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사들이 상장차익의 계약자 배분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1조5천억원 규모의 공익기금 출연을 결의함에 따라 1989년 교보생명의 상장 전제 자산재평가 이후 18년간 끌어온 생보사 상장작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생명보험협회는 6일 공익기금 출연계획을 발표하면서 상장과 무관한 순수한 사회공헌사업 차원이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금융감독당국의 수장인 윤증현 금감위원장조차 생보사 상장의 전제조건으로 사회공헌 필요성을 누차 강조해 왔다는 점에서 공익기금이 생보사 상장에 부정적인 사회 일각의 여론을 돌리기 위한 조치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보험소비자연맹 등 사회단체와 일부 정치권에서 여전히 상장차익의 계약자 배분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날 공익기금 출연결의를 통해 비판적 여론을 달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함에 따라 생보사 상장작업은 `9부능선'을 넘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이에 따라 교보생명과 동부생명 등 상장을 서두르고 있는 회사들중 연내에 `상장 1호사'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공익기금 출연방식과 의미 = 공익기금 규모는 당초 예상했던 1조원 규모보다 5천억원 가량 늘어났다. 기금 출연에 대해 외국계 생보사 1~2곳은 동의하지 않아 이들을 제외한 채 사업이 추진된다.
생보협회가 마련한 공익기금 조성 방안은 회사 규모에 따라 지정 기부금의 손비 인정 한도인 세전이익의 5%를 기준으로 향후 20년간 최소 5%에서 최대 30%를 출연하는 방식이다.
1989년과 1990년 상장을 전제로 자산재평가를 실시해 수백억원대의 내부유보금이 남아 있는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이 가장 많은 기금을 출연하게 된다. 삼성생명은 매년 세전이익의 1.5%, 교보생명은 세전이익의 0.75~1.5%를 낸다. 나머지 생보사들은 상장 전에는 세전이익의 0.25%, 상장 이후에는 0.5%를 각각 기금으로 출연한다. 공익기금 조성규모가 목표에 미달하면 업계 협의를 거쳐 출연기간을 연장하게 된다.
공익기금은 건전한 생명보험문화 확산을 위한 사업으로 기부보험과 극빈자.저소득층 대상 건강보험 지원 등 공익성 상품의 개발 및 지원, 업계 공동 원스톱 상담센터 운영 등 보험소비자 보호를 위한 사업에 사용된다.
또 소외.극빈.노숙자 계층 자활지원센터 운영과 노령화 등 사회병리 현상에 대한 연구지원 등 소비자 신뢰구축을 위한 사업에도 사용된다.
공익기금 규모는 당초 알려진 1조원보다 크게 늘어난 것이지만 삼성생명의 상장차익이 15조원, 교보생명도 수조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미흡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향후 상장일정 = 금감위는 증권선물거래소와 생보사 상장 규정 개정을 위한 협의를 진행중이며 이르면 이달말, 늦어도 내달초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증권거래소는 이미 상장규정 개정안 초안을 금감위에 제출한 상태이며, 곧 본안을 정식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장 기반이 마련되면 생보사들은 상장 준비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다.
대표 주관사 선정과 기업공개를 위한 이사회 의결, 상장 예비심사 청구, 공모 등 상장 절차를 밟는데 통상 6개월이 걸리는 점을 비춰볼 때 11월 이후에는 상장 생보사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생보사 상장자문위원회가 상장안을 확정해 발표했을 때는 7~8월에 첫 상장 생보사가 등장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공익기금 출연 문제로 늦어진 것이다.
현재 상장 요건을 충족하고 있거나 3월 결산때 충족할 수 있는 생보사는 삼성.교보.흥국.동부.신한생명으로 이중 교보생명과 동부생명이 상장에 적극적이다. 동양생명과 금호생명, 미래에셋생명, 녹십자생명 등도 내년중 또는 2009년까지 상장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사회단체.정치권 동향이 변수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보험소비자연맹, 참여연대, 경제개혁연대 등 4개 시민단체는 공익기금 출연방안에 대해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또는 `여론 호도용'이라며 여전히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들은 전날 발표한 성명을 통해 "주주가 과거계약자의 기여를 인정.보상하는 것이 상장문제 해결의 핵심"이라며 "시민단체와 계약자단체, 국회의 계속되는 문제제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둘러 예정된 각본대로 생보사 상장 문제를 매듭지으려는 금감위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생보사의 상호회사적 성격을 인정한 재경부와 보험계약자 보호라는 의무를 지닌 금감위가 향후 증권거래소의 상장규정 개정안 승인 과정에서 생보사 상장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예의 주시할 것"이라며 계약자 대표가 포함된 상장추진위원회를 구성을 요구하는 한편 이 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강경 방침을 재차 천명했다.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과 이상민 의원 등 여권 의원들이 중심이 돼 국회에 제출한 보험업법 개정안의 처리도 생보사 상장의 또다른 변수다.
생보사 상장과 관련해 계약자에 대한 보호 또는 상장차익 배분을 요구하는 내용의 이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지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법안 심의 과정에서 시민단체의 반대여론과 맞물릴 경우 생보사 상장계획 자체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확산시킬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연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격랑 속으로 빠져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사회단체의 손을 들어줄 경우 20년 가까이 끌어온 생보사 상장 문제가 또다시 미궁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