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지난 4월말부터 삼성엔지니어링과 기아자동차, 그리고 SK건설과 LG전자 등에 대한 세무조사에 나선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상이 시끄럽다.
세무조사가 착수된 4개 기업들이 우연치 않게 모두 삼성그룹, 현대기아차그룹, LG그룹과 SK그룹 등 이른바 4대 그룹의 핵심 계열사였고, 또 정권말기 특수상황과 연결되면서 세무조사 착수배경과 관련해 이해할 수 없을 수준의 분분한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국세청 세무조사에 밝지 못한 일부 사람들은 정권말기 대기업 세무조사는 신중했었는데, 이번 4대 그룹에 대한 동시다발 세무조사는 이례적인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면서, 근거가 부족한 확대해석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모양새다.
친기업 기조를 내 걸었던 이명박 대통령이 일자리 투자에 미온적인 대기업에 서운함을 느낀 나머지, 집권후반기 '레임덕'을 막기 위한 대기업 길들이기 차원에서 세무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듯 받아들여지는 상황까지 치닫고 있다.
세무조사 범위도 친절히 소개되고 있다. 세무조사가 대기업들의 국외특수관계법인과의 이전거래조작을 통한 역외탈세 혐의 그리고 해외자회사 지급보증수수료 문제에 집중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그럴듯한 설명들이 잇달았다.
국세청 세무조사에 대기업들은 바짝 긴장하면서 대선을 앞두고 어떤 정치적 계산이 깔린 것 아니냐며 세무조사 배경을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양념.
■ 4大 그룹 동시 세무조사의 실상
4대그룹에 대한 동시다발적인 세무조사가 이례적이라거나 세무조사의 범위 등의 주장은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이 간과됐다.
국세청은 지난 1월말 이현동 국세청장 주재로 전국 조사 분야 핵심 간부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 조사국장 회의'를 열고, 올해 세무조사 운영방향을 확정해 발표했다.
당시 대기업 조사와 관련해 국세청이 발표한 내용의 핵심은 연매출 5000억원 이상 대법인 조사 주기를 5년(현행 4년)으로 늘리되, 조사대상 연도를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확대해 조사강도를 높이겠다는 것.
또 2010년 기준으로 매출 5000억원 이상인 대기업 567개 가운데, 1/5수준인 110개 가량의 대기업에 대해서 올해 안으로 세무조사를 벌이겠다는 입장도 천명했다. 이들 110개 법인 가운데는 4대 그룹 뿐만 아니라 10대, 30대 그룹에 속한 회사도 상당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지난해말 기준 삼성그룹의 경우는 상장사 17개를 포함해 78개에 달하는 국내 계열회사를 거느리고 있고, 현대자동차그룹도 10개의 상장회사를 포함해 55개의 국내 계열회사를 갖고 있다.
LG그룹의 경우도 상장사 11개를 포함 60개 국내 계열사가 있으며, SK그룹은 16개의 상장사를 포함해 90개의 국내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5년 주기 세무조사를 감안하면 4대 그룹 가운데 55개의 국내 계열회사를 갖고 있어 계열사가 가장 적은 현대자동차그룹도 수치상으로는 매년 평균 11개 계열사가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게 된다.
결국 4대 그룹뿐만 아니라 10대 그룹 나아가 30대 그룹 등에 속하는 대기업집단들은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을 뿐, 연중 그 어느 때라도 계열사 가운데 한 두 곳 이상은 늘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그룹들은 1년 내내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전혀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다.
4대 그룹만 잘라내 대기업 길들이기 차원의 세무조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곧 현재 세무조사가 진행 중인 회사에 대한 정보의 한계를 스스로 드러내는 것에 불과할 뿐이라는 얘기다.
서울지역에서 대기업 세무조사를 전담하고 있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은 3개과 26개 조사팀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늘 팀별 1-3개의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배정 받고, 연중 쉬지 않고 세무조사업무에만 몰두하고 있다.
게다가 심층조사를 전담하고 있는 조사4국만 해도 직접 조사에 나서는 부서가 3개과 19개 팀이나 된다. 이들 역시 현재 어느 곳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는지 알려지지 않았을 뿐 연중 쉬지 않고 심층조사를 진행한다.
이들이 벌이는 수많은 세무조사 가운데 겨우 4곳만 확인했을 뿐인데, 이를 빌미로 대기업 길들이기 운운하는 것은 심해도 너무 심한 억측이다.
■ 대기업 세무조사의 범위는?
세무조사가 이뤄지는 범위와 관련해서도 지금껏 나온 이야기들과는 사뭇 다른 부분이 감지되고 있다.
국세청이 천명한 매출 1조원 이상 대그룹들에 대한 세무조사 방향은 주식변동조사를 강화해 세부담 없는 경영권승계에 대해 엄단한다는 것이다.
국외특수관계법인과의 이전거래조작을 통한 역외탈세 혐의라던가 해외자회사 지급보증수수료 문제도 물론 세무조사 과정에서 들여다봐야 할 내용이지만, 조사목적이 순전히 그곳에만 집중돼 있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의 우려와는 달리 삼성전자에 대한 세무조사에서도 해외자회사 지급보증수수료에 대한 소급과세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무조사와 관련해 대기업들이 현재 바짝 긴장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뭘까. 국세청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근거 없는 여론의 호들갑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은 기우(杞憂)일까. 생각해 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