질 수 있다"며 "이해관계자들이 납득할 만한 제3자를 외부평가기관으로 선임하는 게 중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