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 '욕망의 동물'이라고도 한다. 이 때문에 사회는 규제와 법을 만들어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일정한 테두리에 가둬놓는 역할을 한다.
최근 금융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CEO리스크'에 대한 안팎의 시각은 세밀히 살펴보면 경영진의 사리사욕에 대한 비판에 편중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그 원인을 금융사의 지배구조 즉, '주인 없는 은행'의 한계로 결론짓는 분위기마저도 감지된다.
그러나 국내외 금융시장에는 엄연히 경영진의 사리사욕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으며, 또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그 장치를 운영하는 역할은 정부로부터 감독업무를 위임받은 금융감독당국이 담당한다.
최근 잇따라 불거지는 금융사 CEO리스크는 이 같은 제어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제어장치가 삐걱대는 원인은 구시대적 산물인 '관치' 때문이다.
지난해말 전후로 시작된 'KB사태'와 '신한사태', 그리고 우리금융 경영불안의 원흉이 곧 '관치금융' 폐해로부터 불거진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지난 9월 신한금융 신상훈 사장에 대한 이백순 신한은행장의 고소·고발 사태로 촉발된 '신한사태'의 시간을 6개월 이전으로 되돌려보자.
라 회장은 지난 3월 4번째 연임에 성공한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라 회장 퇴진으로 2인자인 신상훈 사장이 회장에 오를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라 회장과 신사장의 개인적인 친분은 차치하더라도, 라응찬-신상훈-이백순으로 이어지는 후계구도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예견할 수 있는 금융계 인사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같은 3자 후계구도는 '신한의 힘'이자 신한이 그토록 내세워온 '신한DNA'였기 때문이다. 신한이 '금융계의 삼성'으로 불려온 것 역시 신한 내부에서조차 후계구도와 관련된 어떠한 잡음도 불허한 관습화된 문화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신한만큼은 '관치금융'로부터 자유로운 금융사라는 칭송을 받아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른바 '신한금융공화국'이라는 말도 이 때문에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번 신한사태는 "신한, 너마저…"라는 안타까움으로 이어졌다.
사실 라 회장이 신한지주의 창립주인 재일교포들의 전폭적인 지지 때문에 30여년 신한금융 수장 자리를 지켜왔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동안 금융권 안팎에서는 라 회장과 관련, '로비의 황제' 또는 '은둔형 로비스트'라는 추측이 나돌기도 했었다.
지난 1982년 창립당시 영업점 3개에 불과했던 신한은행을 국내 '리딩뱅크'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었던 배경에도 로비스트로서의 탁월한 능력이 일면 작용했다, 라는 말도 심심찮게 들렸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알려져 왔던 그의 이 같은 능력은 지난해 '박연차 게이트'를 통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 과정에서 LG카드 인수 특혜 의혹은 물론 차명계좌가 수 천개에 이른다는 폭로가 이어지는 등 비자금 의혹을 둘러싼 라 회장의 정·관계 인맥에 대한 궁금증도 증폭됐다.
일각에서는 라 회장이 신 사장을 후계자 명단에서 배제시킨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는 얘기도 들렸다.
신 사장의 태생과 이력이 현 정부와 전혀 무관하다는 것. 신 사장이 이 같은 의혹에 대해 "라 회장이 물러난다고 전라도 출신인 내가 회장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바보는 아니다"라고 밝혀왔다는 점도 이 같은 추측을 뒷받침한다.
여기에 신 사장이 야당과 가깝게 지낸다는 소문마저 들렸다. 신 사장이 라 회장을 몰아내기 위해 차명계좌 기록을 야당에 넘겼다는 의혹도 여기에서부터 출발한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이 같은 의혹은 이번 신한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단순히 명예와 지위에 대한 욕심 때문에 라 회장이 연임에 나섰고 신 사장을 내쳤는지, 그에 대한 정확한 해답은 오직 라 회장 본인만 알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으로의 '연줄', 또는 경계심이 원인이 됐다면 분명 이는 '관치금융'이 이번 사태의 원흉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올해 상반기 내내 금융권을 뜨겁게 달군 'KB사태' 역시 같은 맥락. 지난해말 KB금융 회장직에서 물러난 황영기 전 회장과 지난 7월 조기사퇴한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은 금융당국의 전방위 압박에 못 이겨 결국 나란히 자진사퇴 수순을 밟았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인사개입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으며, 강 전 행장은 회장에 선출되기 위해 정부 실세와 손을 잡았다는 소문도 들렸다. 그러나 결국 어윤대 전 국가브랜드 위원장이 회장자리를 꿰차면서 소문으로만 나돌던 '낙하산 시나리오'는 현실화 됐다.
이 같은 KB사태 역시 강 전 행장의 과욕에 기인한 결과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강 전 행장이 정부 실세와 손을 잡은 정황은 '배후 없이는 민간은행 은행장도 하기 어렵다'는 '관치금융'의 전형적 단면을 보여주는 계기로 작용했다.
최근 민영화의 본궤도에 오른 우리금융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금융은 정부 소유라는 이유로 임원급 인사마저 정부가 일일이 간섭하고 있다. "'빽' 없으면 임원승진마저도 어렵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들리는 상황이니 사실상 '속은 국책은행, 무늬만 시중은행'으로 봐야 마땅하다.
일부 정부 관료의 주장처럼 '좋은' 관치는 필요하다.
그러나 좋은 관치보다 '나쁜' 관치가 더 횡행하고 있다는 사실도 부인하기 어려운 게 우리 금융사의 현실이다. 정부가 민간금융사의 인사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 신한사태와 KB사태와 같은 '돌림병'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