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쉬움..후회..불만
정권 교체와 함께 진행된 공공기관장 `물갈이`로 참여 정부 시절 선임된 기관장들이 속속 물러나고 있다.
대부분의 기관장들은 그동안 `더욱 열과 성을 다할 것을` 하는 아쉬움과 함께 몸담았던 기관이 더욱 발전하길 바란다는 담담한 소회를 밝히며 떠나는 분위기다.
하지만 정권교체에 따른 기관장 재신임 차원에서 일괄적으로 물갈이 되고 있는 만큼 심기가 편치는 않을 터. 일부 기관장들은 우회적이나마 이런 심경을 표현해 눈길을 끈다.
◇"아쉽다, 더욱 발전해달라"..무난형
가장 무난한 소감은 `아쉽다`다. 대부분의 기관장들이 이런 담담하고 공식적인 말로 임기를 마쳤다. 별도의 이임식 없이 부서 방문을 끝으로 회사를 떠나는 기관장도 있다.
박해춘 우리은행장은 지난달 27일 이임식에서 "1등 은행의 고지를 바로 눈앞에 두고 떠나 아쉽다"며 "새 은행장과 하나로 뭉쳐 진군해 달라"고 했다. 그는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 없다`는 시구를 떠올려 본다"며 "언제 어느 자리에서건 우리은행을 위한 일에 주저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수호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아쉬움과 함께 직원들 정기인사를 해주지 못하고 떠나게 돼 미안하다는 말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가스공사는 당초 올해초 정기인사를 실시하려 했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시기를 놓쳤고 결국 기관장 교체 상황까지 왔다.
◇"공기관장 된 것 후회"..자책형
` 모든 게 결국은 내 탓`이라며 중도에 떠나는 쓴 심정을 표현하는 기관장도 있다. 이한호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이 여기 속한다.
이한호 사장은 공군참모총장 출신으로 지난 2006년 12월 공모를 거쳐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에 취임했다. 이력상 자원 개발을 주로 하는 광진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혁신 의지와 추진력 만큼은 빼어났다는 평.
그런 그가 3일 임기 1년반, 회사 창립 41주년 하루를 앞둔 날 가진 이임식에서 "괜히 여기 온 게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말을 남겼다. 열정을 갖고 일했지만 정치 상황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씁쓸해 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이렇게 일찍 떠날 줄은 몰랐는데, 창립 41주년 행사를 위해 많은 준비를 지시했다"며 "군대 생활을 마치고 거름이 될 것인데, 괜히 여기 온 게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할말은 하고 가자"..소신형
할 말은 하고 가야겠다는 기관장도 있다. 김창록 산업은행 총재는 지난달 19일 이임식을 갖고 2년6개월간의 총재 생활을 마쳤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산업은행에 대해 아직도 `총재`라는 명칭을 사용하느냐며 질타했을 때 이미 운명을 예감했을 법한 기관장중 하나다.
김 전 총재는 "재임 기간 글로벌 투자은행(IB)의 기본 방향과 틀은 어느 정도 갖췄지만 마무리 짓지 못하고 떠나게 됐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전문성이 필요한 곳은 법에 정해진 임기를 보장해주는 것이 제도적으로 정착됐으면 좋겠다"는 쓴소리를 남겼다.
이처럼 현 기관장들이 각양각색의 소회를 남기고 떠나는 가운데, 새 기관장들도 마음이 가벼울 수 없다. 임기와 무관하게 언제든 물러나는게 꼭 남의 일이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뒤를 잇는 기관장들의 어깨는 더욱 무겁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