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근거 없이 재심 요구…통보 늦춰져 납세자 피해 심각
감사원, "재심요구 당사자 주의 촉구" 통보
조세부과의 공정성 확립과 납세자의 권리구제를 위해 존재하는 국무총리실 조세심판원의 공정성과 독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돼 오히려 납세자 권리가 위협받고 있는 것으로 감사원 감사결과 나타났다.
조세심판원장이 이미 조세심판관 회의에서 심리·결정된 내용을 법적 근거도 없이 재심의 하도록 요구하면서 결정내용의 통보지연으로 인한 납세자 피해가 초래됐다.
22일 감사원이 발표한 국세청, 기획재정부, 조세심판원 등 3개기관에 대한 '세정신뢰도 개선실태' 점검 결과에 따르면 조세심판원장(옛 국세심판원장 포함)은 지난 2006년부터 2009년 10월 말 사이 심판관회의에서 심리·결정된 365건에 대해 법적 근거 없이 재심의를 요구해 사건 처리를 장기화했다.
엄격히 독립성이 유지돼야 할 심판부의 결정이 조세심판원장에 의해 훼손된 셈이다.
국세기본법 등에 따르면 납세자가 억울함을 호소, 심판원에 접수된 심판청구사건은 각 심판부에 배정돼 심판관회의에서 심리·결정한 후 행정실에서 검토해 납세자에게 신속히 통지해야 한다.
다만, 심판관회의의 결정내용이 선결례를 변경하거나 국세행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는 행정실이 심판원장에게 보고해 심판관합동회의에 부의·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심판원장의 심판관합동회의 '부의권한'이 근거 없이 남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심판원장, 법적근거 없이 365건 재심의 요구
감사원에 따르면 2006년∼2009년 10월 사이 심판관회의 결정사항 1만6355건 중 무려 263건에 대해 심판원장이 직권으로 재심의를 요구했고, 93건은 상임심판관회의를 거쳐 재심의를 요구하는 등(9건은 행정실 조정검토단계에서 심판부가 자진 재심의) 365건이 법적 근거 없이 재심의요구됐다.
심판관회의의 결정내용이 선결례와 상충되거나 법령해석이 잘못됐다는 것이 재심의 요구 사유였지만, 이 중 절반인 182건이 당초 결정대로 다시 결정됐고, 17건은 두 번 이상 재심의를 요구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권한행사가 이어졌다.
반복적인 재심의 요청으로 사건에 대한 처리일수는 늘어나기만 했다.
2006년 이후 재심의한 365건 중 심판청구 처리기한 90일을 지킨 사건은 단 2건에 불과했고, 특히 일부 사건은 처리기한보다 1798일이나 더 소요되는 등 1년 이상 지연처리된 사건도 106건에 달했다.
실제로 2007년 3월말 A주식회사가 청구한 심판사건의 경우, 당초 심판관회의에서 납세자의 손을 들어줘 '인용' 결정을 내렸지만, 심판원장이 상임심판관회의를 거쳐 재심의를 요구, 해당 심판부에서 다시 인용결정을 내리자 재차 심판관합동회의에 부의하도록 해 무려 545일이나 지연처리됐다.
결국 최종 심판관합동회의에서도 '인용' 결정이 내려진 사건이지만 똑같은 사안을 세 번이나 심의한 것이다.
법 절차 안 지키고 결정 내려…업무처리 지연도 문제
법적 절차가 지켜지지 않은 결정은 또 있었다.
심판관회의에서 종전 심판결정례를 뒤집는 의결을 할 경우에는 조세심판관합동회의에서 결정해야 하는데, 2006년 1월 심판원은 상속·증여세의 신고불성실가산세 사건과 관련해 동일 내용의 2000년 결정과 전혀 다른 결정을 하면서도 상임심판관의 토의만 거쳐 인용결정을 내렸다.
심판원 행정실의 업무처리 지연도 문제가 됐다.
국세기본법 시행령에 따라 심판관회의 결정 내용은 10일 이내에 심판원장에게 통보하고, 심판원장은 행정실장에게 결정내용을 검토하도록 하며, 행정실장은 선결정례 저촉 여부 등을 검토해 다시 심판원장에게 보고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2006년 이후 청구인에게 통지된 1만6335건의 사건 중 40%에 가까운 6493건이 조정검토 기준일수 10일을 초과했고, 이 중 118건은 100일 이상(최장 485일) 소요되는 등 처리건수의 상당수가 조정단계에서 법정처리기간을 넘겼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조세심판원장에게 "법령 근거 없이 재심의를 요구하거나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선결정례를 변경해 심판부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행정실의 조정검토에 장기간을 소요하거나 결정통지를 지연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주의조치를 내리고, 국무총리실장에게는 관련자에 주의를 촉구하라고 통보했다.
이에 대해 조세심판원측은 "연 5000∼6000건의 심판사건을 접수해 처리하는 과정에서 심판부가 사실관계 조사를 간단하게 할 수도 있고, 사건이 갈수록 복잡해지지만 모든 건을 합동회의에서 처리할 수도 없다"며 "재심의 요구라기보다는 (미진한 부분에 대해) 다시 한번 검토해 달라는 의견제출의 형태로 운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결국은 심판부에서 결정된 내용이 납세자에게 통보되는 것이기 때문에 심판부의 독립성이 훼손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