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마지막 참사 유가족 되길”… 이상민 탄핵심판 최후 변론기일

"대한민국에서 참사로 인한 고통을 겪는 유가족은 우리가 마지막이어야 합니다. 이태원참사와 같은 사회적 재해가 다신 일어나선 안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참사에서 교훈을 얻고 참사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관리책임자인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그 직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만 합니다. 존경하는 재판관님. 국민 생명권을 지켜주지 못한 장관에 대해 국가로서 최소한의 조치를 해주십시오."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심판 최후 변론기일에서 증인으로 참석한 이정민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 직무대행은 재판부를 향해 이같이 호소했다.

이정민씨는 이날 증인진술에서 자신이 이태원참사 희생자인 故이주영씨의 아버지임을 밝힌 후 발언을 이어갔다. 앞선 변론준비기일에서 청구인(국회) 측과 피청구인(이상민 장관) 측이 참사 유가족의 증인채택여부를 두고 설전을 벌이자, 헌법재판소는 유가족 한 사람에 대해 최후 변론기일에서 10분 이내 진술기회를 부여한다고 밝혔다.

"작년 10월 29일, 당시 제 딸은 결혼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참사가 벌어졌던 29일 당일은 제 딸이 웨딩 플래너를 만난 날이었습니다. 저녁에 딸이 남자친구와 함께 외출한다는 것을 듣고, 저는 아내와 함께 저녁을 먹고 TV를 보고 있던 중에 딸의 남자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딸 남자친구가 울면서 이태원 역으로 와달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이씨의 목소리에서 울먹임과 훌쩍임이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인파를 뚫고 이태원역 1번 출구 옆쪽 해밀턴 호텔 골목길, 그 바로 옆 상가에 도착했습니다. 상가로 들어가려는데 경찰이 못 가게 막아서 상가 통로 위로 아래를 들여다봤습니다. 그곳에는 많은 아이들이 누워있었고, 딸 남자친구가 계속 CPR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곳에 모인 경찰·소방은 이윽고 가족들에게 설명도 없이 희생자들을 이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오히려 현장 기자들이 희생자 이송 등에 관한 정보를 주고 있었습니다. 희생자들 사이에 있는 딸을 확인했지만, 공무원들은 우선 주민센터에서 실종자 신고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실종신고를 하고 기다렸습니다. 반나절이 지나서야 의정부 병원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왜 딸이 연고도 없는 의정부로 갔는지는 아직도 납득이 안 됩니다."

그의 목소리는 어느샌가 울먹임에서 흐느낌으로 바뀌어 있었다.

"병원에 갔더니 검시에 관한 어떠한 설명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일부 경찰·검찰은 유가족들에게 마약이 의심된다며 부검 여부를 묻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유가족들은 엄청난 모욕감을 느끼고 거부했습니다. 제가 신원확인을 마친 이후 제 딸 주영이를 남양주 병원으로 옮기고자 하니, 경찰이 조서를 다시 써야 한다고 해서 아들이 경찰조사를 받았습니다. 아들은 경찰이 참사 생존자였던 주영이 남자친구 앞에서 자신에게 '남자친구는 살아 돌아왔는데 주영이는 왜 죽은 것 같냐'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를 앞에 두고 경찰이 그런 질문들을 할 수 있는지, 납득이 안 됩니다. 딸 남자친구는 아직도 참사 순간에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으로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어 헌법재판소 재판부를 향해 호소했다.

"무고한 생존자들과 당시 시민들이 희생자를 살리려고 온 힘을 다하는 동안, 책임자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1시간 40분이 지나서야 현장에 도착하곤 '이미 골든타임이 지난 시간이었다'고 했습니다. 이태원참사에 대한 조사도 제대로 않은 정부가 골든타임이 지났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합니까? 참사 피해자·희생자들이 겪은 1시간 40분 동안 국가는 부재했습니다. 정부가 없는 현장에서 아이들은 사경을 헤매다가 하늘로 떠났습니다. 이상민 장관은 참사 이후에도 장관 업무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향해 '놀러 갔다가 죽었다', '시체팔이' 등의 2차가해성 발언이 쏟아질 때, 묵인하는 게 행안부 장관의 역할입니까? 참사 당일 행정안전부 장관의 모든 관심은 이태원 인파 밀집에 대한 대책이 아니라 용산 대통령실 경비에만 매진돼 있었습니다. 그는 행안부 장관으로서 국민 안전 지키기 대신에 대통령 수호라는 역할만 수행한 것입니다."

이어 흐느끼는 목소리로 헌법재판소의 재판부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국가의 책무를 강조하며 이상민 장관의 탄핵을 촉구했다.

"존경하는 유남석 헌법재판소장님. 주심을 맡고 계신 이종석 재판관님. 그리고 헌법재판관 여러분. 국가로서 최소한의 조치를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에서 이태원참사와 같은 재해로 고통을 겪는 유가족은 우리가 마지막이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참사에서 교훈을 얻기 위해서는 관리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어야만 합니다. 이는 사회적 재난으로부터 보다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역사에서 이태원 참사가 대한민국의 마지막 참사로 기록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상민 탄핵심판, 변론기일 마무리

헌법재판소는 27일 오후 10.29 이태원참사 부실대응 혐의로 국회에서 탄핵소추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심판에 대한 최후 변론기일 절차를 진행했다. 국무위원 탄핵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은 것은 75년 헌정사상 처음이다.

국회는 지난 2월 8일 이상민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는데, 이는 이태원 참사 발생 102일 만에 이뤄졌다.

헌재는 지난 4월부터 1·2차 변론준비기일을 통해 탄핵소추 청구인(국회) 측과 피청구인(이상민 장관) 측의 쟁점정리 절차를 진행했다. 이후 지난달 9일부터 총 4차례에 걸친 변론기일을 진행해 양측의 주장을 듣고 관련 증거를 제출받았다.

국회 측은 이태원참사 발생 전후로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미설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적시 가동 의무 위반 ▲참사 당시 경찰력 등 대응인력 적시 투입 미흡 ▲다중밀집 인파사고 예방 및 대비 의무 불이행 ▲참사 당시 재난안전통신망 활용 미흡 등을 지적하며, 헌법재판소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을 주장해 왔다.

이상민 장관 측은 ▲주최자 없는 행사에 대해서는 법률적 통제 근거 없음 ▲중대본 설치를 통해 중수본 권한 행사 가능 ▲참사 당시 재난안전통신망 기관 통화그룹 사용 ▲참사 당시 제한된 정보로 인해 상황 파악이 어려웠던 점 ▲재난 전후로 헌법·법률상 '중대한' 의무 위반은 없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어, 탄핵 주장에 반박했다.

국회 측 법률대리인은 이날 최후 변론기일 진술에서 "이 사건 탄핵심판이 권력이 커지면 책임도 커진다는 사실을 고위공직자들에게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라며 "재판부가 국민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헌법이 장식 헌법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살아 숨쉰다는 것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형사상 유무죄를 다투거나 양형을 정하는 자리가 아니다. 헌법상 국민 생명권을 보호해야 할 국가 책임에 대해 그 책임을 다했는지 묻는 자리"라며 "손상된 헌법질서가 회복되고, 보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재판관들이 판단해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상민 장관(피청구인)측 법률대리인은 변론기일 최후 진술에서 "청구인(국회)이 주장하는 탄핵사유는 불분명한 인과관계에 근거하고 있다. 또한 막연하고도 결과론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라며 "재판부가 이 사건 탄핵심판이 정치적 심판 절차가 아니라 법리적 규범 절차라는 관점에서 냉정히 살펴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피청구인(이상민 장관)의 경우 이 사건에서 중대한 헌법·법률 위반의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도의적·정치적 비판을 떠나 재난 주무기관 장관이라는 이유 하나로 파면돼야 한다는 것은 법치주의에 반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헌재는 이날 최후 변론기일을 종결하며 "우리 재판부는 양 당사자 측의 변론 속 주장 내용과 제출 근거를 바탕으로 신속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하겠다. 선고일은 나중에 양측에 통고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