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줬다 뺏기’

여ᆞ야 '책임 공방'에 간호사들 광화문 거리로

"정부ᆞ여당은 간호법 제정안 (신설조항)에 대해 '메스'로 정밀 수술하려고 했는데 야당이 이 문제에 '도끼'를 들고 왔다."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

"간호법은 지난 대선에서 양당 모두 인정했던 입법과제였지만 정부ᆞ여당은 추진을 위한 노력 않고 대통령 거부권이라는 '도끼'를 휘둘렀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

지난 18일 오후 KBS라디오 인터뷰에서 여ᆞ야 간 '민생 책임자'로 평가받는 인사들이 간호법 제정안 대통령 거부권 사태를 놓고 벌인, 이른바 '도끼 논쟁'이다.

이렇게 정치권에서 간호법에 대해 공회전을 거듭하는 동안, 약속받았던 간호법 제정안을 '빼앗긴' 간호사 10만여 명은 광화문 거리로 나와 "대통령님, 간호법 제정 약속 지켜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간호계 반발, 집권세력 '간호법 줬다 뺏기'

누구나 받았던 것을 다시 빼앗겨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빼앗긴 사람 입장에서 이것은 굉장히 불편한 상황이다. 아예 처음부터 없었다면 모를까, 받았던 걸 다시 돌려주게 되면 괜스레 서러워지기도 한다.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학교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부존 효과(보유 효과)'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세일러 교수는 소유한 것에 대한 가치평가가 소유하지 않은 것보다 더 높게 나타난다고 짚었다. 그는 이러한 행동경제학 개념을 통해 지난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최근 간호계의 거센 반발은 '부존 효과'로 설명이 가능하다. 정부ᆞ여당은 지난 2022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간호계에 간호법 제정안을 약속했다. 그런데 정작 집권 이후 '간호계의 숙원'에 대해서 반대에 나섰다. 이는 현 집권 세력이 간호계에 '간호법안 줬다 빼앗기'를 시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與, 지난 대선 "간호협회 숙원에 최선" 약속했는데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이었던 지난 2022년 1월 11일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서울연수원에서 열린 간호사 간담회에서 신경림 당시 간호협회장으로부터 간호협회 정책제안서를 넘겨받으며 "잘 검토해서 간호협회의 숙원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저도, 의원들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당시 자신이 약속한 '간호협회의 숙원'이 현 간호법 제정안임을 모를 수 없었다. 그때 간담회장에는 '간호법 제정으로 국민 건강 지키겠습니다'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어 원희룡 당시 선거대책본부 정책본부장(현 국토교통부 장관)도 지난 2022년 1월 24일 간호협회 정책간담회에서 "국민의힘은 누구 못지않게 앞장서서 조속히 입법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이것은 후보가 직접 약속했다"고 밝혔다.

또 임이자 선대본부 직능위원장(현 국민의힘 의원)도 이날 "간호법은 70년 동안 의료법에 묶여 있다 보니까 불합리한 점도 많고 (…중략…) 간호법을 우리가 분리해서 제정해줘야 하는 데 공감한다"고 했다.

지금 간호사들이 '약속받지도 않은 것'을 달라고 주장하면서, "간호법 제정은 국민과의 약속입니다. 대통령님, 간호법을 공포해 주십시오"라고 억지 호소를 하는 것인가?
 

'보건ᆞ의료계 갈라치기'로 간호법 빼앗은 여권

정부ᆞ여당이 간호법 제정안을 '줬다 뺏은' 과정은 더욱 볼썽사나웠다.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간호법 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자, 정부ᆞ여당은 지난 14일 고위당정협의회를 진행한 후 결과 브리핑을 통해 간호법안에 대해 '입법독주법'ᆞ'의료체계 붕괴법'ᆞ'간호조무사 차별법'ᆞ'신카스트 제도법'이라고 질타했다.

또 여권은 이날 결과 브리핑에서 이어 "약 400만여명에 달하는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등이 일자리 상실을 우려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보건ᆞ의료계 갈라치기'의 싹을 놓는다. 이어 16일 국민의힘 원내대변인 논평을 통해 "간호법은 간호사 단체를 제외한 13개 보건의료 단체가 강력히 반대하는 법안"이라며 '갈라치기'에 불을 붙였다.

여당에서 스스로 지난 16일 주장한 "문재인 정권은 5년 내내 갈라치기로 일관하더니"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집권 세력이 '간호법 반대 세력'에 대해 언급하자, 이는 곧 '50만 대 100만 수싸움 논쟁'으로 귀결됐다. 일각에서 '표'로만 계산하면 간호법 찬성 측은 50만여 명에 못 미치지만, 반대 측은 100만여 명에 이른다는 평가가 나온 것이다.

보건복지부 '2022 보건복지통계연보'에 따른 면허 소유자 기준으로, 한 축에는 간호사(45만 7천여명)ᆞ한의사(2만 6천여명) 등이 설정됐다. 다른 한 축에는 의사(13만 2천여명)ᆞ간호조무사(72만 5천여명) 등이 자리 잡았다. 이로서 여권은 "의료계를 두 쪽으로 분열시키"는 데 기여했다.

문제는 정부ᆞ여당에 의해 촉발된 '숫자 싸움'에서, 간호법 제정안의 최대 이해당사자인 '의료 소비자 95만여 명'이 수치에 반영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21년간 간호장교로 일했다는 김영희 예비역 중령은 지난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인근에서 열린 '간호법 제정 거부권 행사 규탄 총궐기대회'에서 "의사협회는 '지역사회' 문구가 걱정된다는데, 이는 사각지대에 놓인 지역사회 의료 대상자를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는 지난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2021년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받은 국민은 95만여명이 넘는다. 이들은 건강보험 제도와 의료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정작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각지대 환자들"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만신창이 된 간호계… 집권세력이 눈물 닦아줘야

간호계는 '약속받았던 간호법을 도로 빼앗기는' 과정에서 만신창이가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였던 지난 2022년 1월 11일 "(코로나19 시국에 대한) 간호사 여러분의 헌신과 희생에 우리 국민과 정부가 합당한 처우를 해주는 것이 바로 공정과 상식"이라고 말했다.

그랬던 윤 대통령은 집권 이후 정부ᆞ여당이 지난 14일 고위당정협의회 직후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간호사 이기주의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을 건의하자, 이틀 뒤 간호법에 거부권을 행사한다.

이어 국민의힘 이철규 사무총장은 지난 17일 KBS라디오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간호법안을 약속했다'라는 지적에 대해서 "대선후보로서 간호사 처우 개선하자는데 약속 안 할 이유가 있었겠느냐"라며 "그런데 동의한다고 해서 그들의 요구를 다 들어줘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옹호하고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