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직장인들은 근로소득세, 자영업자들은 종합소득세를 냅니다.
명칭은 조금 다르지만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 모두 일정액의 세금을 내고 있는 것이죠.
다만 사업자들은 일반 직장인들과 달리 부가가치세 신고·납부 의무까지 추가됩니다.
월급과 달리 사업소득이 발생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재화, 용역거래가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매출액의 10% 가량을 부가세로 납부해야 하는 것이죠.
부가세 부담은 실질적으로 소비자가 하는 것이지만, 실제 세금 납부는 사업자들이 해야되는 구조인 셈입니다.
소규모 전기공사 노역을 하면서 한 전기설비업체로부터 '일당'을 받아오며 생계를 유지해 오던 A씨. 그는 어느 날 국세청으로부터 한 장의 세금고지서를 받게 되는데,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이 뒤따르게 됩니다.
국세청은 A씨가 전문 전기공사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장님'이라며 직권으로 사업자등록증을 부여하고, 그동안 부가세를 납부하지 않았다며 밀린 금액이 정산된 세금고지서를 발송했습니다.
하루 벌어 먹고살던 A씨가 하루아침에 사장님이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 사단의 원인, '품 떼기 계약서' = 이런 사단이 일어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A씨와 설비업체 사이에 주고 받은 한 장의 약정서 때문이었습니다.
이 약정서는 다름 아니라 설비업체와 A씨 사이의 거래관계 및 지출한 노무비용 내역이 적혀 있던 '품 떼기 계약서'였는데요.
국세청은 이를 발주업체와 하도급업체 사이에 작성된 전형적인 계약서로 보고, A씨를 근로자가 아닌 사업자로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국세청 "공사기간, 공사금액, 안전사고 및 하자담보 책임에 이르기까지 전형적인 도급계약을 담은 공사약정서"라며 "비록 A씨가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았지만 전문자격과 시공능력을 바탕으로 자기 책임 하에 계약내용을 이행한 독립된 사업자이므로 과세 처분은 정당하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A씨는 국세청의 과세처분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는 "일용근로자 사이에서 단순히 작업반장 역할을 했으며, 설비 업체와 주고받은 노임약정서 또한 같이 일하는 근로자들에 대한 일당을 일괄적으로 받아 나눠 가진 것 일뿐, 정식 계약서는 아니다"라고 항변했습니다.
A씨는 또 "별도로 사업자등록을 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부가가치를 창출해 낼 정도의 물리적 또는 인적 사업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으며, 독립적 하도급계약이 아닌 현장대리인의 업무지시에 따라 작업상 필요한 노무만 하고 일당만 받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 심판원 "일용근로자 맞다. 과세처분 취소" = 양측의 입장과 증거자료를 검토한 심판원은 결국 A씨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면서, 과세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심판원은 "약정서 내용을 확인한 결과 A씨는 설비업체의 모든 업무상 지시를 따라야 하는 등 현장 안전감독 외 독립적 사업체로 인정할 만한 근거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설명했습니다.
심판원은 A씨가 스스로 회사를 꾸리기 위해 사업자 등록을 한 사실도 없었고, 금융거래 내역을 확인한 결과 설비업체로부터 받은 노무비를 같이 일하던 노무자들과 일당 형태로 나눈 정황도 발견됐기 때문에 사업자로 보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심판원은 "관련법령과 사실관계를 종합해 볼 때 사업상 독립적으로 용역을 제공하는 자라 함은 부가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정도의 사업형태를 갖추고 계속적이고 반복적인 의사로 용역을 공급하는 것"(대법 89누 6592)이라는 판례를 인용하며 A씨 주장의 타당성을 인정했습니다.
일용근로자에서 하루아침에 사장님이 된 A씨. 심판원 판결로 세금폭탄은 피하게 됐지만, 그 사정을 더 들여다보니 국세청이 오해할 만한 '속사정'도 있었습니다.
A씨와 거래하던 설비업체가 과거 자료상으로 허위 영수증을 발급해 탈세를 시도했던 '전력'이 있었던 것. 전체적인 상황을 잘못 판단한 국세청도 잘못이 있지만, 탈세는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교훈을 남긴 사례인 듯 합니다.
[참고심판례 : 2011중3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