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서의 종전(終戰)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달 초 평양에서 열렸던 역사적인 '2007 남북 정상회담'에서 대통령 경호와 관련해 남과 북의 경호원들 사이에 일어났던 뒷 이야기들이 대통령 경호실에 의해 소개됐다.
분단이후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육로를 통해 평양에 당도한 노무현 대통령. 그는 군사대치 상태에서 2박3일간의 방북 일정동안, 북한 경호원들에게 자신의 안전을 어떻게 내맡길 수 있었을까.
대통령 경호실은 이와 관련 "남북 경호원들이 '신뢰와 배려'의 바탕 위에 완벽하게 손을 맞춰 합동경호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한 나라의 정상이 외국을 방문할 때 경호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방문국 경호기관에 있다는 것은 외교관례.
이에 따라 평양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의 경호 책임은 북측 경호기관이 지지만, 군사적 대치국면에선 선뜻 북측에만 경호를 맡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경호실은 대통령의 경호를 위해 이 국면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했을까.
■ 만일 사태 위해 대통령 전용기의 평양 순안공항 대기
경호실은 2000여리에 달하는 육로를 통해 평양에 당도할 때까지도 문제였지만, 2박3일간 평양 체류기간 동안의 '만일'을 대비해야 했다.
대통령 경호실 김수병 공보관은 이와 관련 "대통령 경호에서는 단 1%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다"며 "대통령의 절대안전 차원에서 만일을 위해 북측에 요청한 것은 '대통령 전용기의 평양 순안공항 대기'였다"고 전했다.
만일 대통령이 급거 귀국해야 하거나 육로 귀국이 어려울 경우 등 비상상황에 대비한 조처였다. 이에 대해 북측이 북쪽 비행기를 대기토록 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끈질긴 요청으로 북측의 수용을 받아낼 수 있었다는 것.
또 모든 상황을 가정하는 가운데 병원이용 가능성도 문제였다. 이에 따라 구급병원 사전답사를 북측에 요구했지만, 북측이 병원 시설공개를 꺼려 난제에 봉착했다.
만일을 대비한 경호실의 끈질긴 설득 끝에 남측 핵심 관계자들만 시설을 둘러볼 수 있었으며, 경호실은 이에 더해 대통령 차량 행렬에 편성된 남측 '의무차량'에 가용한 첨단 의료기기를 탑재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었다.
■ 평양까지 2천여 리-수시로 대형 변경
경호실에 따르면 군사분계선을 넘어 평양까지 2000여리의 거리는 안전주행을 장담할 수 없었다. 경호실의 사전답사가 필수였지만, 북측이 군사시설 등의 노출을 이유로 거절하면 안전한 경호를 담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북측은 대통령경호실의 사전 답사를 흔쾌히 수락, 대통령경호실 요원들은 사전에 남북 합동 육로 이동에 대비한 특수 기동훈련을 실시할 수 있었다는 것.
경호실 관계자는 "실제 방북 과정에서 남북의 50여대의 차량이 총 4km에 이르는 행렬을 이뤄 100km의 속도로 안전주행할 수 있었다"고 소회했다.
실제 상황에서 대통령 경호실 요원들은 도로 포장 상태가 남쪽과 다른 고속도로, 그것도 18개의 터널을 통과하며 수시로 대형을 변경하는 등으로 위장 효과를 극대화 했다. 경호차량을 비롯해 공식수행원 차량 등에 경호요원들이 배치돼 효과적인 경호를 수행한 것.
■ 아찔했던 무개차 탑승 카퍼레이드
경호실에 따르면 대통령 경호와 관련해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것은 대통령이 북측이 제공하는 무개차에 탑승해 평양거리에서 카퍼레이드를 펼친 일.
북측의 무개차 퍼레이드를 제안 받은 경호실은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는 물론이고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 언론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차량에 동승한 것을 두고 '경호공백'이라고 지적한 것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북측 제안에 대해 남측은 △사전 실제 사용차량 확인 △남측 경호 탑승 보장 △연도 경호안전 대책 마련 등을 요구했고, 북측은 요구수용과 함께 연도에 '안전요원'을 3중으로 배치하는 등 별도의 안전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해 퍼레이드가 가능했다.
■ "위성기기 쓰면 위원장 위치 노출됩네다"
경호실 관계자는 "북측 경호 관계자들과의 최대 난제는 위성기기 사용에 관련된 문제였다"며 "북측은 위성 장치로 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위치가 노출돼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많이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남측으로서도 국가지휘통신망 확보차원에서 물러설 수 없는 사안. 결국 밀고 밀리는 줄다리기 끝에 북측은 남측의 제안을 전격 수용하게 됐다는 것.
이밖에도 북측 경호실은 남측이 기존에 사용하는 대통령 전용 방탄차량과 차량기(태극기·봉황기)를 부착하도록 했으며, 심지어 번호판까지 있는 그대로 북측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파격적인 경호조치에 협조해줬다.
경호실은 "2000년의 경우 북측은 남측 대통령 전용기에 부착된 태극마크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며 "이번 방북시에 북측 경호 요원들은 정장에 경호무전기 등으로 한층 세련되고 선진화된 면모를 보여준 것도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 북 경호원 "남측 경호는 이런 것까지 하냐"-호기심 천국
경호실에 따르면 2007 남북정상회담 진행과정에서 북측 경호기관은 남측의 다양한 기법과 장비를 경험했다. 대표적인 것이 첨단 경호장비를 탑재해 다양한 사주경계 및 경호를 실시하는 대형SUV 경호차량.
평양시내 카퍼레이드 과정에서 경호원이 상반신을 노출하는 '선루프 경호'를 실시하자, 북측 경호요원들은 "남측 경호원들은 이런 것까지 실시 하냐"면서 호기심을 내비치기도 했다는 것.
대통령의 출발에 앞서 수행원 차량을 앞서게 한 것도 이번 경호과정에서 드러난 남과 북의 차이. 남측이 본대 출발 전에 통상 수행원 차량을 먼저 출발시키려 하자, 북측에서는 최고 통수권자가 도로를 사용하기 전에 이용하는 것을 결례로 여기더라는 것.
대통령 경호실은 "이번 2007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측과의 성공적인 합동경호를 계기로 남북 관계의 질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남북 경호기관 사이의 '경호교류'를 추진키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