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금리 인하해도 '하우스 푸어' 허리 휘어
은행권의 대출금리 관리·감독에 '소홀'
금융위는 징계 대상 은행들 '봐주기' 지적돼
감사원의 감사 결과, 금융 당국의 업무 태만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저축은행 부실 사태부터 주식시장 불공정 거래(주가조작 등), 최근의 양도성 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의혹 등에 관련된 금융시장 전반의 문제점 뒤에는 금융 당국의 미흡한 관리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3일 감사원은 금융위원회 및 금융감독원의 업무 실태를 점검한 결과, 이러한 잘못이 발견돼 시급한 개선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 대출하는데 학력 차별?…지점장 가산 금리 '황당해'
1000조원에 달하는 가계 빚이 '하우스 푸어'(무리하게 대출 받아 주택을 샀다가 이자 상환에 힘겹게 사는 사람들)를 양산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심화되면서 이러한 하우스 푸어들이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되자, 한국은행은 기준 금리를 연 5.25%에서 2%대까지 낮췄다(현행 3.25%).
하지만 신규 대출이나 만기 연장 시 시중은행들이 제멋대로 가산(加算) 금리를 인상하면서 가계나 기업에 돌아간 정책적 혜택이 줄었다.
이러한 비리 운영에는 금융 당국의 미흡한 대처도 한몫했다.
감사원의 감사 과정에서 적발된 A은행은 이자 수익이 줄어들 것을 피하기 위해 가산 금리를 임의로 신설하거나 인상했다.
기존의 가산 금리에 유동성 할증금(프리미엄)이라는 항목을 신설해 0.5~1.2%의 수수료를 받거나, 500만원 이하의 소액 대출 가산 금리(1%) 및 연체이자(2%) 등을 추가로 만들었다. 가산 금리 자체를 0.8%포인트(p)까지 인상하기도 했다.
지점장 재량으로 이자를 높이거나 종전의 대출금리를 그대로 부과한 곳도 있었다.
O은행에서는 직업이나 급여뿐만 아니라 학력 기준을 신용 평가의 별도 항목으로 신설해 차별을 뒀다. 예를 들어 고교 졸업 이하는 13점, 석·박사 졸업은 54점 등의 차등을 둔 것.
이는 결국 학력 차별에 따른 대출 거절이나 이자 증가 등을 초래했다는 게 감사원 측 설명이다.
이러한 가운데 은행권의 이자 이익은 지난해 39조3000억원을 기록해, 금융 위기 전인 2007년(31조2000억원)과 비교해도 20.6% 증가했다.
특히 최근에는 금융시장의 대표 금리인 CD금리가 은행들에 의해 조작됐다는 의혹이 일고 있어, 금융 당국을 겨눈 비난의 화살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의 관계자는 "최근 몇 년 동안 기준 금리가 낮은 상태로 유지되고 있지만 서민들의 이자 부담은 줄지 않고 있다. 금융회사들이 불합리한 가산 금리를 부과해 과도한 이익을 추구한다는 비판이 있어왔는데, 앞으로 금감원은 은행권의 대출금리 운용을 체계적으로 점검하고 지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4대 시중은행(신한, 국민, 우리, 하나)은 대출 시장의 49.5%, 예금 시장의 55.7%를 점유하고 있는 만큼 금리를 주도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입지가 커 이들에 대한 감독이 더 강화돼야 한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 2003년 카드 사태 이후에도 정신 못 차린 금융 당국
지난 2003년 카드 회사들이 무분별한 영업 경쟁을 벌이면서 대량 연체 사태가 터졌지만, 그 이후에도 금융 당국의 관리와 감독은 여전히 소홀한 것으로 이번 감사에서 지적됐다.
카드회사들은 신용 등급이 낮은 회원에 카드 대출을 확대하는 등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을 키웠으며, 이를 감시해야 할 금융 당국은 '돌려막기' 등의 과도한 카드 대출이 횡행해도 방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특히, 카드 대출은 저(低)신용 등급의 서민층이 주로 이용하는 만큼 이자가 높고 부실 위험이 큰데, 금융 당국은 수수방관하고 있었던 셈이다.
지난해 7등급 이하의 저신용 계층이 이용한 카드 대출액 중 2개 이상의 카드는 8조6000억원, 4개 이상의 카드는 3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한편, 신용정보회사의 부당한 차별도 존재했다.
신용정보회사들은 5일(평일 기준) 동안 연체된 정보를 수집한 뒤 이를 즉시 신용 등급에 반영해 상환 능력이 있는 차주의 신용 등급도 하락했다. 이에 따라 상환 능력이 있는 차주의 신용 등급은 평균 1.3등급 하락했고, 이를 회복하는데 평균 5개월이 소요됐다.
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2010년에 발생한 연체를 기준으로, 3개월 이상 장기 연체는 전체의 8.9%, 한 달 안에 상환된 연체는 76.4%에 해당된다. 하지만 7개 은행에서는 연체 이후 한 달 안에 상환된 신용 대출 777건(전체의 21.3%)의 신용 등급을 일괄적으로 내려(평균 1.4~3등급) 대출금리는 평균 0.1~3.2%p 상승했다.
이 밖에 금융회사의 실수로 연체가 발생했는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피해가 발생한 사례도 발견됐다.
◆ 봐주기 식 제재 적발…'기관 경고' 주장하는 직원들 내쫓아
금감원은 B은행의 불법 백금(白金) 대여를 지난 2010년 적발하고(은행법 규정 위반) 지난해 '기관 주의' 조치를 내렸다.
B은행은 고유 업무가 아닌 백금 거래를 통해 60만400달러(약 6억8870만원)를 수취하고, 이 과정에서 관계회사의 계약으로 보이도록 편법을 썼다.
당초 금감원 제재심위위원회는 중징계 수준의 '기관 경고'가 과중하다고 판단해 '기관 주의'로 처벌이 경감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지난해 6월 B은행의 제재 결정을 두고 제재 심의 위원들과 금감원 검사 담당 직원 간 의견 대립이 계속됐다. 결국 당시 제재 심의 위원장은 검사 담당 직원들을 회의장 밖으로 내쫓은 뒤 '기관 주의' 조치를 내렸다.
이와 관련 당시 제재심의위원회는, B은행이 금융시장이나 소비자에 직접적인 피해를 미치지 않았고, 향후 은행법 개정으로 규제가 완화된 사유를 들었지만, 은행법은 금융시장 안정을 그 목적으로 하는 만큼, B은행은 금융 질서를 문란하게 했다는 게 감사원 측 판단이다.
한편, 이 밖에도 저축은행 실사에서 후(後)순위채(금융회사 파산 시에 가장 늦게 변제되는 고금리 채권)의 불법 판매를 금감원 직원이 묵인하거나 불공정 회계 감리 등을 제재하는 기준이 미흡했던 사실들이 이번 감사에서 발견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