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사건, 민주주의의 후진성과 언론의 깊은 내상 드러낸 사건
청와대와 언론간의 날 선 다툼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그 강도와 범위가 점점 깊고 넓어지고 있다. 보통 홍보라인을 통해 이뤄지던 이 같은 다툼에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도 합류했다.
이병완 청와대비서실장은 11일 청와대브리핑에 '대통령비서실 직원 여러분께-2006년 한 해를 보내며 드리는 글'이란 제하의 글을 통해 2006년 업무에 대한 평가와 함께 언론에 대한 비판을 담아냈다.
이 실장은 "과연 우리가 선진 반열에 들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정량평가가 아닌 정성평가로 우리 사회를 진단할 때 왜 우리는 선진국이라 자부할 수 없는지 생각해보자"며 "저는 그 대답의 하나를 대한민국의 지성과 언론의 위기에서 찾고자 한다"며 언론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이 실장은 이를 보여주는 3가지 사건이 있었다며 언론의 잘못을 조목조목 짚어냈다.
이 실장은 먼저 "우리나라 신우익(뉴라이트)의 두뇌들이라는 몇몇 학자들의 모임인 교과서포럼은 일제식민시대를 '근대로의 주체적 이행과정'이고 '이 땅에서 도시화·산업화 등이 이뤄진 근대적 경제성장기'라고 기술하는 '한국 근현대 교과서' 시안을 발표했지만 대다수의 언론은 이번 사건을 일과성으로 치부해 버렸다"고 지적했다.
이 실장은 이어 "정치권도 몇 마디 논평을 끝으로 외면하고 지성계마저 우물우물 넘어갔다"면서 "보수 우익신문들이 조용한 이유는 그들이 지원하고 키워오고 다음 정권의 담임세력으로 밀어온 뉴라이트 세력이 만든 역사기술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 실장은 "무서운 현실이고 두려운 현상이다. 파쇼적 분위기가 넘실거린다"면서 "한민족의 혼과 맥을 끊으려 했던 강점과 침탈의 일제시대가 찬양되고 피로 얼룩진 민주화 역사가 짓밟히는데도 대다수의 지성과 언론이 침묵내지 방관을 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보수언론을 향해 강한 말들을 쏟아냈다.
이 실장은 두 번째로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 문제를 꺼냈다. 이 실장은 "전 소장의 임명동의안 철회는 사실 우리 의회민주주의의 조종(弔鐘)이나 다름없다"고 평가했다.
이 실장은 "과정이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의정절차를 진행시키지 못한 국회 역시 책임을 피하기 어렵고 이 모든 것에 끝내는 굴복하고만 참여정부는 스스로 민주주의의 조종을 친 종지기가 된 셈"이라며 "부끄럽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더 큰 문제는 이 명백한 불합리와 부조리에 대한 언론과 지성의 침묵과 외면"이라며 "대부분의 언론과 지성들이 이 사안의 본질을 외면한 채 동네 불싸움 보듯 구경하고 있었는데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 실장은 세 번째 이유로 한나라당 사무총장의 성추행 사건을 들었다. 이 실장은 "이 사건은 우리 민주주의의 후진성과 아직도 잔존하는 일부 언론계의 깊은 내상을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 실장은 "앞서 제기한 세가지 사건을 2006년에 일어난 그 어떤 사건보다도 이 시대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 사건의 중심엔 항상 '언론'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 실장은 "우리가 가고 있는 역사는 본질상 진보의 흐름이라고 믿는다. 이 흐름을 일시적으로 기득권과 반동의 저수지에 가둘 수는 있어도 곧 둑이 터지고 마는 것은 역시 시간의 조화"라며 "교과서포럼, 전효숙, 여기사성추행 이 세 가지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 실장은 2006년 평가에 대해선 초음속훈련기 생산, 반기문 외교부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당선, 수출 3000억원 돌파는 우리의 자긍심을 고취한 소중한 기억이라고 언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