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하면 TV를 떠올렸던 시절이 있을 만큼 가전TV부분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해 왔던 LG전자가 해외 곳곳에서 시장을 경쟁사들에게 내주고 있다. LG전자에겐 TV가 캐시카우 역할을 한다는 과거의 평가가 무색할 만큼 해외시장 상황은 좋지 않다.
TV의 3대 시장인 북미, 유럽, 중국에서 판매부진과 빗나간 수요예측 그리고 해외 마케팅 전문 인력 이탈이라는 3재(災)를 만나 고전하고 있는 것. 국내시장에서 삼성전자와 선두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는 것과는 딴판이다.
연 4500만대 규모로 세계 최대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시장에서의 LG성적표만 봐도 초라하기 그지 없다. 2008년에는 10.2%의 점유율을 보였지만, 올해 1분기 말에는 3.0%로 하락해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수준이다.
프리미엄급 제품의 최대 격전지라고 할 수 있는 북미시장에서도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서치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5월말 LG전자의 점유율은 10.8%로 지난해 4분기의 11.6%보다 0.8%나 줄어들었다.
LG의 점유율은 지난해 2분기 15.9%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인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북미시장은 프리미엄 제품의 80% 이상이 팔리는 지역이어서 이 시장을 잃으면 이익률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삼성전자는 북미시장에서 지난 4월 점유율 40.1%로 디스플레이서치가 집계를 시작한 이래 최초로 ‘마의 벽’이라는 40%를 돌파했다. 소니와 파나소닉도 5월에는 각각 10.6%와 9.3%로 끌어 올리며 LG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유럽시장에서는 그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LG전자가 주력하고 있는 3D TV에서 마저 삼성(50.5%)과 소니(21.8%)에 밀려 9.3%에 그쳤다. 스마트 TV의 경우는 시장점유율 4.7%로 이름만 올리고 있다.
■ ‘스마트’가 대세인데 ‘3D’에 집중…전략인가 불가항력인가
LG전자는 국내에서는 물론 미국시장에서도 3D TV를 팔기 원한다. 그래서 마케팅 활동을 ‘3D’에 집중, 마치 이 부분에 올인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준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은 따로 있다는 게 문제다.
미국의 유력한 TV 구매 비교사이트인 ‘LCD TV 바잉가이드’의 조사에 따르면 신규구매를 원하는 고객 가운데 60% 이상이 스마트 TV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스마트TV는 관련 기술 등이 발전 단계에 있어 기능적으로 미흡한 점이 있지만, 게임이나 인터넷 기타 콘텐츠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3D TV는 마땅히 볼만한 3D 콘텐츠가 부족한 실정이고 TV세트와 컨텐츠 모두 가격이 비싸서 구입을 꺼리는 편이다. 안경을 착용하고 TV를 시청해야하는 불편도 있다. 이러한 여건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1년간 미국소비자들이 ‘스마트 TV’와 ‘3D TV’라는 단어의 검색횟수와 뉴스로 다뤄진 빈도를 보아도 소비트랜드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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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TV, 3DTV 검색빈도(미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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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은 지속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뉴스를 통해 스마트 TV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스마트 TV는 애플과 구글이라는 강력한 예비참가자들이 계속 뉴스의 중심에 있어 구매자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현재로선 LG전자가 주력하고 있는 3D TV는 소비자들의 관심을 크게 받지는 못하고 있다. 이제는 미국시장에서 TV마케팅 전략으로 3D를 강조하는 메이커는 LG전자가 거의 유일하다.
그런 만큼 어느 정도 차별화는 이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가장 많이 팔리는 주류시장에선 멀어질 수 있다. LG전자가 미국시장에서 소니와 파나소닉에 추격당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 마케팅 전문가들의 견해다.
일본의 TV 제조업체들은 2007년부터 대부분 인터넷 기능이 내장된 TV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반면 LG전자는 2011년1월에 스마트 TV를 본격 출하했다.
컨텐츠를 내려 받거나 구매할 수 있는 ‘LG앱스 TV’도 지난해 3월에야 개설해 삼성이나 일본 기업들보다 한참 늦었다. 스마트 TV출시에서 뒤지고 앱스토어에서 늦은 LG가 3D를 부각시킨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 해외 마케팅 핵심인력 줄줄이 脫 LG…또 하나의 악재
북미시장을 담당하던 주요 마케팅 인력들이 1년 사이에 대거 이탈한 것도 수출전선에 타격을 주고 있다.
지난해 말 스마트TV 플랫폼과 파트너십 업무를 담당하며 미국에 대한 전반적인 전략을 총괄한 카를로스 알리무릉 홈엔터테인먼트 사업담당 임원이 퇴사했다.
지난 2월에는 한국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글로벌 소매업협회인 포퐈이로부터 소매마케팅부문 브랜드 최고상을 수상하는 등 마케팅 분야에서 많은 공헌을 한 피터라이너 북미마케팅 총괄임원이 회사를 그만 두었다.
같은 시기에 2004년부터 7년 이상 몸담았던 소비재마케팅 담당 임원도 이직했다. 마케팅과 영업, 유통채널 관리, 물류조정 등을 담당한 인력들도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3월까지 대거 자리를 옮겼다.
LG전자를 떠난 이들 중 상당수는 중국 하이얼과 일본 샤프, NEC 등 경쟁사로 이동하여 마케팅과 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지(=탈 LG) 현상이 프로야구 뿐만 아니라 해외마케팅 시장에서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구본준 부회장은 핵심 인력이 줄줄이 회사를 그만두자 지난 4월 미국에서 열린 LG테크노컨퍼런스에 참석해 고급인력 확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다는 말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이에 지난 12일 LG전자는 흐트러진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 넣고 선택과 집중을 통하여 의사결정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글로벌 마케팅분야의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각 사업부 소속이던 글로벌 마케팅 전략부서를 구본준 부회장 직속의 글로벌 마케팅 부문으로 업무를 이관시켜 해외마케팅 전략을 직접 챙기겠다는 생각이다.
■ 뒤늦게 발동 건 스마트 TV, 컨소시엄에‘기대’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LG전자의 3D TV에 대한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LG가 3D에 강하다’는 이미지를 남기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제품의 경쟁력도 인정받고 있다.
2011년 6월에는 미국의 컨슈머리포트가 LG 전자의 3D TV를 최고의 제품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지난 5월 북미시장에서 LG의 3D TV 시장점유율 23.4%로 삼성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그렇지만 전체 TV 시장점유율은 10.8%로 오히려 하락했다. 3D TV에 집중하는 사이에 스마트 TV 부문의 실적이 더 떨어졌기 때문이다. LG전자는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앞으로 한국·유럽·미국·브라질 등 전략시장에서 고급형 TV의 70% 이상을 스마트 TV로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또 부족한 컨텐츠와 앱도 보완하기 위해 지난 6월19일 샤프·TP비전(필립스 TV사업부)과 손잡고 ‘스마트 TV 얼라이언스’컨소시엄을 출범시켰다. 도시바도 곧 참여할 예정이다.
업계관계자는 독자적인 스마트 TV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약 3천만대 이상의 스마트 TV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LG가 동맹을 맺은 3사를 합치면 스마트 TV 시장점유율이 30%를 넘기게 되어 독자적인 스마트TV 생태계 구축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LG전자 관계자는 TV 마케팅과 제품전략에 대해 “3D와 스마트 기능 모두 중요하게 고려한다”며 “3D를 기반으로 스마트기능을 탑재해 출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스마트 TV보다는 3D TV 중심의 광고가 집중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했다.
■ 항상 한발 뒤쳐지는 LG전자…성공하기 위해선?
LG전자가 TV시장에서 고전하는 것과 관련, 마케팅 전문가들은 신제품 개발과정에서 의사결정 속도가 느린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마케팅분야 전문컨설턴트인 C씨는 “기술과 트렌드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현장에서 시장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의사결정을 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해 시기를 놓치는 사례를 LG전자에서 자주 목격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휴대폰이 스마트폰으로 급속히 넘어가는 과정에서 우왕좌왕하다가 시장을 잃어 버렸던 것처럼 스마트 TV로 변화하는 시장을 읽는데 실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LG전자가 떨어지는 점유율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브랜드 파워와 마케팅 경쟁력을 키우는 게 급선무”라며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소비자들은 브랜드를 중시하기 때문에 강력한 브랜드 전략이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