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과 관련해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에게 업무상 배임혐의를 적용해 영장을 청구함에 따라 2003년 7월을 전후한 외환은행 매각 비리 의혹의 실체가 조만간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8개월 가까이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이라는 본체와 외환은행의 외환카드 주가조작, 비자금 조성, 로비 의혹 등을 함께 수사한 끝에 론스타의 외환카드 주가 조작이라는 '꼬리'를 잡는 데 성공했다.
이어 이강원 전 행장을 사법처리하는 단계로 곧바로 넘어가려는 것은 그가 외환은행의 최고 경영자였다는 점에서 헐값매각 의혹이라는 몸통 수사가 중요한 전환점을 맞고 있음을 의미한다.
검찰은 수사 중반까지 '정책적 판단'을 처벌할 수 있느냐는 문제 때문에 고심했지만, 180만여건의 파일과 이메일, 자문사의 서류 등을 분석하면서 정책적 판단이 아닌 인위적 조작이라는 결론에 다다른 것으로 전해졌다.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이강원 전 행장은 매각 관련 핵심 인물이다"라고 밝혀 이 전 행장을 중심으로 2003년 상황이 전개됐음을 내비쳤다.
검찰이 이 전 행장에게 적용한 혐의는 외환은행을 더 비싼 가격에 매각할 수 있었는데도 저평가된 금액에 서둘러 론스타에 팔아 넘겨 결과적으로 외환은행과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어서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 금융 당국으로 확대 가능성…연쇄 사법처리 예고 = 이 전 행장에게 외환은행 매각에 따른 손해의 책임을 묻는다면, 당시 매각 근거로 사용된 각종 수치 등 외환은행의 경영 자료 역시 잘못됐다는 결론을 내릴 여지도 있다.
감사원은 올 6월 헐값매각 의혹과 관련된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매각 당시 외환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정확하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8% 이상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
검찰은 이 전 행장 등 관련자들을 몇 달 간 조사한 끝에 매각 당시 BIS 비율이 지나치게 낮게 산정됐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조작'이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산출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BIS 비율 뿐 아니라 부실 자산 평가에서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당시 외환은행의 가치를 떨어뜨리려는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었다고 밖에 볼 수 없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효력을 둘러싼 논란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 전 행장 외에 이달용 전 부행장과 외환은행 실무 관계자, 금융 감독 당국 관계자, 일부 자문사 관계자들도 사법처리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어 내주쯤 3~4명의 영장이 청구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검찰은 또 이 전 행장이 론스타측으로부터 최종 주식매매계약 체결 전 행장 유임을 보장받았다가 중도 퇴임 결정 이후 보상금 명목으로 모두 26억 원을 받은 부분도 사법처리하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 '진짜 몸통' 논란 가능성도 = 검찰이 이 전 행장과 이달용 전 부행장 등 당시 외환은행 경영진을 처벌하게 되면 남는 것은 매각 당시 대주주였던 정부의 판단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점이다.
검찰은 당시 경제부총리였던 김진표씨와 청와대 정책수석을 맡았던 권오규 경제부총리, 이정재 전 금감위원장 등 전·현직 고위 경제관료들을 모두 조사했다.
남은 사람은 론스타의 법률 자문을 맡은 김&장에서 고문으로 몸 담았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정도다.
그는 당시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과 김석동(현 금감위 부위원장) 금감위 감독정책 1국장 등 인맥을 통해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 자격을 갖도록 법률적 조언을 하는 등 막후에서 움직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이 전 부총리를 몇 개월째 출국금지 조치만 해놓고 "때가 되면 부른다"며 조사를 미뤄왔다.
김석동 부위원장은 최근 국회 법사위의 대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나와 "당시 상황으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 전 부총리를 제외하고 나머지 전·현직 경제관료들은 참고인 신분임을 누차 밝혔고, 방문조사를 한 경우도 있어 이들에 대한 조사는 사실관계 확인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감사원 감사에서 이 전 행장과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이 사모펀드에 불과한 론스타에 매달린 정황이 곳곳에 드러났는데 정부가 지분을 가진 거대 은행을 은행장과 재경부 국장 선에서 펀드에 매각할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점으로 남는다.
미국으로 달아난 론스타 코리아 전 대표 스티븐 리가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 한 정관계 및 금융계 등과 관련된 로비 의혹도 묻힐 수 있다.
검찰은 이런 논란을 충분히 의식한 듯 수사결과 발표 때 모든 것을 밝히겠다며 '몸통' 수사는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얼마나 소득을 올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