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입법기구 쪽지’ 판사가 묻자.. 윤석열 “김용현이 썼나 가물가물”

윤, 비상계엄 당시 최상목에게 ‘비상입법기구 쪽지’ 전달

윤 측 변호인단, 계엄포고령 1호에도 “김용현 잘못 베껴”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당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전달한 이른바 '비상입법기구 쪽지'와 관련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쓴 것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 측은 계엄포고령 1호 내용과 관련해서도 김 전 장관이 잘못 베낀 것이라는 취지의 답변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바 있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 18일 구속 여부 결정을 위한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서 40분에 걸쳐 비상계엄 관련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차은경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는 이날 윤 대통령에게 '계엄 선포 이후 비상입법기구 창설 의도가 있었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쪽지는) 김용현이 쓴 것인지, 내가 쓴 것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답변했다. 이는 12·3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 '2인자'라고 분류되는 김 전 장관에게 윤 대통령이 책임론을 지운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또한 "비상입법기구를 제대로 할 생각은 없었다. 정말로 계엄을 할 생각이었으면 이런 식으로 대충 선포하고 국회에서 해제 요구안 가결된다고 순순히 응하고 그렇게 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차 부장판사가 '비상입법기구는 국회 기능을 대신하는 것인가'라고 재차 묻자, 윤 대통령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윤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선포 직후 최 대행에게 건넸다는 '비상입법기구 쪽지'는 국회 정치활동을 전면 금지한 계엄포고령 1호와 함께, 윤 대통령이 국회 기능을 마비시키려 했다는 대표 증거로 꼽힌다.

윤 대통령 측은 비상계엄 당시 선포된 포고령 1호에 대해서도 '김 전 장관이 잘못 베낀 것'이라는 취지의 답변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하면서, 책임론을 김 전 장관에게 떠넘기는 듯한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윤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지난 14일 헌재 탄핵심판을 앞두고 제출한 답변서에서 "포고령 1호는 국방부 장관 김용현이 종전 대통령에게 국회 해산권이 있을 당시 예문을 그대로 베껴온 것"이라며 "문구의 잘못을 부주의로 간과하고 포고령에 표현이 미숙했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한편, 윤 대통령과 함께 12·3 비상계엄 핵심 주동자로 분류되는 김 전 장관이 헌재 대통령 탄핵심판에 출석할지 눈길이 쏠리는 분위기다. 헌재는 지난 17일 동부구치소에 수용된 김 전 장관에게 오는 23일 증인신문 출석요구서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