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공무원들이 입에 달고 살다시피 하는 표현이 있다.
다름 아닌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IMF(국제통화기금) 등을 빗댄 표현인데. 정치권의 주장에 반박할 때 사용할 뿐만 아니라 민감한 여론을 잠재울만한 필요성이 있는 상황에서 거의 어김없이 등장하곤 한다.
특히 세금문제에 있어서도 OECD의 주장과 견해를 빗댄 표현이 유독 많이 쓰인다.
일례로 최근 가장 논란이 됐던 '유류세' 문제만 하더라도 정부는 "일부 OECD 가입국들과 비교하면 비싼 편이 아니다"라며 피해갔고, 작년 말 국회에서 논의됐던 소득·법인세 개정안 논의과정에서도 "OECD가입국들도 대체로 낮추는 추세"라고 항변했다.
세금을 낮추는 일이던 높이는 일이던 정부는 선진국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OECD의 견해를 세계적인 추세를 반영한 '금과옥조'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아울러 또 다른 세금논란을 키울 가능성도 엿보이고 있다.
지난 26일 OECD(경제개발협력기구)는 '2012년 한국경제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우리나라의 향후 재정, 조세, 금융, 외환 등 각종 경제정책 분야에 '훈수'를 뒀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상황과 세계 경제의 흐름 등에 따라 향후 우리나라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 바람직한지 일종의 정책 권고를 한 셈.
형식상 권고이지만 OECD라는 단체가 선진국들의 입장과 견해를 대표하는 단체인 만큼, 선진국을 표방하는 우리나라의 경제정책 방향에 있어서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번 OECD의 보고서는 적어도 세금문제에 있어선 향후 정치권을 포함한 일각의 반발과 대립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OECD는 이번 보고서에서 "소득, 법인세 등 직접세는 증세하면 곤란하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근로의욕과 성장동력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가 누누이 말해왔던 입장과 어찌 보면 '판박이'다.
그러면서 부가가치세, 환경세 등 간접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복지정책 확대도 신중할 필요성이 있다고 권고했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10%의 부가세율이 유럽 선진국과 비교해 낮은 편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불과 몇 달 전 고소득층에게 세금을 더 걷어 복지재원을 마련하자면서 이른바 '한국판 버핏세'까지 통과시킨 정치권의 입장에선 마냥 듣고 있기 거북한 표현이 한 두 개가 아니다.
더구나 정치권은 부가세율 인상논의에 대해선 서민증세라는 측면에서 강력히 반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 부분은 그동안 정부도 꺼낼 엄두조차 내지 못한 민감한 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복지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을 올리려면 직접세보다는 부가세 등 간접세를 올리는 게 낫다"는 OECD 보고서의 내용은 다소 파격이다.
정부는 향후 정치권의 증세논리에 맞서 이번 보고서를 인용해 또 다시 반대논리를 제시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향후 새로운 재원확보를 위해 직접세와 간접세 중 어떤 것을 올려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이 일부 부자증세를 선택한 이유는 표심(票心)에 있었던 것이 사실.
단적인 예로 당장 부가세율을 높이자는 말을 꺼내거나 그런 식의 입장을 표명한 정치인은 단 한명도 없었다.
현 시점에서 증세와 감세정책 무엇이 정답인지 단언할 수 없다.
다만 지난 한해 경기불황에 겹친 사회 전체적인 소득불평등도의 심화, 선거철 등 여러 '복합함수'의 영향으로 예년과 달리 증세여론이 강하게 조성됐던 것이 사실이다.
총선은 여권의 우세승으로 끝났지만 "국민소득 2만불 국가의 복지정책이 이 정도냐"는 문제의식에서 촉발된 복지와 증세의 논의는 연말 대선까지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대선을 앞둔 19대 국회 첫 회기부터 민감한 세금문제들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정부와 정치권이 나름의 논리를 제시하면서 '증세VS감세' 논쟁을 재현할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이다.
이런 측면에서 OECD의 '지원사격'을 받은 정부는 상당한 우군을 얻은 셈이다.
비록 OECD의 이런 입장이 정답은 아니더라도 선진국은 이렇게 가는 추세라는 주장과 논리를 내세울 카드가 더 생겼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향후 정부와 정치권의 세금논쟁이 어떤 형식으로 전개될지, 특히 이 가운데서도 OECD가 밝힌 세원확보를 위한 간접세 인상 권고 부분에 대해선 어떤 식의 갑론을박이 펼쳐질지 벌써부터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