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의 경영실적이 사상 최고기록을 갱신했다. 국내 자동차시장 침체와 유럽발 재정위기 속에서도 올 1분기 사상 처음으로 영업이익률 11%를 돌파했다. 주가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뒤 26만원대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하나같이 '매수의견'을 내며, 현대차의 무한질주를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차를 둘러싼 경영여건은 그리 만만치만은 않다. 우선 올해부터 메이저 업체들이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응해 경제성 높은 신차를 집중적으로 선보이며 대반격에 나선다. 토요타자동차의 리콜사태에 이어 일본 대지진 여파로 얻었던 반사이익도 상쇄되고 있다. 현대차 내부사정을 봐도 급성장의 여파로 높아진 부채비율과 여전히 불안정한 노사문제 등 불안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잘 나갈수록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우량기업인 현대차에 위기요인은 없을까. <조세일보>가 집중 탐사해 봤다. [편집자 주] |
해외 경쟁업체 신차출시 봇물…연비 등 경제성 갖춰 '저가공세'
현대차 신차출시 4 종…최첨단車 고급․고가(高價)로 '승부수'
잘나가던 성장세 꺽인 사이 일본차는 쾌속질주
올 한해 GM과 포드, 토요타, 혼다 등 메이저 자동차업체들이 수십 종의 신차들을 싼값에 시장에 내놓을 예정인 가운데, 현대자동차는 불과 4종의 신차에다 고가정책으로 맞설 것으로 알려져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글로벌 자동차회사들은 국제적인 금융위기와 고유가 시대에 맞춰 경제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현대차는 첨단장비와 다양한 옵션을 추가한 고가제품들로 승부를 걸 태세다.
현대차의 이같은 전략의 성패여부에 대해 업계에선 지난 4월 미국시장에서의 판매량 감소에 주목, 갖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다. 미국 시장은 현대차의 고가전략에 대해 '전략수정이 필요하다'는 경고음을 울리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해외 車업체 신차출시 '봇물'…현대차는 4종으로 맞서나
자동차 관련업계에 따르면 자동차시장의 판세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각 업체들의 신차출시 전략이다. 신차출시 모델 수는 곧 경쟁력의 척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지난 3년 동안 사업환경 악화로 신차출시에 주춤했던 메이저 업체들은 2012년에 신차 50여종을 출시하며 시장탈환을 위한 대공세를 펼친다. 그런데 현대차는 올해 4종의 신차를, 또 기아차는 겨우 1종의 신차를 내놓는데 그칠 것으로 알려졌다.
토요타의 경우 2010년 리콜사태로 인해 개발해 놓은 신차도 시장에 내놓지 못했지만, 올 한 해에만 13∼19종의 신차를 출시하며 대반격을 예고하고 있다. 닛산과 폭스바겐도 각각 10종, GM과 포드는 각각 7종씩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 연비절감 등 '경제성' 강조추세…현대차는 고급·고가(高價)로 '승부수'
현대차의 신차컨셉도 해외 메이저 업체와 정반대로 볼 수 있다. 해외 업체들이 내놓는 신차들은 국제적인 금융위기와 고유가 시대에 맞춘 절감·슬림형 등 '경제성'에 컨셉을 맞춘 반면, 현대차는 기본사양과 옵션을 첨단사양으로 상향조정했다.
차량판매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딜러들에게 지급되는 판매장려금과 관련된 판매정책도 상당히 공격적이다. 현대차는 딜러 판매장려금을 GM, 포드, 토요타, 혼다 등 메이저 업체들 보다 적게 준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차의 가격 및 마케팅 포커스 측면에서도 현대는 지난 3월 출시된 그랜저의 가격을 품질 상승을 내세우며 25%나 인상하고, 산타페도 1~3% 올려 출시했다.
이에 반해 해외 메이저 업체들은 가격인하, 저비용 사양 추가, 소형차 부문 확대 등 경제성을 강조하는 추세다. 이러한 추세는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고유가 시대에 지갑을 닫고 있는 소비자들에 대응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토요타는 주력 모델 캠리를 기존 모델보다 3∼5% 저가로 출시하면서 103가지 사양을 단순, 절약형으로 바꾸었고, 연비절감 효과가 높은 하이브리드 모델의 시장진입에 마케팅을 집중하고 있다.
혼다도 아큐라 신형을 10% 인하된 가격으로 출시했고, 닛산도 알티마를 8% 인하하며 경제적 사양으로 완전 탈바꿈해서 내놓는다. GM은 말리부를 새로 출시하면서 고객이 선호하는 사양만 채용하고 나머지 사양은 과감하게 버리면서 찻값을 3~5% 인하했다.
혼다 씨빅, GM 크루즈, 푹스바겐의 시로코와 아우디의 A3 등 이제까지 고급 중대형 모델에 주력했던 업체들도 저가-소형 모델을 확대하고 있다. 혼다 씨빅은 공급부족이 해소되면서 올 들어 판매량이 45%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최근 양적인 확대보다 품질향상을 통한 내실경영을 임원들에게 주문했다. 이번 신차의 고급화와 가격인상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루어 진 것으로 "그동안의 브랜드 가치상승에 근거한 현실적인 정책"이라고 현대차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와 관련 업계에서는 세계 자동차 시장의 트렌드와 반대로 가고 있는 현대차의 전략에 대해 "정몽구 식의 역발상이다"라며 놀라움과 우려를 동시에 나타내고 있는 모습이다.
■ 공격적 판매정책은 자신감 표현(?)…경쟁사 반사이익만 줄 수도
현대차가 가격을 인상하고 딜러에게 주는 인센티브를 줄이는 정책은 향상된 품질과 브랜드 인지도에서 오는 자신감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싸우던 현대차가 가격을 내리고 있는 메이저 업체와 맞설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2011년 기준 경쟁 차종과 10~25% 차이가 나던 가격이 2012년에 들어와 7∼10% 정도로 간격을 줄였다.
미국 USnews는 'New car Review'에서 그랜저 신차에 대해 "고급사양이 기본으로 장착됐지만 높아진 가격과 승차감 등을 고려할 때 포드의 토러스나 클라이슬러 300이 더 큰 만족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내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현재 시점에서 현대차의 브랜드 이미지나 품질이 해외 메이저 업체 제품보다 더 낫다고 보지는 않는다"며 "현대차의 고가정책이 수입차 업체들에게는 반사이익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실제로 전열을 가다듬은 일본업체들은 이미 2011년 하반기부터 가파르게 회복세로 돌아섰고 현대차는 이미 시장을 뺐기고 있다.
미국 자동차 전문미디어 Automotive News가 공개한 미국시장 판매실적을 보면 작년 하반기 이후 지난 4월까지 토요타는 점유율 4.4%p, 혼다는 2.3%p 증가한 반면 현대는 0.4%p 감소했다.
지난 4월 토요타의 주력차종 캠리는 전년 대비 21% 증가했고 저연비를 내세운 프리우스는 두배 넘게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현대차의 주력차종 쏘나타의 판매는 5.6% 감소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앞으로 나올 아반떼와 i30도 고품질-고가 전략 선상에서 개발되었을 것"이라며 "이번 싼타페 사례와 최근 일본 업체들의 상승세를 볼 때 지금이라도 빨리 고품질-고가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작년 토요타는 인력구조를 개편하고 제품군 전체를 새로 조율하면서 "시장의 트랜드를 미리 예측하는 것은 일류 기업도 어렵다. 그래서 변화를 감지했을 때 얼마나 빨리 변신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라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역발상 현대차'가 현시점에서 귀기울여야 할 얘기라고 업계에서는 입을 모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