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자금 의혹을 수사 중인 가운데 28일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특검에 소환됐다.
특검팀이 전략기획실 이학수 부회장 조사 이후 핵심인사 중 한 명인 이 전무를 소환함으로써 삼성 비자금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윤정석 특검보는 27일 정례브리핑에서 “경영권 불법 승계 등 전반적으로 관련된 것에 대해 조사할 것이 잇어서 삼성전자 이재용 전무에게 소환을 통보했으며 내일 오전 9시까지는 출석하겠다는 답변이 왔다”고 밝혔다.
이날 이 전무가 소환 조사를 받음으로써 삼성 비자금과 관련해 남은 사람은 이건희 회장과 부인 홍라희씨다.
윤정석 특검보는 지난 26일 “홍라희씨에 대한 소환계획은 없다”고 이야기했지만 이미 홍씨의 미술품 구매 대행을 한 것으로 알려진 서미갤러리 홍승원 대표를 소환 조사한 바 있어 소환 조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건희 회장에 대한 소환조사도 아직 계획된 바 없지만 현재 정의사제구현단 등의 단체에서 이 회장의 소환 조사에 대해 압박을 가하고 있고 삼성비자금의 핵심 몸통으로 지목되고 있는 터라 소환 조사를 할 가능성도 있다.
■이재용, 삼성에 대한 걱정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전무는 이날 오전 9시 10분쯤 한남동 삼성 특검 사무실에 소환돼 “나와 삼성에 대한 많은 걱정과 기대에 대해 잘 듣고 있습니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어 “성실한 답변하겠다”고 특검에 임하는 자세를 밝혔다. 이 전무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취재진들에게 “나 때문에 고생한다”며 “성실하게 하겠다”고 답한 후 8층 조사실로 향했다.
지난 1월 10일 삼성특검 수사가 시작된 이후 삼성일가 인사가 소환되기는 처음이다. 이 전무의 소환은 특검팀은 물론 검찰 등 다른 수사기관에서도 처음이다.
이 전무는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해 참여연대 등이 고발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발생 ▲서울통신기술 CB ▲e삼성 지분 매각 의혹 등 4건의 고소고발 사건 중 e삼성 지분 매각 의혹이 있다.
삼성특검에서 무엇보다도 e삼성 지분 매각 의혹에 대해 집중 추궁할 것으로 예상된다. e삼성 지분 매각 의혹은 그룹 차원의 지원을 받고 시작한 인터넷 사업이 부실화하자 2005년 제일기획과 삼성SDI 등 삼성 측 8개 계열사가 이 전무의 지분을 사들이면서 손실을 보존해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특검팀은 이 전무를 상대로 에버랜드 CB 등 지분 인수 과정에서 그룹 측과 공모했는지, 지분 확보에 사용된 자금의 출처는 어디인지 등에 대해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한편, 이날 중앙일보 위장계열 분리 의혹과 관련해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에게도 출석 통보를 했다.
한편, 27일에는 현명관 삼성물산 전 회장도 소환조사했다. 현 전 회장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매각 의혹이 있다.
특검팀은 에버랜드 관련 사건의 핵심 피고발인인 현 전 회장을 상대로 에버랜드 전환사채 배정 과정에 그룹 차원의 공모나 이건희 회장 등의 지시가 있었는지 등에 대해 조사했다.
■정의구현사제단, 차라리 수사를 검찰에 넘겨라
한편, 천주고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지난 27일 조준웅 삼성특검의 수사 의지에 강한 의혹을 제기하며 맹비난했다.
김인국 신부 등 사제단 신부 4명은 이날 예정됐던 조 특검과의 면담을 거부하고 서울 한남동 특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조준웅 특별검사의 수사 의지와 능력이 의심된다”고 삼성 특검을 비판했다.
사제단은 “1차 수사 기간이 10일 정도 남았는데 지지부진한 특검 수사를 연장하지 말고 검찰에 넘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인국 신부는 “사제단에 면담을 요청해 놓고 ‘참고인 조사를 할 수 있다’고 입장을 바꾸는 특검팀의 경박한 모습을 보고 그동안 가졌던 특검의 수사 의지와 능력에 대한 고민을 밝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종훈 신부는 “조 특검은 삼성 이학수 부회장을 단독으로 만났는데 소환 절차나 만남의 방식, 면담의 내용을 볼 때 특검의 변질된 수사 의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윤정석 특검보는 “조준웅 특검이 사제단으로부터 수사의 도움을 받고자 했으나 그 취지가 잘못 전달돼 오해가 생겼다”며 “사제단에 특검이 직접 전화해 이해를 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홍라희 소환 이어지나
한편, 홍라희 삼성 리움미술관 관장이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와 미술품을 거래하면서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수표를 여러 번 건넸다는 진술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이 지난 25일 서미갤러리 홍순원 대표를 소환조사해 이와 같은 사실을 확보했다. 홍 대표는 특검팀 조사에서 삼성 일가와의 그림 거래를 인정하면서 “여러 차례 수표가 사용됐다”고 진술했다.
그동안 삼성가와 거래가 없었다고 진술해왔지만 최근 태도를 바꿔 미술품 거래 시기와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수표의 상당 부분이 삼성의 비자금 차명계좌에서 나왔다고 보고 자금 흐름을 계속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