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감사실로 발령 받자 상임감사는 축하의 말과 함께 "감사업무는 고기를 잡는 것과 같다. 너무 큰 고기를 잡으면 고기에 깔려 죽거나 바구니에 담지 못해 놓아 줄 수 밖에 없다"며 일장 훈시를 했다.
상사들은 사장 계열과 라이벌인 부사장 계열간에 줄타기를 하다가 차츰 사장의 충실한 지킴이가 되어 갔다.
같은 지적사항이라도 감사보고서는 판이하게 기술할 때가 있다. 이러저러한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복적 위반으로 중징계를 건의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적발사항을 보고서에서 아예 빼버리거나 어려운 영업여건 때문에 부득이한 위반을 이유로 이번 만큼은 불문에 부치기도 한다.
감사실 업무에 어느 정도 적응되어갈 무렵이었다. 경기도에 소재한 영업소 출납직원이 낸 금전사고를 수습하러 갔다. 사고규모 확정과 사고금액 보전책 마련이 우선 과제였다.
조사 중 그 여직원이 갑자기 없어져 비상이 걸렸다. 자살이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수소문 끝에 강 둔덕에 앉아 울고 있는 여직원을 찾았다. 겨우 달래 영업소로 돌아 왔다. 전체 사고금액은 5천만 원 정도였다.
그 여직원은 홀어머니와 동생들을 부양하는 실질적 가장이었으며 재정보증인을 통한 사고금 변제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도리 없이 빈손으로 돌아가야 할 처지였다.
한숨만 푹푹 쉬며 해당영업소 물품들을 조사해 나갔는데 뜻밖의 물건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것은 동시에 세 사람과 즐긴 연애일기였다.
일반적으로 여자들의 섹스중추는 남자의 절반인 포도 크기 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적으로 보수적이고 분위기 소리 냄새 등 주위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아 수동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예외가 있는 모양이다. 아마도 그 여직원의 섹스 중추는 감자보다 좀 컸던 모양이다. 이 여직원은 더블 데이트도 모자라 트리플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시청직원, 백화점 직원 그리고 레슬링 선수가 그들이었다. 그녀는 그들과의 모든 데이트를 그 연애일기에 꼬박꼬박 기록해 나갔다. 그녀의 기록은 보험영업소 직원이 아니랄까 철저한 성과주의 평가 방식을 따랐다.
'몇년 몇월 몇일에 아무개(시청직원)와 같이 저녁으로 돈까스를 먹고 코자자 모텔에 가서 세 번의 정사를 나누었는데 자세는 내가 위였고 느낌은 처음 번은 중간정도(미)였고 두 번째는 중상정도(우)였고 마지막은 별로(양)였다'라는 식이었다.
비용의 대부분을 이 여직원이 횡령한 돈으로 지불한 것으로 보아 그녀는 데이트 상대를 성노예쯤으로 생각한 것 같다.
집으로 가져와 킥킥 거리면서 읽고 있는데 이불 속의 마누라는 같이 보자고 보채었고, 혹시라도 색녀(色女)끼가 전염될까봐 끝내 보여주지 않았다.
시청 직원과 백화점 직원은 화이트칼라로써 '미'정도 고과를 받았으니, 레슬링 선수는 적어도 '수'나 '우'를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결과는 뜻밖 이었다. 레슬링선수는 거의 '양'이나 '가'로 형편없는 평가가 내려진 반면 백화점 직원은 매번 '수'나 '우'를 받았다.
나에게 일이 풀리려고 그랬는지 백화점 직원은 고과도 우수했을 뿐만 아니라 횟수도 제일 많았고 경비도 제일 많이 지출되었다. 그는 나하고 입사동기였던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동기는 회사를 옮긴 이야기며 여성복이 백화점 이익에 제일 많이 기여를 하는데 자기가 여성복 담당이라는 둥 자기자랑도 해댔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 ××보험사의 아무개 여직원 알지?" 그가 놀라며 물었다. "그녀한테 무슨 일 있었어?", "응, 금전사고를 좀 쳤어. 그런데 너하고 같이 데이트 하느라고 썼다고 그러더라. 좀 비싸게 연애한 셈 치고 그 돈 네가 갚아줘야 쓰겄다."
그 금전사고를 회사손실 하나도 없이 해결한 공로로 그 해 상반기 고과를 'B'등급으로 받아서 기분이 좋았다. 만약 그 녀석이 그때 내가 여직원 일기 가운데 레슬링선수와 시청직원 부분을 빼고 복사해서 보여 줬다는 것을 지금이라도 알게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약력] 삼성생명 부장, AIG생명 부장, GE캐피탈코리아 이사, 에이스(뉴욕)생명 전무, 조세일보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