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질서를 문란하게 하거나 공공 풍속을 해치는 서적·간행물·도화, 영화·음반·비디오물·조각물 또는 그밖에 이에 준하는 물품은 수출입 통관을 제한한다."
관세법 제234조는 통관 제한 물품과 관련해서 이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민 정서에 맞지 않을 정도의, 이른바 '음란하고 변태적인' 물품들은 통관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현행 관세법에 따라 통관 행정을 엄격히 집행하는 관세청의 판단을 두고 크고 작은 이견대립이 계속되고 있어 주목됩니다.
다름 아닌 '성인용 자위기구' 때문입니다.
최근 관세청이 국민 정서를 해친다는 이유로 통관 보류처분을 내린 성인용 자위기구에 대해 해당 물품 수입업자가 조세심판원, 법원 등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건들이 늘고 있습니다.
문제는 심판원과 법원이 관세청의 논리를 깨고 수입업자의 손을 들어주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비해 성적으로 개방된 상황에서 관세청의 통관 보류 판단은 다소 맞지 않는다는 것이 심판원과 법원의 판단근거.
심판원과 법원의 계속된 개방적(?) 판단으로 관세청은 뜻하지 않은 '통관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관세법 규정에 따라 일반인들의 정서를 해칠 우려가 있는 일부 성인용품 등은 통관을 반드시 보류해야 한다는 것이 관세청의 공식적인 입장이지만, 심판원과 법원의 판결이 아무래도 신경 쓰이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서는 성인용품에 대해 '관세청이 너무 보수적인 것 아니냐', 혹은 '공무원이라서 그런지 너무 꽉 막혔다'라고 평가하는 등 관세청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경제국경의 파수꾼인 관세청의 입장은 단호합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성인물품을 무분별하게 국내로 통관·유통시킬 경우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관세청 관계자는 "성인물품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에 대비, 다소 타이트하게 관리하고 있다"며 "성인용품의 경우 국민들의 건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꼼꼼한 통관 검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관세청에서 자위기구 등 성인용품이라는 이유만으로 통관을 전면 보류하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관세청에 따르면 통관 검사 과정에서 남·녀의 성기를 너무 사실적으로 재현했거나, 정상적인 성(性)관념에서 벗어날 정도로 과도하게 음란한 품목에 대해서만 통관을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여성용 자위기구의 경우 통관이 가능하지만, 남성의 성기를 너무 적나라하게 묘사했거나 사람 '혓바닥' 모양의 돌기 등이 붙어있는 혐오스러운 모습으로 제조된 자위기구는 통관이 보류됩니다.
자위기구 등 성인용품을 통관 대상에서 제외시킬 경우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무허가 저질용품이 밀수 등 불법적인 방법으로 들어오는 '풍선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성인용품의 정상적인 통관을 막는 관세청의 보수적인 행정이 음성적인 수입 루트만 개설할 뿐이라는 지적입니다.
이에 대해 관세청 관계자들은 "성인용품 외에도 중국산 짝퉁 등 모든 수입품은 밀수가 발생할 수 있고, 세관에서 철저히 불법반입을 단속한다"며 "불법밀수를 우려해 애초부터 통관허용 잣대를 느슨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현재도 일선 세관에서는 성인용품은 물론 다소 비정상적인 수입물품에 대한 관세청의 타이트한 통관 보류 결정에 대해 수출입업체들의 볼멘소리가 적지 않게 나오는 게 현실입니다.
하지만 수입물품 통관의 최종 책임자인 관세청 입장에서는 개방된 21세기의 시대적 요구보다는, 국민들의 건강과 건전한 정서를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자위기구 통관을 놓고 성인용품 수입업자들과 관세청 사이에서 벌어지는 불꽃 튀는 한판 승부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