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따라 한진가(家)와 한화가 간에 '가문의 대결' 양상을 띠었던 이 싸움은 결국 한화가의 승리로 끝났다.
한진그룹 집안에서는 메리츠금융그룹의 조정호 회장과 한진중공업의 조남호 회장이, 한화그룹 집안에서는 제일화재 최대주주 김영혜씨와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관여하면서 이 인수전은 '재벌가의 대결'로 세간의 관심을 끌어왔다.
◇ 승자는 누구 = 표면적으로는 김승연 회장과 그 누나인 김영혜씨의 승리다. 제일화재의 경영권을 지켜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특히 김승연 회장이 이번 인수전의 최대 수혜자라고 본다. 제일화재는 당초 한화 계열사였지만 한화그룹의 창업주인 김종희 회장이 김영혜씨에게 상속하면서 96년 한화그룹에서 독립했다.
그런 '출신성분' 탓에 김승연 회장은 내심 제일화재에 관심이 있었지만 남매 간 다툼을 우려해 실천에 옮기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런 가운데 이번 인수전 과정에서 경영권 상실 위기에 놓인 김영혜씨가 먼저 김승연 회장 측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자연스럽게 제일화재를 그룹 계열사로 편입하게 됐다.
이로써 한화는 대한생명과 한화손해보험, 제일화재 등 보험사를 3개나 갖게 됐다. 한화는 장기적으로 같은 손해보험사인 한화손보와 제일화재를 통합할 계획이다.
그러나 메리츠화재 역시 '크게 잃을 것은 없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제일화재 주식(11.47%)을 싼값에 사들였기 때문이다. M&A를 공식화하기 이전 주식을 은밀히 매집하면서 주가가 치솟기 전 샀고, 주가가 뛴 이후로는 추가 매입을 하지 않았다.
앞으로 제일화재 주가가 어떤 수준을 유지할지는 미지수지만, 인수전 이전 수준만 유지해도 메리츠화재로선 손해볼 게 없다.
◇ 왜 실패했나 = 한국 시장에서 적대적 M&A는 성공한 사례가 드물다. 제일화재 인수전도 또 하나의 실패 사례가 됐다. 업계에서는 '한국적 특수성'을 간과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메리츠화재는 당초 합리적인 가격만 쳐주면 김영혜씨가 경영권을 넘길 것으로 판단했다. 김승연 회장 역시 남매라곤 해도 경영적 판단으로는 나서기 힘들 것으로 봤다.
한화그룹은 이미 한화손보를 갖고 있어 제일화재를 인수하면 손보사가 두 개가 되는데다 인수전으로 주가가 뛴 제일화재 주식을 사기보다는 한화손보에 투자하는 쪽을 택할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김영혜씨가 모호한 표현으로 인수 제안을 거부했을 때도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계속 김씨와 물밑 접촉을 시도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예상들은 모두 빗나갔고 그 와중에 한화는 계열사와 우호세력을 동원해 속도전을 치르듯 재빠르게 지분율을 47.18%까지 끌어올렸다. 또 그룹 차원에서 임원 2명을 제일화재의 이사로 파견했고 제일화재를 계열사로 편입하는 절차까지 마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