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금 일부 금수출업자들 거쳐 해외로 유유히 빠져 나가
"고금 의제매입세액공제 제도 보완 시급" 목소리
고금(古金) 거래 루트를 양성화하는 동시에 내수 진작, 귀금속 산업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 아래 지난해 도입된 고금 의제매입세액공제 제도가 도입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국부유출 및 국고누수의 원인으로 전락,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고금에 대한 의제매입세액공제 제도(현행 조세특례제한법 시행령)는 지난 2007년 참여정부가 내놓은 '귀금속 산업 활성화 대책'에 포함됐던 내용으로 입법작업을 거쳐 지난해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제도다.
소비자로부터 반지, 목걸이 등 형태의 고금을 구입한 사업자(순도 14k 이상)에게 매입가액의 3/103을 공제해주는 것. 이를 통해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고금의 거래 루트를 양성화, 금시장 거래질서를 바로잡겠다는 것이 정부의 복안이었다.
정부는 이 제도를 설계하면서 사업자가 소비자로부터 고금 제품을 구입한 뒤 이를 직접적으로 수출할 경우에는 매입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는 고금 제품이 내수시장으로 유입(재활용), 이를 원료로 사용한 국내 쥬얼리 산업의 발전(고용창출)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한 것. 즉 고금 제품이 내수시장에 유입되지 않고 해외로 빠져나가 국내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 같은 고차원적인 취지를 담아 만들어진 이 제도는 그러나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일부 편법을 동원한 금지금 수출 사업자들에 의해 변질, 악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금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의제매입세액공제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게 형성되고 있는 실정이다.
□ 새롭게 등장한 '편법' 거래 루트, "국부(國富)가 샌다"= 21일 서울 종로구 봉익동 일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금시장 참여자들의 제보에 따르면 고금 의제매입세액공제 제도의 허점을 악용한 새로운 형태의 편법·조직적 거래 루트가 등장, 제도 취지를 무색케 하고있다.
이 거래 루트는 현행 제도가 소비자로부터 취득 후 수출한 고금제품에 대해서는 매입세액공제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 설계된(?) 구조다(이하 그림 참조).
금시장 참여자들에 따르면 이들 편법 수출업자들은 소비자와 금지금 수출업체(A업체)와의 중간에 소비자로부터 고금을 전문적으로 매입하는 업체를(이하 B업체) 차린 뒤 고금을 집중적으로 매입한다.
다량의 고금을 매입한 B업체는 수출업체인 A업체에게 고금을 매출한 뒤 고금 취득가액의 3/103을 매입세액에서 공제 받는다. 수출을 하지 않고 국내 시장에 매출을 했기 때문에 매입세액공제를 받는 것이다. 이 때 금거래전용계좌를 사용해 고금매출에 따른 부가가치세는 실시간으로 납부한다.
A업체는 B업체로부터 매입한 고금을 정련, 정련금괴(골드바) 형태로 만들어 홍콩 등 해외로 수출해 버린다. 이 과정에서 수출로 인한 영세율 적용으로 부가가치세 환급을 받는다.
표면적으로 보면 아무런 이상이 없는 거래 루트다. 불법적인 구석도 없다.
그러나 이 같은 거래 루트는 '한 몸통'으로 움직이면서 제도의 규율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나가고 있다는 것이 금시장 참여자들의 전언.
즉, 금지금 수출을 목적으로 하는 A업체가 제도상 직접 고금을 매입해 수출할 경우 매입세액공제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을 피해나가기 위해 '완충역활'을 하는 B업체를 세워놓고 고금을 다량으로 매집, 수출하고 편법적으로 매입세액공제 혜택까지 받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이 같은 거래 루트를 거치면서 소비자가 내다 판 고금 제품이 내수로 유입되기는커녕 사실상 그대로 해외로 빠져나가 버리는 것과 다름없다는 점.
국부(國富)가 유출되는 셈이다.
'소비자로부터 취득 후 수출한 고금은 매입세액공제를 해주지 않는다'는 법의 취지를 교묘히 피해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서울 종로구 봉익동 일대에 밀집해 있는 금시장에서는 이 같은 편법 거래 루트를 만들어 활동하는 수출업자들이 상당수 생겨난 것으로 알려졌다.
금시장 관계자는 "수출되는 고금을 매입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고금이 내수시장으로 리사이클링 되면서 금산업 전반의 고용창출(세공+디자인=부가가치 창출) 등 산업발전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며 "그러나 이러한 편법 거래 루트가 속속 생겨나면서 제도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정부가 시장 상황을 하루 빨리 파악, 적절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속칭 '뒷금' 활용…국고누수 우려도= 국내 금시장 참여자들이 추정하고 있는 고금시장의 규모는 연간 1조5000억원 수준.
의제매입세액공제 시행과 더불어 성실한 고금사업자들이 등장하면서 어느 정도 양성화가 이뤄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양성화가 이뤄진 부분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통설.
대부분의 고금은 속칭 '뒷금'으로 불리며 무자료로 거래되고 있어 부가세 상당액이 제외, 시중 금값보다 싼 가격에 거래되는 것이 보통이다.
금시장 참여자들에 따르면 의제매입세액공제 제도의 허점을 악용하는 업체들이 소비자들로부터 직접 구매한 고금을 비롯해 음성적으로 거래되는 뒷금을 대량 매입, 자료를 조작해 정상적으로 소비자에게서 구입한 것처럼 꾸며 매입세액공제 및 수출시 부가세 환급을 받는 등 국고누수 우려도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에 걸쳐 올해 금지금 수출량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것도 내수시장의 침체, 국제금값 상승 등의 영향도 있지만 이 같은 편법·불법거래를 통해 조성된 금지금(뒷금)이 대량 수출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금시장 참여자들의 전언이다.
실제로 관세청이 집계한 6월 수출입 및 무역수지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000만 달러, 109% 상승)가장 수출이 많이 늘어난 품목은 금지금이었다.
상반기 전체로는 지난해 동기 대비 141.9%가 늘어난 15억 달러 어치가 수출됐다.
무게로 따지면 50t이 넘는 수준으로 지난해 수출량(12억7100만 달러, 46t)을 이미 뛰어 넘었다. 현재 국내에서 채굴되는 금의 양은 200kg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마 어마한 규모의 금이 수출되고 있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셈.
금시장 참여자들은 이 같은 수출규모가 현실화되는 주된 이유는 고금(뒷금) 때문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뒷금을 모아 수출하면서 자료를 조작해 정상으로 위장할 경우, 세금환급을 받을 수 있어 국고누수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금시장 관계자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소비자들로부터 매입하는 고금의 규모는 한 달에 수 백kg에 불과하다. 그러나 일부 편법 수출업체들은 하루 수 십kg~수 백kg씩 수출하는 경우가 허다했다"며 "이는 거의 대부분이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비정상적인 '뒷금'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전했다.
□ "의제매입세액공제 제도 보완, 수출업체 세무조사 필요"= 이에 따라 금시장 참여자들은 현행 고금 의제매입세액공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고금의 정련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정련금괴를 수출하는 경우에는 출처에 관계없이 모두 매입세액공제를 허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현행 법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소비자들로부터 수집된 고금이 내수시장으로 유입, 리사이클링 과정을 거치면서 산업을 발전시키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애초 법 도입 취지와도 부합된다는 것이 금시장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아울러 편법 거래 루트를 형성하고 있는 수출업체들에 대한 세무조사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뒷금 시장'의 실체를 파헤쳐, 양성화할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한 전초전이라고 금시장 참여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금시장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정부가 제도를 만들면 제도의 허점을 노린 새로운 형태의 거래가 생겨나는 금시장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며 "현행 고금 의제매입세액공제 제도의 허점을 보완하는 조치가 시급한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의 금시장 시장 현실에 대한 인식이 아직까지는 부족한 것 같다"며 "성실하게 사업하면서 고금 양성화에 기여하는 사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제도 개선책을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