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전문가, “편법 땐 불이익 크다”… 한목소리 ‘경고’
이달 들어 병·의원 등 고소득전문직에게 현금영수증과 관련한 50% 과태료 부과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소득노출로 갑작스런 세금부담이 늘어날 것이 우려되는 일부 고소득전문직들이 다각적인 편법을 모색하는 등 비상이 걸린 것으로 드러났다.
4월부터 현금영수증과 관련해 적용되는 바뀐 세법의 핵심은 국세청이 지정한 고소득전문직은 30만원 이상의 거래에 대해선 고객이 원하지 않더라도 현금영수증을 끊어줘야 한다는 것.
이를 어긴 사업자에 대해선 거래금액의 50%에 이르는 과태료가 부과되며, 신고포상금 제도의 운영으로 현금영수증 발급의무를 위반한 사업자를 신고하는 사람(일명 세파라치)에겐 거래금액의 20%(거래 건당 300만원, 연간 1500만원 한도)에 이르는 포상금이 지급된다.
이와 관련 국세청은 제도의 조기정착을 위해 세파라치에게 약속한 포상금을 지급하기 위한 예산으로 약 15억원 가량을 확보하고 손님맞이 준비(?)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일부 고소득전문직 종사자들은 ▲신고와 관련해 고객과 짜고 거래하기 ▲국세청 예산이 소진될 때까지만 제대로 거래하기 등 갖가지 편법을 구상하고, 조세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등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세청과 조세전문가들은 “현금영수증 발급의무를 위반하면 신고와 세무조사 등 여러 단계의 장치에서 위반사실이 발각될 가능성이 높다”며 “세무조사로 관련사실이 드러나면 거래금액 보다 큰 돈을 세금과 과태료로 물어야 할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위반사실이 드러나면 거래금액의 50%에 이르는 과태료와 함께 소득이 높은 층이라면 약 40%에 이르는 세금이 추징되고, 이에 더해 각종 가산세와 가산금까지 합치게 되면 한푼의 소득도 없음은 물론 되레 사업자의 ‘생돈’까지 토해낼 우려가 있다는 설명이다.
현금영수증을 끊어줘야 할 고소득전문직은 어떤 사업자들인지, 또 이들이 늘어나는 세부담을 피하기 위해 편법을 모색하면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지를 자세히 취재해 봤다.
■ 현금영수증 의무발급 대상 고소득전문직은 누구?
국세청에 따르면 4월부터 30만원 이상의 거래에 대해 현금영수증을 끊어주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되는 사업자는 크게 ▲사업서비스업 ▲보건업 ▲기타업종 등 3가지 업종이다.
사업서비스업에는 ▲변호사업 ▲회계사업 ▲세무사업 ▲변리사업 ▲건축사업 ▲법무사업 ▲심판변론인업 ▲경영지도사업 ▲기술지도사업 ▲감정평가사업 ▲손해사정인업 ▲통관업 ▲기술사업 ▲도선사업 ▲측량사업 등 15개 업종이 열거돼 있다.
또 보건업에는 ▲종합병원 ▲일반병원 ▲치과병원 ▲한방병원 ▲일반의원(일반과, 내과, 소아과, 일반외과, 정형외과, 신경과, 정신과, 피부과, 비뇨기과, 안과, 이비인후과, 산부인과, 방사선과 및 성형외과) ▲기타의원(마취과, 결핵과, 가정의학과, 재활의학과 등 달리 분류되지 않은 병과) ▲치과의원 ▲한의원 ▲수의업 등 9개 업종이 들어 있다.
이와 함께 ▲일반교습학원 ▲예술학원 ▲골프장업 ▲장례식장업 ▲예식장업 ▲부동산중개업도 국세청이 지정한 현금영수증 의무발행업종에 포함돼 있다.
이들 전문직들은 고객이 현금영수증 발급을 요청하면 거래금액의 크기와 관계없이 발급해줘야 하며, 30만원 이상의 거래에 대해선 고객이 현금영수증 발급을 원치 않더라도 의무적으로 끊어주거나 국세청에 신고해야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현금영수증을 끊어주지 않으면 30만원 이상의 거래에 대해선 미발급액의 50% 과태료가 부과되고, 30만원 미만 거래는 발급거부액의 5%를 가산세로 물고 현금매출명세서 미제출금액의 1%를 가산세로 부담하는 불이익이 따른다.
신고포상금도 거래금액과 관계없이 미발급액의 20%가 주어지고 연말정산 소득공제도 추가되지만, 포상금한도는 30만원 이상의 거래일 땐 연간 1500만원을 한도로 건당 300만원까지 지급되고 30만원 미만 거래에 대해선 연간 200만원 한도로 건당 50만원까지 지급된다.
■ 포상금예산 소진될 때까지만 조심?…국세청 “큰일 날 말씀”
일부 고소득전문직 사업자들의 고민은 현금영수증을 법대로 끊어주자니 급격히 늘어날 세부담이 걱정이고, 제대로 끊어주지 않자니 제법 큰 포상금을 노린 ‘세파라치’들의 눈치가 보인다는 것.
국세청이 연간 포상금 한도액을 1500만원까지로 못박았지만 이는 1인당 한도일 뿐이다. 따라서 고소득전문직 사업자들은 가족과 친구들의 이름을 빌려 신고하는 속칭 전문꾼들의 등장 역시도 함께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일각에서는 국세청이 확보한 예산이 고작 15억원에 불과한 만큼 전문꾼들이 등장하면 2-3개월만에 바닥을 드러낼 것이라고 판단, 그 기간 동안만 착실하게 현금영수증을 끊어주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과거 국세청이 현금영수증을 처음 도입했을 때 포상금제도를 두고도 예산이 모자라 약 1억5000만원에 달하는 포상금을 지급하지 못한 사실에 은근히 기댄 심리다.
그러나 국세청은 “이는 엄청난 착각”이라고 경고한다. 확보한 예산은 15억원 밖에 없지만 국민과의 약속은 약속인 만큼 예산이 모자라도 얼마든지 충원해 요건을 갖춘 신고에 대해선 전액 포상금을 지급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
국세청 관계자는 “제대로 된 신고로 정부가 걷을 수 있는 과태료는 거래금액의 50%인데, 신고포상금은 20% 수준”이라며 “예산이 모자라 신고포상금을 주지 못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 고객과 짜고 거래하기…전문가들 “고객이 약속 깨면 어쩌려고?”
일부 고소득전문직종에서 세금부담을 피하기 위해 현금으로 거래하는 고객에겐 약 10% 정도를 할인해주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일부 사업자는 이를 빌미로 적극적으로 현금결재를 유도하고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에 따라 일부 고소득전문직종에서는 고객이 현금영수증을 끊어주지 않은 사실을 신고하지 않은 조건으로 10% 할인율 보다 좀더 높은 할인율을 제시하되, 세금부담 보다는 작게 할인해주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국세청과 조세전문가들은 ‘위험한 거래’라고 입을 모은다. 고객이 사업자의 제안에 따라 ‘무신고’를 약속한 뒤, 할인혜택을 받은 이후 신고할 땐 대책이 없다는 것.
제도를 제대로 아는 고객이라면 짐짓 ‘무신고’를 약속해서 10%가 넘는 할인혜택을 받고, 곧바로 국세청에 신고해 거래금액의 20%에 해당하는 포상금을 덤으로 받을 수 있다. 고객과의 약속 자체가 불법이어서, 고객은 약속을 깨더라도 이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결국 소비자가 약속을 깨고 신고할 경우 사업자는 할인율만 괜히 높여 손실을 키운 데다, 과태료부담과 함께 세금부담까지 덩달아 늘어나 공짜 치료나 공짜서비스를 한 결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제도를 제대로 아는 사업자라면 고객에게 무신고를 담보로 할인율을 높여 거래할 것이 아니라, 되레 현금영수증이 필요 없다는 고객을 더 조심해야 할 것”이라며 “20% 포상금을 노린 고객들도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 신고만 피하면 된다?…전문가들 “세무조사 받을 땐 낭패”
병·의원 등 사업장을 자주 찾는 단골고객이나 다소 어수룩해 보이는 고객들만을 대상으로 현금영수증을 끊어주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도 국세청과 조세전문가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나중에 세무조사를 받게 되는 상황을 염두에 두면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 전문가들은 “50% 과태료는 누군가 신고했을 때만 부과된다고 일부 사업자들은 잘못 알고 있다”며 “나중에 세무조사를 받을 때 의무위반이 확인돼도 과태료가 붙는다”고 경고한다.
한 조세전문가는 “다행스럽게 신고를 면한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며 “세무조사로 적발되면 거래금액의 50% 가산세와 함께 높은 세율로 세금추징, 그리고 각종 가산세와 가산금이 따라붙어 엄청난 불이익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는 경우에 따라선 치료비나 수수료로 100만원을 받더라도 과태료와 세금 그리고 가산세와 가산금으로 물어야 할 돈이 100만원을 훌쩍 넘어버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