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그의 행보를 두고 어리둥절해 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국세청장으로서 공식적인 일정을 내·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홀연히 사라졌다가 어디선가 갑자기 '툭' 하고 얼굴을 드러내고는 했습니다.
일례로 취임 후 첫 공식일정이 지난 12월3일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가진 강연이었다는 것을 사전에 알고 있던 국세공무원들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국세청 홍보업무를 도맡고 있는 정책홍보담당관실 직원들조차도 인터넷에 뜬 관련기사를 보고 나서야 알았을 정도입니다.
여기에 더해 지난 12월1일(토요일)에는 몇몇 간부진만 대동한 채 청량리를 방문해 노숙자들에게 밥을 퍼주는, '밥퍼'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왔지만 이 조차도 나중에야 알려지는 등 오리무중 행보를 보였던 것입니다.
□ 동에 번쩍, 서에 번쩍…'홍길동 국세청장'(?)=이미 알려진 대로 한 국세청장은 취임과 동시에 국세청 엘리베이터 1호기(청·차장급 고위간부 전용)를 일반 직원과 납세자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풀어버렸습니다.
이후 한 청장은 자신의 외부일정을 내·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물밑에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12월3일 서울대 행정대학원 강연을 마치고는 종합부동산세 신고업무에 한창인 일선 세무서를 예고 없이 '급습(?)', 상황을 점검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동안 국세청장들은 일선 세무서 순시를 앞두고 미리 방문할 관서를 정하고 사전에 관서장에게 통보, 요란스러운 순시를 해오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러나 한 청장은 있는 그대로의 일선 현장을 점검하려는 의미에서 순시 '10분전 통보' 방식으로 전환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지난 10일 오후에도 한 방송사에 불우이웃돕기 성금 모금 행사에 참석한 뒤 곧바로 인근 양천세무서를 순시하고 돌아왔습니다.
종부세 신고업무 종료일인 17일 오후에도 반포세무서와 송파세무서를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고 고생하는 직원들을 격려하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 날 순시도 역시나 관서장에게 순시 사실이 '10분전 통보' 됐다고 합니다.
□ "형식적 의전도 필요 없다"=지난 16일 한 국세청장은 최악의 기름유출 사태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고향을 찾아 기름제거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 청장은 봉사활동을 가기 전 "실질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36세 이하 직원들 중 희망자만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 청장은 "형식적인 의전도 필요 없다, 실질적인 봉사활동을 하고 오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 날 한 청장은 국세청 직원 120여명과 함께 오전부터 현장에 투입, 오후 4시경까지 기름제거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오후 4시경 봉사활동을 마친 후 직원들을 먼저 서울로 올려보낸 후 한 청장은 태안군청을 방문해 구호물품 등을 전달하고 애로사항을 청취한 뒤 저녁때가 돼서야 서울로 상경했다고 합니다.
□ 한 국세청장, 국세청 '관습법' 없애나=한 국세청장의 이 같은 행보를 놓고 국세공무원들은 긍정적인 반응이 대다수입니다. 특히 순시한번 할라치면 업무보고 준비다 환경미화다 신경쓸 것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의 국세청장들은 이 같은 절차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습니다. 말 그대로 국세청의 '관습법'처럼 여겨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한 청장이 십 수년 동안 내려온 이 같은 격식파괴를 시도했으니 적잖이 어리둥절하다는 반응이 나올법도 하지요.
일선 관서장 입장에서는 갑작스런 방문에 경황이 없을지는 몰라도 허례허식에 치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또한 밥퍼 활동을 비롯 기름제거 등 사회공헌 활동 참가시에도 한 청장은 주변에 요란하게 알리지 말 것을 강조한 점도 '사진이나 찍고 알리기 위한 봉사활동보다는 실질적인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는 자신의 지론을 몸소 실천하고 있습니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한 청장이 격식 등 형식적인 절차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이런 새로운 문화가 정착된다면 한 청장을 기준으로 이전의 국세청과 이후의 국세청 문화는 판이하게 달라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조사국 문은 걸어잠궈 놓은채 자신의 동선을 알리며 홍보에 치중해온 전임 청장과 조사국 비노출을 노출로 선회하며, 자신의 동선은 비노출로 운영하고 있는 현 청장의 행보가 비교되면서 어떻게 조직문화로 스며들지 자못 궁금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