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판사는 더 나아가 "현직 국세청장이라는 피의자의 지위, 피의자와 주요 참고인들과의 관계, 피의자의 지위가 지휘계통에 있는 참고인들의 진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점 등 여러 정황에 비추어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영장 발부사유를 밝혔다.
고 판사가 말하는 영장발부사유는 "검찰이 주장하는 혐의가 사실이라면 중대한 사안으로 볼 수 있고, 국세청장은 결정적인 증언을 할 증인들인 국세청 직원들에게 지휘계통을 통해 진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구속수사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다.
결국 검찰이 유죄를 주장하는 상황에서 사건의 진실조명에 필요한 증인과 증인의 직속상관인 국세청장을 격리시킬 필요가 있는 만큼, 전 청장이 실제로 유·무죄인지 여부는 상관없이 구속수사를 위한 영장발부는 100% 예견돼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을 모를 리 없었던 전 국세청장은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날이 돼서야 "혹시도 모를 구속상황에 대비해 영장심사를 받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기 직전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했다"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예의를 강조했다.
또 청와대 역시 부산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직전의 정례브리핑에서 조차 "전군표 국세청장이 사의를 표명한 바 없으며, 전 청장에게 먼저 사표를 내라고 강요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계속 고수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는 사이 부산지법은 전 청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전 청장은 국세청 41년사에 15명에 이르렀던 국세청장 중에 현직으로는 처음으로 부산구치소에 수감되는 수모를 겪었다.
지금 2만 명에 가까운 국세청 직원들은 비위혐의로 현직 국세청장이 구치소에 수감된 초유의 사태에 그 어느 때보다 심한 자괴감과 모멸감을 느끼고 있다. 출장을 나간 직원들이 택시를 타고 국세청사에 돌아올 때 목적지를 '국세청' 대신 '종로구청'이라고 말할 정도다.
청와대와 전군표 국세청장은 국세청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2만명에 육박하는 직원들의 사기를 꺾었다는 점에서, 100% 구속이 뻔한 상황에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