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상대로 둘째 조남호 한진중공업그룹 회장과 막내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이 지난달 31일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한진가 2세들간 세번째 법정싸움으로 기록될 이번 소송은 선친의 사가(私家)인 서울 종로구 부암동 소재 부암장(6천600㎡)내 기념관 건립 지연에 따른 정신적 손해배상청구 및 상속지분 이전요구소송.
항간에서는 모친(84)이 아직 기거하고 있는 부암장을 놓고 벌어진 소송이라는 점에서 형제간 싸움이 '갈 데까지 간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한진가 2세들의 골육상쟁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재계는 1억원에 불과한 소송 가액과 소송 목적물에서 보듯 이번 소송도 형제간 해묵은 재산상속분쟁의 연장으로 보고 있다.
한진가 2세들의 반목은 2002년 고 조 회장의 별세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양호 회장이 장자로서 그룹 주력인 대한항공을 물려받은 건 당연한 결과였지만 동생들은 불균형 재산상속에 불만이었다.
대한항공 등을 계열사로 한 장남의 한진그룹(분리 당시 계열사수 기준) 시가총액은 5조4천억원(1일 현재)인 반면 차남의 한진중공업그룹은 2조9천억원, 막내 메리츠그룹은 1조7천억원으로 평가되고 있다.
시가총액 2조6천억원짜리 한진해운은 장남 편으로 분류됐던 셋째 조수호 회장의 몫이었지만 2006년 셋째 사망후 장남이 지분을 꾸준히 늘려 사실상 한진그룹 계열사로 분류되고 있다.
재산분할 당시 불균형 논란 속에 고 조 회장이 별세 전 남긴 유언장이 갈등의 불씨가 됐다.
차남은 당시 "고 조 회장이 별세하기 수일 전부터 의식불명인 상태에서 유언장 작성이 대한항공 관계자 입회하에 이뤄져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할 만큼 크게 반발했었다.
유언장 시비로 촉발된 갈등은 2003년 초 모종의 합의서 작성으로 잠시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지만 계속된 형제간 감정싸움 끝에 2005년 차남과 막내가 장남을 향해 '합의 불이행'을 이유로 옛 한진그룹의 지주사격이던 '정석기업 주식 명의이전 소송'을 제기하면서 다시 폭발했다.
장남 측은 고 조 회장 별세 직후 차남과 막내의 반발이 계속되자 2003년 계열분리 직후 대한항공의 메리츠화재와의 운송보험계약을 해지하고, 한진해운 선박보험과 상해보험계약사를 메리츠화재에서 LG화재로 변경해 버렸다.
한진그룹내 각종 건설공사와 선박건조를 도맡아오던 한진중공업과의 인연도 끊는 한편 차남의 모 골프장내 대한항공 광고판도 철수하고, 선대 회장때부터 두 동생의 해외사업활동에 지원되던 항공권 제공도 중단했다.
동생들도 한사코 맞섰다. 한진중공업그룹과 메리츠금융그룹 임직원들이 국내 및 해외출장시 이용하던 비행기를 대한항공에서 아시아나항공으로 바꾼데 이어 집안의 장자를 상대로 한 법정소송까지 제기하며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정석기업 주식 소송에서 차남과 막내는 '삼촌과 외삼촌 명의로 된 아버지의 차명주식을 넘겨주기로 한 합의 이행'을 요구했고, 이 소송은 법원의 강제조정결정으로 일단락됐다. 함께 제기된 대한항공 면세품 납품기업인 브릭트레이딩 관련 민.형사소송은 아직 진행중이다.
이번에 제기된 부암장 소송도 사유는 형제간 합의사항 불이행이다. 원고 측은 '흠집 내기는 아니다'라는 입장이지만 승패를 떠나 장남에 대한 그간의 불신과 불만이 배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계는 형제간 감정의 골이 너무 깊은데다 모친이 기거하고 있는 선친의 사가까지 소송대상이 됐다는 점에서 양측의 불신해소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에서는 신의있는 인사로 꼽히지만 동생들로부터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는 조양호 회장 측은 '동생들이 언제 형 대접해 줬느냐'는 입장인 반면 동생들은 '언제 형 노릇 했느냐"고 반박하고 있다.
형제간 극한적 감정대립은 선친 기제사에서도 엿볼 수 있다. 장남 측은 음력 기일에 맞춰, 차남과 막내는 양력 기일에 같이 제사를 지내고, 선영에 갈 때도 큰 형과는 따로 가는 것으로 전해질 만큼 양측은 갈등의 골이 깊다.
비록 분리됐지만 대한항공과 한진중공업 등 옛 한진그룹 계열사들은 해당 업종의 간판기업으로 꼽힐 만큼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 집안싸움을 지켜보는 국민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