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방침을 확정하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출총제를 대체할 대안 마련을 놓고 고심에 빠졌다.
공정위는 출총제를 폐지하려면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나 순환출자로 얽힌 지배구조를 개선할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모토로 삼고 있는 인수위나 새 정부가 새로운 규제 도입을 과연 받아줄 지가 의문이기 때문이다.
7일 공정위와 인수위 등에 따르면 인수위는 공정위의 업무보고 후 "기업에 대한 사전적, 직접적 규제보다는 시장자율에 의해 규제될 수 있도록 사후 감시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사후 감시를 강화하는 방안은 특별히 실효성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재벌규제는 사실상 허물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더구나 인수위가 공정위 뿐 아니라 법무부나 국세청 등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도 기업에 대한 과도한 조사를 자제해야 한다고 밝힘에 따라 공정위가 출총제 대안으로 새로운 규제도입을 주장할 여지가 많지는 않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공정위는 재계의 반발을 사지 않으면서도 대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묘안을 찾아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더구나 일각에서는 이같은 정책기조가 지속되면 새 정부에서 출총제 외에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을 비롯해 상호출자금지나 채무보증제한,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부당내부거래 금지 등의 규제도 풀리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공정위는 이미 지난 2006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대규모기업집단 시책개편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출총제의 대안으로 순환출자 금지나 사실상의 지주회사 제도, 일본식 사업지배력의 과도한 집중금지, 영미식 공시제도, 기업집단별 총출자제한 등을 검토한 바 있다.
공정위가 당시 도입을 가장 희망했던 것은 바로 환상형 순환출자를 직접 금지하는 방안이었다. 환상형 순환출자는 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상호출자의 탈법적 형태로, 계열사들이 환상형의 고리형태로 출자해 결국에는 총수가 3∼4%에 불과한 지분을 갖고도 계열사 전체를 지배할 수 있도록 만드는 형태다.
하지만 이는 삼성과 현대차 등 지주회사 체제로 가지 않고 남아있는 재벌그룹을 직접 겨냥한 것이어서 당시 재계와 경제부처의 강력한 반발을 샀고 결국 도입이 무산된바 있다.
따라서 이번에도 출총제 폐지의 대안으로 이를 다시 도입하는 방안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밖에 기업집단별 총출자 제한은 현재 출총제가 회사별 순자산의 40% 이상을 투자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달리 기업집단(재벌)별로 총출자를 제한하는 방식이지만, 이 또한 투자를 가로막는 걸림돌이라는 비난을 받을 우려가 있어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결국 인수위가 제시한 지주회사 요건 완화를 통해 재벌들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이나 공시를 투명하게 하는 방안 정도만이 현실성 있는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출총제는 그동안 법개정을 통해 대폭 완화됐고 출총제 제약 때문에 출자를 못하는 기업은 단지 2개사에 불과해 37조원이나 출자여력이 남아있다"면서 "대안없이 무조건 폐지하면 과거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라는 폐해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