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진보·좌파 진영의 '주테마'였던 경제민주화가 이제는 보수와 진보, 여야를 막론하고 한 목소리로 외치는 '구호'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원리에 익숙한 우리 사회에서 경제민주화는 낯설기만 한 것이 사실이다. 경제와 민주화가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헷갈리기도 한다.
더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방법론이 모두 달라, 어떤 방법론이 최선인지,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조세일보(www.joseilbo.com)는 여야 주요 정치인과 경제학자, 복지 전문가, 조세 전문가, 경제민주화의 대상인 재계 관계자 등과 경제민주화를 주제로 의 인터뷰를 각각 실시, 대담 형식으로 재가공했다. [편집자주]
'경제민주화'가 말 그대로 경제의 민주화를 말하는 것이라면 돈과 관련된 모든 분야는 공평해야 하지 않을까. 돈을 버는 것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공평하게 벌어야 하고 세금을 낼 때도 번 것에 대해선 공평하게 내는 것이 경제민주화다.
즉 '조세정의'는 경제민주화의 가장 핵심적인 축이다.
더구나 '슈퍼부자 증세' 혹은 '재벌세' 같은 주장이 나온 것도 조세의 공평성이라는 측면에 기인한 것이라면 우리나라 조세제도의 공평성 여부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야 정치인과 경제, 조세, 복지 전문가, 전경련 관계자들은 우리나라 조세제도의 공평성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을까.
새누리당 이혜훈 최고위원은 "금융소득 부분에 제대로 과세가 되지 않아 형평성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세제는 과거 근로소득, 사업소득, 이자소득만 있었던 시절에만 머물러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민주통합당 유승희 의원은 "재벌에 대한 불합리한 조세감면을 정비하고 1% 슈퍼부자 증세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조세 공평성 확보를 위한 방법이라는 논리다.
복지 전문가인 복지소사이어티 정승일 운영위원은 "개인 소득세의 유효세율이 너무 낮고, 법인세의 경우 대기업이 받는 감면 혜택이 많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반면 숙명여대 경제학부 강인수 교수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공평성이 크게 결여돼 있다고 보기 어렵다. 세제의 효율적 운용과 투명성 강화가 필요할 뿐"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또한 전경련 이철행 기업정책팀장은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과 소득 분배는 모두 법안에 반영돼 있다"라며 공평성이 어느정도 확보됐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다만 "지하에 감춰진 세원을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 탈세 등을 효과적으로 잡아내는 전략과 행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Q. 경제민주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조세정의다. 최근 버핏세나 재벌세, 선별적인 분배 등 이른바 부자 증세와 관련한 제도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조세제도는 공평성이 확보됐다고 생각하나.
새누리당 이혜훈 최고위원(이하 이혜훈) = 세제라는 것도 그 사회변화에 변해야하지만 그것이 더디었다. 어떤 부분은 변하고 어떤 부분은 그대로이고 해서 불균형한 상태다.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하고 공평하게 과세하는 것이 과세원칙이다. 그런데 요즘 보면 파생상품 등에 대한 과세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옛날에는 근로소득 아니면 사업소득, 이자소득 밖에 없어서 그 부분에 맞게 과세를 했는데 이제는 금융소득 부분에서 새로운 현상들이 생기고 있다. 이들은 월급쟁이보다 몇 십배 버는데도 세금을 안내거나 거의 낮은 세율로 세금을 낸다. 같은 소득인데도 세율이 낮아 세제 형평성이 무너진 것이다. 월급으로 100만원을 벌든, 주식으로 100만원을 벌든 같은 세금을 내게 한다는 것이 조세정의다. 이런 부분을 찾아내 세금을 부과하면 세수가 늘어난다.
그렇게 되면 굳이 부자증세가 없어도 복지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민주통합당 유승희 의원(이하 유승희) = 조세의 형평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여당이 기득권 보호 차원이 아니라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 조세개혁에 동참한다면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본다.
또 대선까지는 여당이 조세개혁에 동참하는 시늉을 해도 대선이 끝난 후에는 입장이 언제든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정기국회 때 박차를 가해야 한다. 민주통합당이 주장하는 것은 첫째, 재벌에 대한 불합리한 조세감면을 정비하고 소득세 기능을 정상화하자는 것이고 둘째, 1% 슈퍼 부자 증세를 통해 조세 공평성을 제고하자는 것이다.
이밖에도 대주주 주식양도차익 과세강화, 영세사업자 세부담 경감, 음성탈루에 대한 소득과세를 강화 할 것이다.
서울시립대 세무대학원 박기백 교수(이하 박기백) = 우리나라의 조세제도는 대체로 공정하다. 다만 주식양도차익 과세가 아직 제대로 도입되지 않는 등 개선되지 못한 점들은 다소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승일 운영위원(이하 정승일) = 조세제도의 공평성에 문제가 많다. 특히 개인소득세의 유효세율이 너무 낮다. 소득 상위 계층이 많은 혜택을 보는 것부터 시작해 다양한 비과세감면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 버핏세와 같은 취지에서, 금융소득(배당과 이자)의 경우 4000만원부터 과세하는 하한선을 대폭 낮추어야 한다.
법인세의 경우, 현금보유가 많은 대기업들까지 법인세 감면 혜택을 받는 것은 조세감면의 취지에도 어긋난다.
숙명여대 경제학부 강인수 교수(이하 강인수) = 우리나라의 조세제도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공평성이 크게 결여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평균수준은 되지만, 조세 포괄주의를 확립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 즉, 고소득 자영업자의 경우 소득에 관한 입증을 납세자가 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세율을 올리지 않고도 세수가 증가될 수 있다.
부자증세라기보다는 세제의 효율적 운용과 투명성 강화가 필요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철행 기업정책팀장(이하 이철행) = 헌법 제119조 제2항의 주요 내용 즉, 균형있는 국민경제 성장과 안정, 소득 분배 등의 목표는 모두 조세관련 개별법에 반영돼 있다.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과 안정은 법인세(2억 10%, 2억∼200억 20%, 200억 이상 22%)에 반영돼 있고, 소득 분배도 소득세, 상속세, 증여세, 양도차익과세, 누진세제 등 각종 조세관련 법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세율의 인상보다는 지하에 감춰진 세원을 발굴하는 것이 중요. 즉, 낮은 세율 넓은 세원 전략이 필요하다.
Q.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이것만은 꼭 해야 한다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혜훈 = 헌법 119조를 많이 말하는데 그동안 우리는 1항에 많이 치중해 왔다. 1항에 더 방점을 둬야한다는 것에 대한 갈등은 없는데 문제는 2항이 너무 소홀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2항에 방점을 둬야한다는 시점이 됐다. 극심한 양극화 해결을 위해서 우리가 중점을 두는 것은 공정한 시장경쟁이고 이를 위해 첫 번째 할 일이 재벌개혁이다. 그 다음 조세개혁, 그 다음 노동시장개혁, 중소기업육성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박기백 = 아직 경제민주화의 개념이 명확하게 정의되지는 않았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정한 경쟁은 반드시 필요하다.
정승일 =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경제적, 사회적 양극화이고 따라서 재벌개혁보다는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과 노동권의 신장이 가장 중요하다. 그와 함께 보편적 복지를 확충하는 것이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그리고 보편적 복지 확충을 위해서는 당연히 부자증세와 전반적 증세를 통한 복지재정 확보가 중요하다.
강인수 =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추진이 필요하다.
이철행 = 현재도 대기업은 대내외 경영환경 악화에도 불구하고 협력사의 경쟁력 강화와 동반성장 문화 확산을 위해 지원을 대폭 늘리고 있다. 특히 MRO 등 일부사업을 중소기업에 이양했고, 중기 적합업종과 관련해 사업조정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 대기업의 사회적 기여와 책임도 잊지 않고 추진 중이다. 10대그룹 스포츠 지원액만 해도 2011년 4276억원에 달했다. 같은 해 문화체육관광부 체육예산인 8403억원의 절반 수준에 달한다.
2010년 기업재단 지출 사회공헌 비용도 총 2조8735억원에 달하는데, 미국기업의 2배 및 일본기업의 2.6배에 달한다. 무엇보다 대기업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내는 주체다. 대기업의 이런 사회적 기여를 높게 평가하고 지원해 주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대기업도 국민들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