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 국가산업단지 4공단에서 지난달 27일 발생한 불산(불화수소산)가스 누출사고는 유독성물질의 공기 중 대량유출이라는 점에서 국내외적으로 흔치않은 환경재앙이다.
미량의 일회성 노출에 따른 증상은 쉽게 치유된다고 해도 불산가스가 공기 중에 광범위하게 노출된 이상 사고 인근지역 주민들은 지속적으로 불산가스에 노출될 위험성이 있고, 농작물과 가축은 물론 토양과 수질에 두고두고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앙의 성격상 지방도시의 자치단체 능력만으로 효율적 대처가 불가능한 대형사고였다. 그럼에도 정부는 사고 8일이 지나서야 실태조사를 위한 합동조사단을 내려 보냈고, 피해규모가 확산되자 사고 발생 12일 만에 사고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사건초기 구미시의 미숙하고도 안일한 대응과 중앙정부의 늑장대응이 사태를 키웠다는 점에서 '관재'(官災)라는 비난도 쏟아진다.
사고 발생 20일이 지난 지금에도 피해규모가 어느 정도 확산될지, 언제까지 지속될지를 몰라 지역주민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고, 주민 240명은 여전 대피시설에서 귀가 날만 기다리고 있다.
정부의 체계적인 위기관리능력 부재가 여실히 드러나면서 대한민국 위험관리능력이 함께 도마에 올랐다.
한국은 화학산업이 생산기준 세계 5위인 화학강국이다. 유통되고 있는 화학물질 수는 4만3000여종에 이른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신규 화학물질 400여종이 시장에 진입하고 있어 안전관리를 철저히 해도 사고를 완벽하게 예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럼에도 유통되는 화학물질의 85%는 유해정보조차 없을 정도로 우리의 사고관리시스템은 허술하다.
불산(Hydrofluoric Acid)은 위험성이 높아 69개 '사고 대비 물질'의 하나로 지정돼있다. 공기와 접촉하면 불산으로 변하는 불화수소 가스는 소량만으로도 인체와 환경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최상위 독극물이다.
이런 불산을 하루 평균 25t씩 다루는 업체라면 꾸준한 반복 훈련으로 직원들에게 안전 수칙을 몸에 배도록 해야 하고, 안전장구와 방제장비 및 물자를 충분히 갖춰야 한다. 사고를 낸 (주) 휴브글로벌은 탱크로리에 담긴 유독물질 불산을 저장탱크로 옮기는 호스 연결 작업을 하면서 작업복과 작업용 헬멧 같은 안전장구도 착용하지 않았다.
사고에 대비해 확보한 방제 장비와 방제 물자는 삽 두 자루, 소화기 두 개, 흡착포 반 상자, 모래 10포대가 전부였다. 더구나 30인 이하 소규모사업장이어서 안전관리는 법의 사각지대였다.
2009년 6월에도 가스 운반 차량에 고압 호스를 연결하다 접속 부위가 압력을 견디지 못해 가스가 유출돼 직원이 얼굴과 가슴에 화상을 입는 사고가 났는데도 6개월 뒤인 2010년 1월 구미시는 이 업체를 유독물 취급 업체 가운데 '우수 관리 업체'로 지정했다고 한다.
근처 주민들은 평소 이 업체가 유독물질을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니 예고된 재앙이나 다름이 없다.
사고 직후 초동대응 또한 한심한 수준이었다. 불산의 특성상 물을 뿌리면 사태가 악화되는 데도 사고 직후 출동한 소방대는 중화제인 소석회가 없어 물만 뿌려댔다. 보호장비도 착용하지 않고 맨몸으로 무작정 물을 분사하는 바람에 기화압력이 높아져 부상을 입고 오히려 가스 분출만 증가시키는 우를 범했다.
구미시는 4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주민들을 대피시켰고, 사고발생 12시간 만에 사실상 '사고종료'를 선언하며 기업체직원들과 주민들을 귀가조치 했다. 사고발생현장 "50m 이내 기업은 휴무해주시고 그 외 기업은 정상 조업 시행"이라는 내용의 문자 발송과 함께 상황실 근무인원만 제외하고 29일부터 10월 1일까지 이어지는 추석연휴를 보내도록 해 초기 대응 부실을 자초한 것이다.
사고 발생 8시간 만에 도착한 국립 환경과학원의 특수화학분석차량이 공기오염도를 측정한 결과 불산가스 유출 농도가 기준치 미만이어서 위기 경보를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시켰기 때문이다. 환경과학원은 사고현장 반경 50m이내 대기 중 불산 오염도는 인체에 해로운 수준인 30ppm에 훨씬 못 미치는 1ppm이라고 밝혔다.
정밀기기를 갖췄음에도 간이검사만 으로 성급하게 판정을 내린 것이다. 1ppm은 고용노동부의 '화학물질 노출기준'에 따른 불산 작업장 기준치 0.5ppm을 넘어선다. 30ppm은 소방관이 방독면을 쓰고 일해야 하는 수치다.
정부가 지난 2월 마련한 '화학 유해물질 유출사고 실무 매뉴얼'에 따르면 주민복귀는 잔류 오염 조사를 모두 마친 뒤 관계기관 합동회의를 열어 결정토록 돼있다. 국립환경과학원의 불산 측정 기준만을 근거로 구미시가 귀가조처를 내린 것은 매뉴얼 위반에 해당한다.
더구나 추석 연휴를 앞두고 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들뜬 명절심리가 굼뜬 대응을 부채질했다. 즉각적인 현장 보도와 함께 경각심을 일깨워야 할 언론조차 추석연휴동안 '침묵'을 지키는 동안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이슈화한 것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상의 트위터리안들이었다. "교통사고가 난 정도로 너무 소홀히 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뒤늦은 지적처럼 대한민국 위험관리능력이 총체적 부실을 드러낸 것이다.
액체상태의 불산이 탱크에서 유출되면서 기체 상태로 퍼져나간 누출량은 13톤으로 경찰은 추산했다. 피부발진․ 구토 등으로 진료와 치료를 받은 주민은 1만명을 넘어섰다.
사고 소식이 뒤늦게 크게 보도되면서 정치인과 중앙 및 지방 관료들이 뻔질나게 현장을 방문하고 있지만 피해 수습과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는 인상을 홍보하려 할 뿐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피해지역주민들은 분통을 터뜨린다.
제2,제3의 유독물질 누출사고를 막기 위해 국가차원의 화학사고 안전관리시스템을 확립하고, 사고발생 예방과 대응에 관한 법률을 재정비해 안전관리상의 사각지대부터 없애는 일이 시급하다.
이번 재앙을 계기로 화학물질 정보공개시스템을 마련하고, 유독물질 415종에 대해 연간 10톤 이상 취급하는 종업원 30인 이상 사업체에만 적용하는 안전관리 법적기준도 재검토해 '화학강국'에 걸맞은 안전관리대책을 세워야한다.
인근 공장에서 어떤 유독물질을 얼마나 다루고 있는지 주민들이 알아야 누출 사고 때 스스로 대비할 수 있고, 이를 알고 있는 주민들의 존재는 해당 업체에 안전관리를 강화하는 압력으로 작용해 잠재적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다.
북한병사의 '노크귀순'에다, 정부중앙청사의 보안마저 구멍이 뚫리는 등 대한민국의 위험관리는 이래저래 위험수준이다. 대선게임이나 정권말기 증후군으로 해이해 진 나라기강을 다잡아야 할 때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에 레임덕이 있을 수 없다.
[약력] :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워싱턴 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 주재 부국장, 경제담당 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
