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기준금리 3.50%로 5연속 동결…'경기 지원'에 무게

전문가 "물가상승률 2%대로 안정 등 추가 인상 필요성 줄어"

"국내 경기 상황, 금융부실, 중국발 리스크 요인 등 종합 고려해 동결 결정"

"한미 간 금리 격차 크지만 금리인상 득보다 실이 크다고 판단한 듯"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24일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지속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국내 물가상승률이 두 달 연속 2%대를 기록하는 등 안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침체된 국내 경기 회복 지원을 위해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은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은 본부에서 금통위 본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50%로 동결하기로 했다. 지난 2, 4, 5, 7월 기준금리 동결에 이어 다섯 번 연속 동결 결정이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견조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연준의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16일 공개된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이 매파적인 것으로 나타나면서 향후 긴축적 통화정책 지속 가능성을 올렸다.

이에 미국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4.35%를 기록하며 16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하는 등 글로벌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중국의 컨트리가든 디폴트(채무불이행) 리스크가 대두되면서 중국 인민은행은 대출우대금리(LPR) 인하를 단행했다. 지난 19일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컨트리가든(비구위안)은 달러채 이자를 미지급했다. 유예기간 30일 내에 이자를 갚지 못하면 공식적으로 디폴트가 선언되는 상황이다.

지난해 홍콩 증시에서 거래 중지된 중국 부동산개발업체 헝다는 미국 뉴욕 맨해튼 파산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서를 접수했으며 부동산 개발사 시노오션도 내년 만기 예정인 2094만달러 채권 이자를 상환하지 못했다.

대내적으로는 7월 경상수지가 흑자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는 있지만 연간 전망치 240억달러 흑자 달성 여부는 불확실한 상황이다. 6월 경상수지는 58억7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하며 2개월 연속 흑자를 지속했고 상품수지 역시 3개월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상반기 경상수지는 24억4000만달러 흑자를 달성했다.

하지만 지난 11일 관세청이 발표한 '8월 1∼10일 수출입현황'을 보면 수출액은 132억1800만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5.3%, 수입액은 162억3200만달러로 30.5% 감소했다. 주요 수출품목 중 승용차, 선박은 늘었으나 주력산업인 반도체의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다. 무역수지는 이달 30억1400만달러, 연간으로는 278억5200만달러 적자를 기록 중이다.

최근 부동산시장은 다소 회복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는 여전한 상황이다. 특히 2분기 가계 빚은 전분기말 대비 9조5000억원 늘며 3분기 만에 증가로 전환했다.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1031조2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며 금융안정성 악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현안 질의에 참석해 기준금리 결정 방향성에 대해 "금통위 회의에서는 잭슨홀에서 있을 파월 의장의 발언, 9월 FOMC 예상, 중국 경제 회복이 생각보다 느린 점과 중국의 단체 관광객 허용 등이 우리 경기에 미치는 영향, 최근 늘어난 가계부채 등 다양한 면을 고려해서 금리를 금통위원들과 상의하여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금통위의 금리결정에 시장의 이목이 집중됐다.  금통위의 이번 결정은 부진에 빠진 우리나라 경제 지원을 최우선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는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기존 1.5%에서 1.4%로 0.1%포인트(p) 낮춘 바 있다. 이는 정부와 한은의 전망치와 동일한 수준이다. 2분기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대비 0.6% 증가했지만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교역조건 악화로 전분기 수준(0.0%)을 유지하는데 그쳤다. 이에 한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5년 만에 일본에 역전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금통위는 최근 상승세로 전환된 가계부채 증가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2분기 가계대출은 주택담보대출이 늘고 기타대출 감소규모가 축소되면서 4분기 만에 증가 전환했다. 게다가 2분기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1031조2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한은은 지난 22일 '2023년 2/4분기 가계신용(잠정)' 설명회에서 "가계신용이 증가 전환한 것은 부동산시장 회복 기대감 등으로 주택거래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개별 주담대를 중심으로 가계대출 수요가 늘어난 데다 판매신용의 감소세가 계절 요인으로 둔화된 영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와 비교해 볼 때 높은 편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규모이고 최근 다시 증가 전환되었기 때문에 한은과 정부, 관계당국에서 주목하고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면서 "거시적으로 한은과 정부, 관계당국이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더 높아지지 않도록 단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가계부채 대응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국내 물가가 안정세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해 금리동결 결정을 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한국의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3%로 전월 2.7%에 이어 두 달 연속 2%대를 기록했다. 한은은 지난 2일 '물가 상황 점검회의'에서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집중호우 등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기저효과가 작용하면서 예상대로 둔화흐름을 이어갔다"며 "농산물가격은 집중호우의 영향으로 채소를 중심으로 전월대비 상당폭 상승했으나 전년동월대비로는 기저효과 등으로 전월에 비해 오름폭이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당초 예상대로 8월부터 다시 높아져 연말까지 3% 안팎에서 등락할 전망"이라며 "올해 근원물가 상승률은 5월 전망치를 다소 웃돌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완만한 둔화 흐름을 나타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총재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현안 질의에서 "7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3%, 근원물가상승률 3.3%이었다. 8~9월 다시 3%대를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며 "그 뒤로 천천히 떨어져서 내년 하반기 2% 중반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은 "국내 물가상승률을 보면 이 2%대로 목표 물가에 어느 정도 부합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금리를 추가적으로 인상할 필요는 없어졌다"며 "반면 국내 경기 상황이 매우 안 좋다. 금융부실 문제도 남아 있어 금통위원들은 금리인상을 결정하기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금통위의 이번 결정은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가 벌어졌고 추가적으로 더 확대될 가능성은 있지만 격차를 좁이기 위해 금리인상을 하는 득보다는 인상으로 인한 실이 훨씬 더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실장은 "금리인상을 주장하는 의견은 주로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를 고려한 것인데 금통위는 이미 벌어진 기준금리 격차를 용인함으로써 나타날 부정적 효과보다 금리의 추가적인 인상을 통해 국내에 미치는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더군다나 중국발 리스크 요인이 크게 부상한 상황이기 때문에 그것이 한국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본다면 추가적인 금리인상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금통위원들은 국내외 경제 상황들을 종합해 볼 때 추가적인 금리인상보다 금리동결이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