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판결 후 승인' 논리 허점 찔러
최근 HSBC은행이 금융감독당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론스타와 외환은행[004940] 지분 인수 계약을 체결한 것은 현재 진행중인 재판 1심에서 론스타의 유죄를 인정하는 결정이 나올 것이라는 시나리오에 기반을 둔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론스타가 항소를 자진 포기해 금융감독당국으로부터 강제 지분 매각 명령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HSBC와 체결한 계약을 이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론스타는 최종 판결까지 기다리지 않고 외환은행을 매각할 수 있으며 HSBC는 법원 판결 및 국내 여론에 발이 묶인 국내은행들을 유유히 제치고 1대1 단독 기회를 맞을 수 있다.
5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HSBC와 론스타의 외환은행 지분 인수 본계약은 한국 정부 당국의 논리와 반 외자정서의 틈새를 교묘하게 찌른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HSBC와 론스타가 현재 진행중인 2003년 외환은행 매각 관련 재판이 1심에서 마무리될 수 있다고 보고 베팅에 나섰다는 설명이다.
HSBC는 론스타와 협상 최종 기한을 내년 4월30일로 설정했다.
주식취득 승인을 위한 정식 신청서가 내년 1월31일까지 금융감독위원회가 제출되지 못하는 경우 론스타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으며, 4월30일까지 인수가 완료되지 않으면 당사자 일방에 의한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
4월30일까지 금감위와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기관의 승인을 충족해야 계약이 성립한다는 의미다.
금융가는 내년 4월이면 1심 판결 정도는 가능해도 1심에 대한 항소가 제기될 경우 최종 판결까지는 2-3년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은 법원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 외환은행 인수 승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즉 HSBC와 론스타의 이번 계약은 1심이 최종판결이 되는 시나리오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설명이다.
매각에 정통한 한 금융계 소식통은 "현 상황에서 1심이 최종 판결이 되는 시나리오는 법원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재판에서 론스타에 유죄를 선고하고 론스타가 이에 대해 항소를 하지 않는 케이스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원이 무죄를 선고할 경우 검찰의 항소가 확실시돼 최종판결까지 진행되면 기일인 4월30일을 훌쩍 넘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재판은 크게 두가지다.
검찰이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과 관련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 등 3명을 업무상 배임혐의로,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의혹과 관련 유회원 론스타 코리아 대표를 기소한 건이다.
전자의 경우 유죄 입증이 만만치 않은 데다 1심에서 유죄판결이 나도 3명의 피고가 항소에 나설 가능성이 커 재판은 최종심까지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후자 케이스다.
유죄판결 가능성도 상당하고 피고가 론스타 측 인사여서 유죄를 인정하고 항소를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 경우 론스타는 6개월 내에 10%를 초과하는 지분을 강제매각해야 한다.
이 때 지분 매각 기일과 지분 물량만 규정될 뿐 매각 대상에 대한 단서는 없으므로 론스타는 기존에 매각 계약이 체결된 HSBC에 매각하면 그 뿐이다.
금융감독당국 역시 이런 계약을 통해 HSBC가 대주주적격성 심사를 요청할 경우 그동안 명분으로 삼던 법원 판결이 확정됐고 DBS와 달리 세계적인 은행자본인 HSBC의 인수를 거부할만한 명분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금융허브를 국가적인 과제로 설정한 상황에서 시가총액 기준 세계 3위 은행인 HSBC를 명확한 논리 없이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론스타가 유죄를 인정함으로써 론스타 의도대로 외환은행을 매각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성립하는 셈이다.
금융계 고위관계자는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성향을 띠는 HSBC가 패를 던졌다는 것은 내부적으로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는 의미"라며 "이런 시나리오가 실현될 경우 정부당국도 완전히 허를 찔리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다른 금융계 관계자는 "현실성 측면에서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일 것"이라며 "다만 국내에서 계속 영업을 하려는 HSBC가 감독당국과 관계를 이처럼 악화시키면서 갈 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해보고 있지만 가정을 근거로 당국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법원 판결 후에 생각해볼 문제"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