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의 경영실적이 사상 최고기록을 갱신했다. 국내 자동차시장 침체와 유럽발 재정위기 속에서도 올 1분기 사상 처음으로 영업이익률 11%를 돌파했다. 주가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뒤 26만원대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하나같이 '매수의견'을 내며, 현대차의 무한질주를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차를 둘러싼 경영여건은 그리 만만치만은 않다. 우선 올해부터 메이저 업체들이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응해 경제성 높은 신차를 집중적으로 선보이며 대반격에 나선다. 토요타자동차의 리콜사태에 이어 일본 대지진 여파로 얻었던 반사이익도 상쇄되고 있다. 현대차 내부사정을 봐도 급성장의 여파로 높아진 부채비율과 여전히 불안정한 노사문제 등 불안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잘 나갈수록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우량기업인 현대차에 위기요인은 없을까. <조세일보>가 집중 탐사해 봤다. [편집자 주] |
계열사 영업이익률 9.4% '고공비행'…비계열사 3.4% '제자리'
비계열 부품협력사 진정한 상생관계 '낙수효과'는 기대난(期待難)
"그동안 동반성장 정책을 추진한 결과 1차 협력업체들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2, 3차 협력업체 육성과 체계적 지원을 강화해 건전한 기업 생태계를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집권 후반기 국정기조를 '공생발전'으로 제시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공생발전의 의미와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30대 그룹총수들을 만난 자리에서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약속한 말이다.
정 회장이 대통령 앞에서 자신 있게 '협력업체 육성과 체계적 지원 강화'를 약속한 이후 현대자동차는 지금까지 상생협력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또 정 회장의 장담대로 1차 협력업체들은 현대자동차의 동반성장정책으로 얼마나 강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 가고 있을까.
이에 대한 확인을 위해 <조세일보>가 현대차계열 부품 6개사와 비계열 6개사를 선정해 최근 5년간의 영업실적을 분석했다. 그 결과 직접계열사들이 높은 영업이익으로 '더운 밥'을 먹고 있었다면, 비계열부품사들은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비계열사 6곳의 영업이익률이 지난 5년 동안 3.3%에서 3.4%로 제자리 수준에 머무른 것에 만족했던 사이 계열사 6곳은 영업이익률이 비계열사와 비교할 때 3배에 가까운 9.4%에 이를 만큼 고공비행으로 성장을 거듭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3년간 연평균 16.5% 성장세를 기록하며 12조원 넘는 순이익을 쌓은 회사. 현대차가 이같이 눈부신 경영성과를 보인 상당부분은 부품업체들의 희생 때문이 아니냐는 항간의 이야기에 설득력이 보태지는 부분이다.
이명박 정부는 수출대기업을 지원하면 하청기업도 덩달아 동반성장, 일자리가 늘어나는 '낙수효과'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현대차는 MB정부의 이 같은 정책으로 인한 대표적 수혜기업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현대차 성장에 따른 기대했던 낙수효과는 계열 부품사에게만 집중됐을 뿐, 비계열 중소 부품업체들에겐 인색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 비계열 부품회사는 5년째 수익개선 없는 제자리 걸음 성장
현대차 협력회사 가운데 최근 5년간의 영업실적 분석 대상은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현대파워텍 ▲현대다이모스 ▲현대메티아 ▲현대위스코 등 현대차계열 부품 6개사와 ▲현대EP ▲성우하이텍 ▲세종공업 ▲동양기전 ▲에코플라스틱 ▲유성기업 등 비계열 6개사.
현대차에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 분석대상 기업의 지난 5년간 연평균 매출액 증가율은 현대계열 31%, 비계열 28%로 계열여부와는 무관하게 성장률은 비슷했다. 하지만 질적 성장의 한 단면으로 볼 수 있는 영업이익률은 딴판이다.
현대계열이 7.1%에서 9.4%로 약 2.3%포인트 수익성 개선이 이루어진 반면, 비계열은 3.3%에서 3.4%로 제자리 수준에 머무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현대차의 영업이익률 역시 5.9%에서 8.0%로 2.1%포인트 수익성이 향상됐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원재료비나 인건비 등 제조원가의 상승요인이 발생하면 이를 제품가격에 반영하고, 일정규모 이상의 외형성장이 이루어지면 규모의 경제원리가 작용, 수익성이 개선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계열부품사들은 5년간 연평균 28%라는 고도 성장세를 기록하면서도 영업이익률은 제자리였다. 대기업과 협력업체들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목되고 있는 '납품단가 후려치기'가 이뤄진 것이 아닌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현대차 납품업체의 하나인 A사 관계자는 "현대차와 10년 동안 거래를 해오면서 납품단가를 인상해준 케이스는 없었다"며 "해마다 납품단가를 동결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품질개선과 임금인상 등 원가상승 요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납품단가를 올릴 수 없어 제조과정의 재구축과 비용절감 등을 통해 제조원가의 상승요인을 자체 흡수했다"고 토로했다.
10년 동안의 물가상승률을 감안할 때 하청업체가 감내한 부담이 얼마나 컸을 것인지 짐작이 되는 부분이다.
다른 납품업체 B사 관계자는 "납품단가인하 등 불공정사례를 소상하게 밝히려면 현대차와 거래를 끊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고 손사래를 치며, 기자를 향해 극도의 경계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우리 회사는 그나마 해외에 수출도 하고 있어서 형편이 조금 나은 편"이라며 "중소업체의 사정은 더 열악하다"고 설명했다.
■ 부품업체와 진정한 상생관계 이뤄야 '제2의 토요타 사태' 막는다
이 문제는 공공연한 비밀이기 때문인지 연구논문을 찾기도 힘들었다. 겨우 한 대학의 연구논문에서 이러한 불공정 하도급실태에 대한 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경상대학교 이상호 교수는 지난해 5월 발표한 '한국자동차산업 불공정 하도급 관계의 실태와 정책대안 - 현대자동차사례를 중심으로'란 논문에서 불공정하도급실태를 사례별로 다뤘다.
이 교수는 불공정사례로 구두계약, 납품단가인하, 임금률과 임금인상의 억제, 경쟁입찰과 내부거래, 복사발주와 발주이원화 등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납품업체의 납품단가 등 거래관련 사항은 회사내부 보안사항이라 알려줄 수 없다"며 부품회사와의 납품계약 관행을 밝히기를 거부했다. 그는 "주무부서(구매본부)는 외부인들과는 통화를 하지 않는 것이 회사방침"이라고 잘라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2010년 일본의 토요타자동차의 대규모 리콜사태를 상기시키며 "지금 현대차가 반사이익을 즐길 상황이 아니며 부품업체와 상생관계를 이루면서 품질을 높여 제2의 토요타가 되는 일은 없어야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토요타자동차의 위기는 '마른 수건도 다시 짜기 식'의 단가인하의 결과로 빚어진 부품의 결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납품단가의 '후려치기'는 납품업체의 연구개발의욕과 능력을 저하시키고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한 무리수를 유발시켜 결국 불량품의 양산, 나아가 완성차의 불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토요타의 악몽이 현대차에게도 얼마든지 재현 될 수 있다.
이러한 위기를 겪지 않으려면 이제부터라도 비계열 부품업체들을 단순한 납품·하청업체가 아닌 공존의 파트너로 인식해야 하며, 공정한 거래를 통해 양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진정한 동반성장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대체적인 고언(苦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