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저축은행 부실사태로 금융당국의 비리가 속속 드러나면서 우연한 기회에 관계자로부터 들은 말이 있다.
"오랜 기간 쌓여온 유착으로 감각이 무뎌졌다. 가벼운 선물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대가가 있는 뇌물이 됐다."
금융감독이 실패한 것은 사람의 문제다. 금융시장의 관리자들이 부정부패에 무감각해지면서 과실의 싹이 텄다.
그런데 최근 들어 논의 중인 '금융감독 체계개혁'의 내용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나 고민이 담겨 있지 않은 것 같아 실망스럽다.
새로운 구조의 큰 틀은 현행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담당하는 금융감독 업무를 '건전성 감독' 및 '소비자 보호' 기능으로 분리하는 것인데, 금융위를 기획재정부로, 금감원을 두개의 기관으로 각각 회귀하거나 나눠야한다.
여기에는 금융감독기관 간 이해관계 상충이나 내부적 갈등이 수반된다.
외환위기 후 지난 10년 동안 금융감독 체계개혁은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듭해 왔다.
1999년 은행·증권·보험감독원 등이 현재의 금감원으로, 2008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국과 금융감독위원회가 금융위로 합쳐지면서, 정부기관으로서 금융위는 법률제정과 금융정책을 결정하고, 민간기관이자 금융위 위임을 받는 금감원은 금융회사 검사와 감독을 맡고 있다.
하지만 업무가 중복되거나 금융위가 가진 금융회사 제재와 인허가, 금감원 임원(부원장 이상급)의 임명이나 제청권한을 두고 금감원의 반발이 끊임없이 있어 왔다.
또 금융회사 검사권한 중 일부를 가진 한국은행과 예금보험공사까지 공동검사를 두고 금감원과 충돌하면서 금융당국이 '밥그릇' 싸움을 한다는 비난도 피할 수 없었다.
25일 열린 '금융감독 체계개혁' 토론회에서는 이처럼 금융시장의 본질적인 문제인식에 앞서 금융감독기관 간 이해관계나 정치적 갈등의 해결이 우선시된 것은 아닌지 회의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홍종학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은 "다음 정부에서 집권하게 되면 오늘 논의된 내용을 꼭 법안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현 정부에서 개혁한 금융감독 체계를 정권이 바뀌면 또 다시 원래대로 되돌려 놓겠다는 것이다.
물론 새로운 금융소비자보호원이 생긴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마치 정부부처를 가위로 자르고 풀로 붙이는 것처럼 하는 것을 국민들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금융감독 체계개혁이 필요한 이유는 금융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과도 연관돼있다.
키코(환 헤지 통화옵션상품)나 파생금융상품처럼 금융시장이나 금융상품들이 복잡화, 다양화 되면서 금융소비자의 피해를 예방하고 권한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 체계개혁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금융시장이 변화하면 정책이나 관리의 방법도 그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2008년 금융위기 후 미국이나 영국처럼 금융 산업이 선진화된 국가들도 금융감독 체계개혁을 이뤄가고 있는 만큼 시기적으로 논의가 필요한 것은 공감이 된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이 간과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조직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또 금융감독은 금융소비자, 즉 금융을 이용하는 국민이 주체가 돼야하며, 이를 위해 존재하는 금융당국의 청렴과 윤리는 기본이다.
금융감독 체계개혁이라는 중요한 과제가 더 이상 조직이기주의나 정치적 싸움으로 변질돼서는 안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