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계열사에 중간마진을 챙겨주기 위해 직접 '통행세'를 지시하는 등 임직원들에게 부당지원 행위를 명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제조사와의 물품구입 거래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생뚱맞은 계열사를 중간 유통업체로 참여시켜 40억원 이상의 마진을 챙겨줬다.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김동수)는 19일 현금자동입출금기를 직접 구매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 회장의 지시에 따라 계열사를 통해 간접 구매하는 수법으로 부당지원을 일삼은 롯데피에스넷(주)에 과징금 6억4900만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롯데피에스넷(주)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정산자동화 서비스 등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롯데그룹 계열사로, ATM 기기를 편의점 등에 설치해 고객으로부터 일정 수수료를 수취하는 전자금융서비스 업체다.
공정위에 따르면 롯데피에스넷(주)은 지난 2009년 9월부터 현재까지 현금자동입출금기 제조사인 네오아이씨피로부터 ATM 기기 3534대(707억8600만원)를 매입했다.
하지만 제조사로부터 직접 ATM 기기를 구입할 수 있었던 롯데피에스넷(주)은 굳이 중간상으로 롯데알미늄(주)를 거래에 끼워 넣었다.
네오아이씨피로부터 직접 ATM 기기를 구매해야 유통단계를 줄이고 매입비용을 절감할 수 있지만, 신 회장이 롯데알미늄(주)를 통해 간접 구매하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10월경 롯데피에스넷(주)는 출금 기능만 있는 CD(현금자동출금기) 기기 위주에서 ATM 기기로 사업모델을 변경·확대하기 위해 새로운 사업계획을 작성해 롯데그룹 최고 경영진에 보고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당시 부회장을 지냈던 신 회장이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던 롯데기공(현 롯데알미늄 기공사업본부)을 거래 중간에 끼우라고 직접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공정위가 입수한 롯데피에스넷 대표이사가 직원에게 보낸 메일에는 "ATM 제작방안 보고 당시에 롯데기공을 끼우면 안되냐는 회장, 부회장의 찬조 발언이 있어 롯데기공을 끼운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롯데기공은 지난 2008년 공사 관련 채권 회수지연 등으로 유동성이 크게 악화됐고, 단기차입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부채비율이 5366%에 달했다. 결국 2009년 어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선정돼 일부는 롯데건설 매각됐고, 나머지는 롯데알미늄이 흡수합병했다.
신 회장과 롯데피에스넷(주)가 보일러제조 전문 회사로서 ATM 사업 경험이 전무했던 롯데기공을 거래 중간상으로 끼워 넣는 수법으로 수익을 부당하게 지원한 것이다.
ATM 구입과 관련해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은 롯데알미늄 기공사업본부는 가만히 앉아 총 41억5100만원의 중간마진을 챙겼고, 롯데피에스넷(주)는 그만큼 손실을 입었다.
이 같은 부당지원으로 지난 2008년 88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던 롯데알미늄 기공사업본부는 1년만에 흑자로 전환되는 등 재무구조가 현저히 개선됐다. 실제로 부당지원 금액은 롯데알미늄 기공사업본부의 최근 3년 당기순이익 46억1600만원의 85.2%에 달한다.
공정위는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롯데피에스넷(주)에 계열회사를 통해 간접 구매하는 방법으로 부당지원 행위를 하지 말라고 시정명령을 내렸고, 6억49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대기업 집단이 별다른 역할이 없는 계열회사를 중간에 끼워 넣어 일종의 통행세를 챙겨주는 부당지원 행위를 적발해 제재한 첫 사례"라며 "앞으로도 대기업 집단의 부당ㅎ위 감시를 강화하고 통행세 관행을 근절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