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민주화의 실체, '재벌규제'를 위한 정치권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내놓은 재벌규제 방안에 수위의 차이는 다소 존재하지만, 재벌대기업의 지배구조 쇄신이라는 기본 '뼈대'는 같다.
특히 재벌대기업의 순환출자 구조를 혁파해 적은 지분으로 기업을 손아귀에 쥐고 흔드는 것을 막아내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에 새누리당은 반대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민주통합당은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과 금산분리 강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재계는 정치권의 동향에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 규제의 강화는 기업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요소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너무 많이 풀려버린 재벌대기업의 규제쇠사슬을 다시 묶겠다는 정치권.
재계는 심각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한 채 정치권의 움직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양측 모두 물러설 기세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시간이 지날수록, 재계와 정치권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파열음'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 출총제 부활, 금산분리 강화…새누리당은 반대하지만
민주통합당은 재벌대기업 지배구조 쇄신을 기치로 이미 출총제 도입법안을 제출했으며, 금산분리 강화방안을 경제 민주화의 실현을 위한 정책대안으로 제시한 상태다. 특히 민주통합당이 당론으로 확정한 출총제 부활안은 '슈퍼 출총제'로 불릴 만큼 강도가 세다.
지난 4·11 총선 과정에서 확정된 민주통합당의 출총제 부활안은 10대 대기업집단이 순자산의 30%를 초과해서 계열사에 투자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 출총제가 살아있을 당시 기준(25%)보다는 완화된 듯 하지만, 과거에는 차세대 성장동력사업, 현물출자 물적분할 회사 등의 투자에 예외가 인정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강도가 더욱 높다.
최근 박영선, 이목희 의원 등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국회에 제출한 출총제 부활안은 정도가 더하다. 예외 불인정은 물론 순자산액 기준을 25%로 묶어버렸다.
출총제는 특정 기업이 다른 기업의 주식을 일정 한도 이상 매입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제도. 대기업의 문어발 확장을 막는 대신 부실기업 구조조정,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어렵게 하는 역기능도 존재해, 1986년 도입된 뒤 정권특성과 경제상황에 따라 존폐를 거듭해왔다.
민주통합당은 또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의 은행지주회사 의결주식 보유한도를 현행 9%(단 산업자본이 의결권 포기 시 1% 추가 허용, 최대 10% 보유인정)에서 4%로 다운시키는 내용의 금산분리 강화정책을 추진할 방침이다(은행법 개정안).
출총제 부활과 금산분리 강화, 모두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재벌대기업에 주어졌던 '특혜'를 회수하겠다는 것이다. 민주통합당의 경제 민주화는 재벌규제임과 동시에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철저한 '부정'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반면 새누리당은 재벌대기업의 신규 순환출자는 금지하겠다는 방침(민주통합당은 기존 출자 3년 내 해소). 하지만 출총제 부활과 금산분리 강화에 대해서는 실효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나친 대기업 옥죄기 식의 규제는 국가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나성린 새누리당 정책위 부의장은 "출총제는 그 효과 없이 기업들의 투자만 제한하는 부작용이 있다"며 "대기업들이 출총제 기준을 이미 충족시키고 있어 재벌기업 수가 늘어나는 부작용을 없애려면 다른 방법으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새누리당 내 일부 의원들 사이에 제한적 수준의 출총제 부활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새누리당이 현재의 정책기조를 끝까지 유지해 나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편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대기업 총수에 대한 사면 제한에는 뜻을 같이하고 있다.
특히 새누리당은 경제 민주화 1호 법안으로, 이 내용을 골자로 한 특정경제범죄법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하기도 했다. 아울러 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징벌적 배상제 도입, 일감몰아주기 금지, 대형유통업체 영업시간 제한 등 각론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는 상황이다.
◆ 갑론을박 치열, 합리적 규제? 대기업 옥죄기?
재벌대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치권의 정책을 놓고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상대방의 정책노선에 대해 '실효성이 없다', '알맹이 없는 포퓰리즘이다'라는 등 날선 대립을 계속하고 있다.
당장 대선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권은 지금까지 내놓은 각종 재벌규제 정책을 대선 이후, 즉 새 정부 출범 이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를 둘러싼 밀고 당기는 '논란'은 그동안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출총제 부활과 금산분리 강화에 대해서는 논란이 한창이다. 정부도 민주통합당의 출총제 부활이나 금산분리 강화에 대해서는 반대입장을 피력한 상황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도 최근 출총제 부활 등에 대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특히 김 공정위원장은 "출총제 부활에 효과가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도 출총제 부활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다소 높게 형성되고 있다.
출총제가 사회간접자본(도로·항만·철도·통신·전력·수도 등)의 민간투자, 정부가 30% 이상 출자한 기업 등에 대해 예외규정을 두는 만큼 다양한 회피수단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 결국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겠다는 본래의 취지에는 충분한 대응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은정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연구위원은 "출자한도를 너무 높이면 구속력이 없고, 너무 낮추면 대기업의 출자여력을 줄여 민영화나 구조조정을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의 연구결과, 출총제가 도입되면 SK그룹·현대그룹·현대중공업·한진그룹·한화그룹 등 대기업은 일정 부분의 출자금을 해소해야 한다. 하지만 이중 현대, 한화, 동부 등은 초과된 출자액이 수조원에 달하는 등 액수가 많거나 지배구조가 복잡한 관계로 이를 해소하는 것이 어려울 것으로 예측된다.
금산분리 강화를 두고도 찬·반 양론이 분명하게 갈리고 있다.
현 정부가 들어선 뒤 금융위원회는 은행산업의 대형화,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의 민영화, 활발한 인수합병 등을 명분으로 내세워 은행법을 개정했다. 당시 박종희 전 새누리당 의원의 주도로 법안이 통과되면서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한도가 현행 10%로 늘어났다.
정부당국 관계자는 "민주통합당이 주장하는 금산분리 강화는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한도를 은행법 개정 전인 2009년으로 회귀하자는 것인데, 여기에는 상당한 사회적 비용이 들뿐만 아니라 외국자본에 국내은행 인수의 길을 터 줄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대기업들이 제조업 아닌 금융회사 인수합병으로 손쉽게 돈을 버는 것을 두고,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으며, 이에 대해 재계는 물론 정부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상조 경제개혁연구소장은 "은행산업은 가장 분산된 소유구조를 가지고 있다. 현행법에 따라 산업자본이 은행이나 은행지주회사 지분을 9%까지 취득할 경우에 경영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