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가 '인생은 결코 공평하지가 않다'고 했는데 보험도 예외가 아니다. 보험에 가입하겠다고 해서 모두 받아 주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하고 심할 경우에는 가입을 거절한다. 반면 다른 사람은 싼 보험료로 유리하게 계약하기도 한다.
무디스나 스탠다드&푸어스 같은 신용평가기관은 기업에 신용등급을 부여한다. 보험사도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에 따라 등급을 매긴다.
생명보험의 경우 보험자의 건강상태 또는 직업 등 위험정도에 따라 등급을 정한다. 우량체, 표준체, 표준미달체 그리고 거절체(사절체) 등으로 나눈다.
소득에 비해 납입하는 보험료가 많아 보험사기가 의심될 경우에는 도덕적 위험(moral hazard)이 있는 것으로 보아 거절체로 분류하기도 한다.
우량체는 비흡연, 비음주 등으로 건강이 양호한 사람들이 대상이다. 이 등급이 매겨진 사람은 보험료 할인이나 보험금 할증의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할 수 있다. 표준체는 보통수준의 건강을 가진 피보험자로서 표준조건으로 계약을 맺을 수 있다.
표준미달체(표준하체)는 경증의 고혈압, 비만 등 표준체에 비해 건강상태가 양호하지 않고 위험의 정도가 높아서 보험사가 보험료 할증, 보험금 삭감 또는 특정 부위 부담보 등 일정조건을 붙여 계약을 하려 한다.
거절체는 보통의 피보험자인 표준체에 비해 보험사고의 발생위험이 너무 높거나 위험의 평가가 불가능한 등급이다. 보험회사에서 보험가입을 거절한 피보험자를 말한다. 사절체라고도 한다.
거절체는 병력 및 위험직종등급, 가족력 등으로 결정될 수 있는데 보험사가 정한 기준 이상의 고혈압 및 당뇨병 등 질병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테스트 파일럿 등 위험직종 근무자, 극지탐험가 등 위험취미 보유자도 거절체의 한 예이다.
이 기준을 남편입장에서 배우자에 대입시켜 보면 어떨까?
우량체는 온달을 바보에서 늠름한 장군으로 변모시킨 평강공주나 율곡 이이를 키워낸 신사임당 정도가 될 것 같다. 표준체는 대다수 보통의 부인들이 되겠다.
표준미달체는 부족하기는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종교 등의 힘을 빌려 노력하면 보통의 아내로 변화할 수 있는 여성이 될 것이다. 거절체는 소크라테스의 아내인 '크산티피'나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제,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와 같이 '악처' 범주에 들어가는 마누라인 것 같다.
서양에서의 악처는 대개 과시욕과 낭비벽이 심하고, 바람기가 있고, 도박을 좋아하며, 남편에 대해 폭력을 휘두르는 여성을 가리킨다.
동양에서는 조금 다르게 권력욕이 강하고, 질투심이 많으며,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녀를 제대로 보살피지 않으며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는 경우를 가리키는 것 같다.
이 기준을 각자의 아내에게 적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나의 아내는 신혼 때 조금 일찍 끝냈다고 도끼눈을 하고서 핀잔을 주는 바람에 주눅들게 만들고 잘나가는 친구 남편들을 들먹이며 나의 기를 팍팍 죽여 놓았다.
나이가 들자 그렇게 말렸건만 아무 때나 아무데서나 방귀를 뀌어 대고 대고 수박을 먹은 날이면 내가 안중에도 없는지 화장실 문을 열어 놓은 채 시원하게 볼일을 보기도 한다.
키도 작은 데다 몸뻬차림으로 양푼에다 밥을 비벼 먹는 버릇 때문에 뚱뚱하기까지 해서 여자인지 남자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영락없는 거절체 마누라다.
하지만 손만 잡고 잤는데도 아들 딸 낳아서 건강하게 키워냈다. 13년 된 자동차를 바꾸자고 하지도 않고 그 흔한 명품백 사달라고 조르지도 않는다. 새 직장을 얻었다고 열심히 다니라며 새 구두를 두 켤레 사왔다. 이번 주말에는 여름 정장을 사러 가자고 한다. 우량체 같기도 하다.
소크라테스가 악처덕에 훌륭한 철학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내는 보험회사의 표준미달체나 거절체와는 달리 남편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거절체라도 우량체로 바뀔 수 있는 것 같다.
부디 입은 하나이니까 마누라 험담은 조금만 하자. 귀는 두 개니까 마누라 얘기를 많이 들어 주고, 눈도 두 개니까 좋은 점만 많이 보도록 노력해서 거절체 아내라도 우량체로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