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수장들, "금융사 담합 의혹 없다" 정면 반박
공정위, 금융사 현장조사 진행…차분히 수위조절
금융소비자 권익 관련 헤게모니 다툼 시각도 우세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당국간 CD(양도성예금증서) 금리 담합 의혹과 관련된 기 싸움이 심상치 않게 전개되고 있다.
공정위가 CD금리 담합 의혹을 제기하며 증권사와 은행들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하는 등 전방위 압박을 펼치자 금융당국 수장들이 금융사들을 적극 옹호하고 나서는 등 파워게임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
일부에서는 금융소비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출범하는 금융소비자보호원이 공정위와 금융당국간 상당부분 권한이 겹치는 만큼 이를 둘러싼 헤게모니 다툼의 전초전 양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저축은행 사태 등으로 체면을 크게 구기고 있는 금융당국이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영역을 두고 공정위와 물러설 수 없는 신경전을 한판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 수장들, 금융사 적극 옹호 =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지난 20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CD금리 담합 의혹을 묻는 질문에 "금융회사들의 금리가 자유화돼 있는 마당에 시장지표를 조작해 얻을 이익이 크지 않다"며 담합의혹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금리가 자유화됐고 금융회사들이 가산금리를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는 상황에서 시장지표(CD금리)를 조작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다.
여기서 더 나아가 김 위원장은 "단기지표금리는 금융산업에 영향을 크게 주기 때문에 관련기관과 함께 CD가 단기지표금리로 적절한지, 보완할 필요는 있는지, 대체수단은 뭔지 등에 대해 실무선에서 보완을 어떻게 할지 상당히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위는 이참에 논란이 되고 있는 CD금리를 대체할 지표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는 입장이다. 금융위가 지난 19일 '단기금리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어 CD금리를 부분적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기존의 단기금리를 보완키로 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이어 권혁세 금융감독원장도 지난 19일 기자들과 만나 금융회사들이 CD금리를 조작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단정적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며 조작 의혹에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그는 "결론도 나기 전에 금융회사들을 파렴치범으로 몰고 가는 건 적절치 않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이어 권 원장은 지난 20일 금융투자회사의 최고경영자(CEO) 25명과 만나 "증권업계의 각종 규제를 풀겠다"며 CD금리 담합 의혹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에 있는 증권업계를 끌어 안는 모습을 보였다.
■느긋한 공정위, 히든 카드 꺼낼까 = 금융당국이 CD금리 담합 의혹 제기에 다소 예민하게 맞대응에 나서는데 비해 공정위의 모습은 한결 차분하다.
공정위는 CD금리 담합 의혹과 관련해 금융회사 한 곳이 자진신고가 있었다는 소문과 관련 공식적인 진위 확인에 무겁게 입을 다물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금융사 자진신고 유무와 CD 금리 담합 창구로 시중은행 자금 담당자 모임인 자금부서장 간담회를 주목하고 있다는 일부 소문의 진위에 대해 그 어떠한 확인도 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지난 17일과 18일 증권사 10곳과 시중은행 9곳의 현장 조사를 통해 상당 부분의 증거를 확보한 공정위에서 자신감을 보이며 속도조절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현장조사를 통해 상당 부분 증거를 확보한 공정위가 급하게 서두를 이유는 없어 보인다"며 "이에 반해 금융당국은 자진신고한 금융사가 있다는 소문에 자체 진위 조사에 나서는 등 다급한 입장을 보이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현재까지는 뒷북대응으로 혼란을 키운 금융당국을 질타하는 분위기. 공정위가 향후 내놓을 조사 결과에 시장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불필요한 논란 확산을 막기 위해 자체적인 입단속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금융소비자 헤게머니 다툼으로 확산? = 이번 CD금리 담합 의혹 제기를 놓고 금융권에서는 금융소비자보호원의 공식 출범을 앞두고 공정위와 금융당국간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분석도 팽배하다.
공정위는 금융위에서 금융소비자보호법을 만들어 금감원 내 준 독립기구인 금융소비자보호원을 신설하기로 하자 강력하게 반발한 바 있다. 이미 공정위는 산하기관으로 유사한 성격의 한국소비자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공정위는 금융소비자연맹에 의뢰해 변액보험 공시이율을 조사해 발표한 바 있으며, 은행 근저당권 관련 소비자들의 소송도 적극 지원한 바 있다.
최근 공정위로 복귀한 前 이성구 금융소비자연맹 회장(前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정책국장)의 역할론에 주목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공정위에서 변액보험 공시이율 조사와 근저당권 관련 소비자들의 소송을 금융소비자연맹과 함께 추진했는데 최근 이성구 前 국장의 복귀는 이 같은 금융소비자 관련 정책 진행에 가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금융권에서는 공정위가 변액보험 공시이율과 은행 근저당권 관련 소송에 이어 CD금리 담합 의혹을 터뜨린데 대해 복잡한 심경으로 지켜보고 있다"며 "당국간 정책 조율을 통해 시장 혼란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