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과 총선의 잇단 참패로 정치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2일 오후 부인 민혜경씨와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정 전 장관은 이날 출국에 앞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국민의 위대한 능력을 잘 뽑아내는 게 정치인의 역할"이라며 "훌륭한 정치에 대해 생각하고 공부하고 책도 보고 사람도 만나 제 나름대로 그림을 한 번 그려 보겠다"고 재기 의지를 다졌다.
최근 지방 산사 등에 머물며 `묵언수행'을 해 온 그는 한결 여유로워진 표정이었다. 두달 전부터 대체의학인 팔상의학에 심취, 채식만 해오고 있다.
그는 "13년간 정치하면서 후보로 선거 나온 게 9번, 당 의장으로 선거 치른 게 2번 등 총 11번의 선거를 치렀으니 진이 빠질 만 하다. 그동안 능력에 비해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며 "이제 기를 보충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정계 복귀 시점에 대해선 "물 흐르는데로 하려고 한다. 가서 좋으면 좀 더 있어 보고.."라고 즉답을 피했다.
그는 또 "미국이 왜 민주당 대선후보 오바마의 `변화'(Change) 구호에 열광하는지, 한번 지켜보고 미 전당대회에도 가볼 생각"이라면서 "틈나는 대로 몽골, 연해주, 필리핀, 인도 등 아시아권과 중남미의 제3세계 국가들도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쇠고기 정국과 관련, "이명박 정부가 성공하길 바란다"고 전제한 뒤 "정부가 위기의 본질을 꿰뚫고 국민의 마음을 헤아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며 "국민도, 나라도 불행해져선 안되고 정부와 국민이 `윈-윈'해야 한다. 위기를 불행으로 치닫게 하지 말고 기회로 만들어낸다면 세계가 한국을 괄목상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촛불집회에 대해선 "`우리 국민이 정말 위대하구나' 하는 존경심과 두려움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그는 남북관계와 관련, "지난 10년간의 화해.협력 노력은 정권 차원을 넘는 문제로, 궤도에서 많이 벗어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지 않는다면 국가와 민족이익에 대단히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 전 장관이 출국한 인천국제공항에는 대선후보 경선 당시 캠프 좌장이었던 자유선진당 이용희 의원을 비롯해 민주당 박영선, 최규식, 조배숙, 강창일, 우윤근 의원과 김현미, 박명광, 김낙순, 정청래 전 의원 등 전.현직 의원 20여명과 참모진 등 정동영계가 집결했다. 팬클럽인 `정통들' 회원 300여명도 환송차 공항에 나왔다.
정 전 장관은 공항 귀빈실에서 진행된 환송 행사에서 "저 때문에 고생들만 하시고 드린 게 없어 무거운 마음을 갖고 있다"며 "미국에 가서 열심히 연구하고 돌아오겠다"고 말했으며, 일부는 눈물을 글썽이는 등 숙연한 분위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