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 20만 명을 넘는 강남 최대 사찰 봉은사(주지 명진스님)가 4일 전격적으로 올해 재정 상태를 일반에 처음 공개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지난 8월 한국 천주교 사상 처음으로 재무제표를 일반 신자들에게 공개한데 이어 강남 최대사찰인 봉은사가 재정상태를 공개함으로써 이 같은 재정 투명화가 범종교계로 확산될 지 주목된다.
불교계에서는 송파구 석촌동 불광사 회주 지홍스님이 조계사 주지 때부터 신도회 임원을 대상으로 재정상태를 공개해 왔고, 강북구 수유동 화계사 주지 수경스님도 조만간 재정을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종교사회단체들은 종교기관의 재정 공개와 성직자들의 납세 등을 줄기차게 주장해 왔지만 실행에 옮긴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명진스님은 "올해 불교계를 뒤흔든 신정아 사건과 주지들의 싸움을 다룬 'PD수첩' 등으로 상처받은 1천만 불자(佛子)들에게 청정한 불교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위해 사찰의 재정상태를 알 수있는 불전함(佛錢函)을 공개하기로 했다"면서 올해 11월까지 수입과 지출 내용을 상세히 밝혔다.
이날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봉은사의 올해 11월까지 총수입은 일반회계 86억3천363만원과 특별회계 9억8천457만원을 합쳐 모두 96억1천820만원.
항목별로는 불전함 수입 10억9천900만원, 기도동참 등 불공(佛供) 수입 55억2천만원, 불구(佛具) 판매 등 사업수입 6억9천152만원 등이다.
총지출은 일반회계 78억3천314만원과 특별회계 7억2천415만원을 합쳐 85억5천729만원이다. 주요 지출 내역은 인건비 19억7천190만원, 관리운영비 18억7천653억원, 객비(客費) 등 스님들의 여비 2억2천335만원, 시설비품관리비 5억1천361만원, 종단 분담금 11억8천만원, 포교와 교육연수비 등 목적사업비 14억5천453만원, 경조사비 6천500만원 등이다.
명진스님은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봉암사 결사의 정신을 되살리는 참회법회를 가진지 두 달이 가까워 오지만 개별 사찰들이 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면서 "종단의 모든 분규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거나 주지 자리를 차지하려는 데서 생기는 것인 만큼 승가의 청정한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이기 위해 재정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재정투명화로 인해 절집의 관행인 스님들의 객비나 선방 스님들을 위한 약값 등을 마음대로 지출할 수 없어 실행과정에서 향후 절살림을 운영하는데 어려움이 예상된다"면서도 "일의일발칠가식(一衣一鉢七家食)이라는 승가의 정신으로 돌아가 스님들은 설법과 수행에 전념하고, 살림은 재가 신도들에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봉은사는 향후 불전함을 수거할 때 일반 신자가 참여토록 하고, 회계를 외부 전문가에 의뢰하는 등 매년 분기별로 재정상태를 투명하게 공개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