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보고에 따라 당선인 측이 정부 부처를 보는 시각이 어느 정도 정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부처가 확대발전되거나 아니면 아예 분리해체될 수도 있기 때문에 어떤 방향으로, 어떤 톤으로 보고를 할지를 놓고 주요 간부들이 연일 머리를 맞대고 있다.
특히 일부 민감한 현안을 갖고 있는 부처들은 당선인 측의 정책방향을 정확히 알아내 그에 부응하는 모범답안을 만들고자 치열한 눈치작전을 벌이고 있다.
◇ 재경부, 장고 돌입
재정경제부는 당초 3일로 보고일정이 잡혔다가 7일로 연기되자 고민할 것이 많았는데 아주 잘됐다며 장고에 들어갔다.
하지만 종합부동산세를 포함한 부동산 정책이나 각종 세율인하, 7% 성장률과 연간 60만개 일자리 창출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시간이 더 주어졌다고 해서 문제를 쉽게 풀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고민하는 시간만 늘어났다는 지적도 있다.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서는 최근 당선인 측이 부동산 가격상승을 우려해 속도조절에 나서면서 다소 안도하는 분위기다.
주호영 당선인 대변인은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1가구 1주택이나 장기보유주택에 대한 종부세를 완화할 계획이지만 필요하다면 이 시기도 실제 약속했던 늦춘다든지, 아니면 다른 정책수단을 쓴다든지 할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종부세 사수 입장을 견지해온 재경부로서는 고마울 수 밖에 없다.
재경부는 이와 관련, 아직 부동산 시장의 안정기조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폭적인 세제 완화는 시장 불안을 확대시킬 수 있다는 점을 인수위 측에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법인세 인하 등 이 당선인 측의 대대적인 감세 공약에 대해서도 전체적인 재정여건, 세수현황 등과 연계해 실현 가능성을 검토하고 그 결과를 업무보고에 담을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는 출총제 고심
공정위는 업무보고를 앞두고 출총제를 비롯한 주요 현안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를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공정위는 그동안 재벌들의 순환출자를 규제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총제를 무조건 폐지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왔으나, 이명박 당선인 측이 출총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마냥 기존의 입장만을 주장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당장 선거가 끝났다고 '출총제 유지'라는 입장을 180도 바꿔 '폐지'로 돌아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출총제를 폐지하면 안된다는 입장을 끝까지 고집할 수도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입장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TF를 구성, 대기업집단 시책 개편안을 마련하면서 출총제 존폐의 장단점과 대안 등에 대한 검토를 마쳐둔 상태여서 출총제의 도입배경이나 경과, 현황 등에 관해서는 심도있는 검토가 이미 이뤄져있는 상황이지만, 존폐에 대한 최종적인 입장은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공정위는 휴일인 지난 1일에도 권오승 위원장을 비롯한 각 본부장들이 출근해 업무보고 내용을 논의했다. 더구나 지난 5년간 주요정책의 성과나 향후 정책 비전을 담으라는 등 인수위측의 주문사항이 까다로워 고심하고 있다.
◇ 존폐위기 해양부 '패닉' 상태
당장 4일 오전 10시 경제2분과 중 1순위로 업무보고를 하게 된 해양수산부는 준비를 하느라 거의 '패닉' 상태다.
지난 연말까지 태안앞바다 기름유출사고 수습을 위해 비상근무체제를 유지했던 해양부는 연초에 갑자기 업무보고 일정이 잡히자 무엇을 넣을까 전 직원이 머리를 싸매고 있다.
해양부 관계자는 "앞으로 5년간 청사진을 보여줄 철학이 담긴 미래지향적인 보고를 하라고 인수위에서 주문이 떨어졌는데, 이는 통상적으로 현안 위주인 국회 업무보고와는 다르기 때문에 어떤 내용을 담을 지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더구나 부처 개편 논의 속에서 뿔뿔이 흩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해양부는 업무보고를 통해서라도 존속의 필요성을 강조해 보겠다는 욕심이 있어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며,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 농림부 10대 정책공약 중심
농림부는 이번 업무보고에서 이 당선인이 선거과정에서 제시한 10대 농업정책공약을 중심으로 관련 현황과 추진 방향 등을 설명하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새 정부 출범으로 정책기조상 상당 부분 변화가 불가피한 새만금 토지 이용 계획의 경우 '새만금 태스크포스'에서 해당 지방자치단체 의견과 함께 별도로 다뤄질 예정이라 일단 이번 보고 준비에 큰 어려움은 없다는 반응이다.
공약 가운데 '농가 부채 및 이자 동결' 부분도 현재 농지은행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경영회생지원 농지매입 사업'과 방향이 같은 만큼 부채를 전혀 갚을 능력이 없는 '악성 부채자' 등으로 범위만 한정한다면 실행에 무리가 없다는 점을 설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쌀 목표가격 동결' 공약 역시 작년말 일단 농가소득안정위원회 심의를 거친 원안대로 농림부가 쌀 목표가 변경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만약 국회가 정부안을 거부하고 '쌀 목표가 동결'안을 의원 입법으로 통과시키면 이 안을 두고 절충을 시도할 수 있다는 뜻을 전달할 예정이다.
농림부 관계자는 "보고 시간이 20분 밖에 안돼 인수위 쪽에서도 공약 추진에 필요한 현황을 파악하는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본다"며 "인수위가 각 부처별로 보고받은 것을 다시 당선자에게 추려 보고한 뒤 각 부문별 10대 정책과제를 발표할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 산자부, 기업균형정책 수정 수위 고민
오는 6일 인수위 업무보고 일정이 잡힌 산업자원부는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주요 경제부처 가운데 가장 '마음이 가벼운'쪽에 속한다.
친기업적 정책과 투자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이명박 당선인과 가장 '코드'가 맞는다고 자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자부는 각종 대기업 관련 규제를 풀어 투자를 활성화함으로써 일자리를 늘린다는 정책기조에 맞춰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고 있으나 이 경우 대부분 '타겟'이 될 정책들이 출자총액규제나 환경 관련 규제 등 주로 산자부 이외 부처들의 핵심정책이란 점에서 이를 거부감없이 무난하게 포장하는 데 주력하는 분위기다.
산자부는 다만 기존 담당정책 가운데 구체적 집행방식에서 새 정부의 기조와 가장 맞지 않는 부분인 지역균형정책의 수정 수위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가장 많은 산하기관을 거느리고 있기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공기업 민영화는 산자부만의 정책으로 해결될 부분은 아니지만 역시 어느 정도 범위에서 결정해야 할 지도 고민스런 대목이다.
산자부의 한 인사는 "지역균형정책 자체는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추진해야 할 내용"이라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갈라 수도권에 불이익을 주는 형태의 정책이 있다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획처, 공기업 민영화 방안 신경
기획처는 정부 조직개편에 민감한 분위기지만 겉보기에는 담담하게 업무보고를 준비중이다.
고민되는 부분은 예산 20조원을 절감하겠다는 이 당선자의 공약으로 실제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20조원 절감은 쉽지 않다는 것을 예산 당국 입장에서 잘 알기 때문이다.
공기업의 민영화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들의 민영화는 비교적 쉽지만 한국전력.가스공사.지역난방공사 등과 같은 네트워크 기업들은 계획을 수립하는데도 적지않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번 보고 때 어떤 일정을 담을지를 놓고 심사숙고하고 있다.
대외경제 협상을 담당하고 있는 통상교섭본부는 4일 외교통상부와 함께 업무보고를 할 예정이다.
보고 내용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자유무역협정(FTA) 정책과 기업의 해외 진출 지원 등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이며 당선인이 기업인 출신으로 친기업적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만큼 보고 내용이 통상교섭본부의 기존의 정책 방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통상교섭본부는 동시다발적 FTA 전략을 추진해 현재 진행 중인 유럽연합.인도, 여건 조성 중인 중국 등 거대경제권과의 FTA를 마무리하고 걸프협력협의회(GCC),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등 성장시장과의 FTA도 추진해 2월 출범하는 정부에서 FTA를 완결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할 것으로 관측된다.
6일 오전 보고예정인 국세청은 당선인의 공약과 발언 등을 검토하면서 새로운 정부의 정책 목표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국세행정 정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세청은 당선인이 친기업적 정책을 강조한 만큼 한상률 청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친기업적 세정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정책 마련에 초점을 맞추고 민간기업 경영기법 및 인사시스템 도입 등 내부 쇄신 방안도 보고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